[딥폴리시] 공공 R&D 약화가 흔드는 미국의 혁신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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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R&D 기반 민간 투자 메커니즘 연방 비중 축소에 따른 매칭 구조 균형 약화 예산 동결이 만든 기술 확산 둔화 경로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3년 기준 공공 자금이 투입된 미국 특허는 전체의 약 2%에 불과하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 변동의 20%가 이 소수 특허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공공이 초기 위험을 줄여주고 민간 자본이 그 기반 위에서 투자를 확대하는 크라우드인(crowd-in) 구조가 기술과 산업의 확산 흐름을 만들어온 것이다.
이 구조는 민간 투자의 속도와 방향을 안정시키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2025년 미국 연방 연구예산 삭감과 보조금 동결은 이 토대를 흔들었다. 국립보건원(NIH)이 지원하던 임상시험 383건이 중단됐고, 참여자 7만4,000명 이상이 영향을 받았다. 공공 투자가 흔들리면 민간 자본은 즉시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AI·바이오·반도체처럼 기반 기술의 확산 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연구 초기 위험을 공공이 떠안아야 한다는 이유가 다시 부각되는 시점이다.
공공 R&D가 여는 민간 투자 경로
공공 R&D는 기술 개발 초기의 불확실성을 낮추어 민간 투자가 들어설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초기 단계는 시장성·성공 가능성·후속 자금 확보가 모두 불투명하기 때문에 민간이 단독으로 위험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 공백을 메우는 것이 바로 공공 자금의 선제적 투자다.
2025년 유럽정책연구센터(CEPR)와 복스(VoxEU)가 분석한 장기 특허 데이터도 같은 결과를 내놓았다. 정부 지원을 받은 특허는 비중은 작지만 기업의 후속 특허 출원, 연구인력 확충, 내부 R&D 지출을 크게 끌어올리는 신호 효과를 낸다. 초기 위험이 줄어들면 기업은 시제품 제작과 사업화 준비에 필요한 자원을 더 과감하게 배분한다.
결국 공공이 먼저 위험을 흡수하면 기업은 특허 개발과 인력 확보, 후속 연구에 나설 근거를 확보한다. 연구 인프라와 실험 데이터가 일정 수준 축적되면 민간 투자는 더 빠른 속도로 유입되고, 기술 진입 시점도 앞당겨진다. 공공 R&D가 민간 투자의 기폭제이자 전체 생태계의 첫 단추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방 축소 속 공공투자의 방향성
미국 R&D 총지출은 2022년 8,920억 달러(약 1,227조원)에서 2023년 9,400억 달러(약 1,294조원)로 증가했다. 그러나 연방정부 비중은 장기적으로 줄어들었고, 그 빈자리는 기업 투자가 메우는 흐름이 이어졌다. 이 변화는 단기 성과 중심의 민간 연구가 늘고, 장기 기초 연구의 공공 역할이 더 무거워지는 구조로 이어졌다.
기업 R&D는 시장성과 회수 가능성을 기준으로 투자 우선순위를 정한다. 반면 공공 R&D는 산업 기반을 다지는 기초 연구와 차세대 플랫폼 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분석에서도 공공 R&D 지원의 55%가 세액공제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접 보조금의 축소와 세제 중심 지원 확대를 의미한다. 세제 지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편의성이 높다. 그러나 목표 기반 보조금이 줄면 플랫폼 기술을 개척하는 공공의 역할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민간 자본 매칭을 결합한 공공 지원 모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주(州) 중소기업 신용보강 이니셔티브(SSBCI)처럼 민간이 공공보다 더 많은 금액을 투입하는 구조는 크라우드인 효과를 크게 높이는 사례로 꼽힌다. 이 구조가 흔들리면 민간의 위험 감내 여력은 낮아지고, R&D 전체 흐름도 쉽게 불안정해진다.

주:공공–민간 특허는 비중은 작지만 GDP·TFP 변동의 20~30%를 설명한다.
예산 동결이 흔든 연구 생태계
2025년 예산안에서 국립보건원(NIH) 등 주요 기관이 대규모 삭감 대상으로 지목되자 연구 생태계는 즉각적인 충격을 받았다. NIH 보조금은 약 5개월 반 동안 동결됐고 임상시험 383건이 중단됐다. 연구 참여자 7만4,000명 이상의 일정도 모두 흔들렸다.
연구실은 신규 채용을 중단했고, 기술 이전을 준비하던 스타트업은 핵심 단계에서 진행이 멎었다. 벤처투자자들도 정책 불확실성을 반영해 투자 기준을 더 보수적으로 바꿨다. NIH가 매년 480억 달러(약 66조원)를 초기 생의학 연구에 투입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 공백을 민간이 단기간에 대신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영향은 특정 분야에 머물지 않았다. AI·에너지·바이오처럼 활용 범위가 넓은 기술도 예산 불안정성의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그동안 기초 연구와 조달, 민간 투자가 이어지며 형성됐던 선순환이 약해지면 기술 확산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이런 위험을 줄이려면 공공 R&D 설계를 다시 점검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

주:공공자금 특허는 기초과학 연계도가 높아 파급효과가 크게 확산된다.
민간을 끌어들이는 R&D 설계의 조건
예산 불안정성이 기술 확산을 흔드는 상황에서는 공공 R&D 설계를 한층 정교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크라우드인을 유지하려면 공공 보조금이 초기 위험을 흡수하는 촉매 역할을 선명하게 수행해야 한다. OECD의 2025년 벤치마킹 역시 민간 자본이 최소 20%의 위험을 부담할 때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는 점을 확인했다.
중소기업혁신연구(SBIR)처럼 경쟁형 보조금에서 조달, 그리고 민간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는 특허 증가와 자본 접근성 확대가 입증된 모델이다. 고급연구계획국(ARPA) 스타일의 미션 조직도 초기 위험을 줄이며 공공 자금의 신호 효과를 뒷받침한다. 핵심은 자금 규모보다 이러한 구조를 얼마나 꾸준히 유지하느냐다.
공공 지원 특허의 2%가 성장 변동의 20%를 설명한다는 사실은 촉매 보조금이 갖는 영향력을 보여준다. 기술 플랫폼의 문이 닫히면 다시 여는 데 훨씬 큰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혁신 생태계를 지탱하는 공공 R&D 조건
공공 R&D 크라우드인은 작은 공공 투자로 민간 투자를 크게 넓히는 구조다. 규모는 작지만 미국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동해왔다는 점은 여러 분석에서 확인된다. 정부 지원을 받은 민간 특허가 거시 흐름의 상당 부분을 설명하는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NIH 임상시험 383건이 중단된 사례는 정책 불안정성이 연구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흔드는지 보여준다. 초기 위험을 공공이 책임지지 못하면 민간 자본은 더욱 보수적으로 움직이고 기술 확산의 속도는 눈에 띄게 늦어진다.
해법은 분명하다. 촉매 역할을 하는 보조금을 유지하고, 민간 매칭 구조를 결합해 위험을 나누며, 조달을 통해 초기 수요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공공의 역할이 약해지면 혁신의 물길은 서서히 마르고, 그 징후는 대중이 체감하기 훨씬 전부터 나타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Public R&D Crowd-In Effect: Why Cutting the Catalyst Will Shrink America’s Next Big Wav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