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페리아 ‘개입 중단’ 선언 네덜란드, 중국 반색에도 장기 불씨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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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 안정에 무게 둔 조치 해석
누적된 충돌·갈등 일시적 봉합
국제 분쟁 전조로 남을 가능성

네덜란드가 핵심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며 중국과의 단기 갈등을 진정시켰다. 수일간의 대면 협의 끝에 나온 이번 조치에 중국은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유예가 아닌 철회가 근본적 해결이라는 기존 주장을 유지하면서 양측의 견해차가 존재함을 시사했다. 특히 갈등의 씨앗이 된 기술 이전 우려와 공급망 불안이라는 핵심 쟁점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어 후속 협의의 방향에 따라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잠정적 합의 성격
19일(이하 현지시각) 빈센트 카레만스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은 공식 성명을 통해 “최근의 전개를 고려할 때 지금이 건설적인 조치를 할 적절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며 “넥스페리아에 대한 개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중국 윙테크가 인수한 넥스페리아의 자산·지식재산권 동결, 경영권 박탈 등 네덜란드 정부가 내렸던 행정명령을 사실상 유예하는 조치로, 최근 며칠간 중국과 진행된 고위급 대면 협의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된다. 카레만스 장관은 중국 당국의 대응을 “긍정적 조치”로 평가하며, 단기적 충돌을 완화하는 쪽에 무게를 뒀다.
중국 상무부 역시 같은 날 네덜란드가 경제부 장관 명의의 행정명령 유예를 적극적으로 제안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통해 협의 사실을 확인했다. 그간 중국은 네덜란드의 넥스페리아 경영권 박탈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 교란의 핵심 원인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이번 유예 조치에 대해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다만 중국 상무부는 “유예가 아니라 ‘철회’가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하며 네덜란드 경제부가 주도한 기업법원의 판단이 여전히 문제의 핵심 장애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중국 측의 입장은 해당 사안을 둘러싼 책임과 해결 방식에 대해 여전히 이견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이에 네덜란드는 고위급 대표단을 베이징에 파견해 협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카레만스 장관은 “앞으로도 중국과 건설적 대화를 지속하겠다”며 “공급망 불확실성을 낮추려는 시도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선 이번 조치를 단기적인 충돌 완화와 국제 공급망 불안을 줄이기 위한 ‘잠정적 합의’로 규정하며 넥스페리아를 둘러싼 갈등은 후속 합의 결과에 따라 언제든 다시 부상할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
기술 이전 우려 vs. 수출 통제
네덜란드 네이메헌에 뿌리를 둔 차량 및 가전용 반도체 제조업체 넥스페리아는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등 비교적 단순한 범용 칩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18년에는 36억3,000만 달러(약 5조3,000억원) 몸값으로 중국 윙테크에 매각되며 중국계 기업으로 편입됐고, 이후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주요 고객으로 두며 차량용 칩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다만 제품의 약 70%가 중국에서 패키징을 거쳐 글로벌 시장에 유통되는 구조 때문에 네덜란드와 중국, 미국 규제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 기업으로 분류됐다.
중국과 네덜란드의 갈등은 여러 단계의 누적된 충돌로 이어졌다. 시발점은 윙테크의 지분을 보유한 중국 공산당이 기술 접근권을 강화하는 흐름을 보이면서 네덜란드 정부가 핵심 기술 유출 가능성에 우려를 제기한 데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경제부 조사에서는 장쉐정 전 넥스페리아 최고경영자(CEO)가 유럽 내 인력의 40% 감축 및 뮌헨 연구개발(R&D) 센터 폐쇄 계획을 추진했다는 사실과 영국 맨체스터 공장 기술 자료가 이미 중국으로 이전됐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이와 함께 독일 함부르크 공장의 일부 장비마저 중국 이전을 준비했다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네덜란드 정부는 더 이상 방치할 경우 국가적 공급망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네덜란드는 지난 9월 ‘물자 가용성법’을 발동해 넥스페리아의 경영권을 직접 장악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했고, 회사의 행정적 결함과 위험 신호를 이유로 경영진 결정을 뒤엎는 절차에 착수했다. 여기에 미국이 중국 기업의 해외 자회사까지 제재 대상에 자동 포함시키는 규칙을 예고하면서 넥스페리아 역시 윙테크와 동일한 제재를 받을 위기에 처했다.
중국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중국 상무부는 “(네덜란드가) 중국 자회사의 자산을 압류한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10월 4일부터 자국에서 생산된 넥스페리아 제품의 수출을 전면 차단했다. 이러한 조치는 글로벌 완성차업계에 공급 중단 우려를 낳았다. 여기에 제재 대상 기업이 보유한 자회사가 자동으로 규제에 편입되는 미국의 새 규칙마저 시행이 다가오면서 네덜란드는 이중 압박에 직면했다. 이후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해당 규칙의 시행을 1년 유예하며 긴장이 일부 완화됐고, 네덜란드는 이 틈을 타 중국과의 협의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넥스페리아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은 인수 구조에서 비롯된 기술 이전 우려와 네덜란드 정부의 경영권 장악, 중국 정부의 수출 통제 조치, 미국의 규제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빠르게 연쇄 작용하면서 격화된 사안으로 정의할 수 있다. 네덜란드는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 넥스페리아 경영권 장악 조치를 유예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조정했으나 기술 이전과 기업 지배구조, 공급망 통제라는 근본 원인은 그대로 남아 있어 향후 갈등 재점화 가능성은 농후한 상태다.

각국 안보·투자 규제와 충돌, 반복적 분쟁
해외 기업과 자산을 인수한 뒤 이를 통해 기술·데이터·공급망 통제에 영향을 미쳐 온 중국의 행보는 비단 넥스페리아 사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미국 정보기관 요원들을 대상으로 배상 책임보험을 판매하던 ‘라이트 USA’ 인수가 대표적이다. 중국 푸싱그룹은 자국 국유은행 4곳의 12억 달러(약 1조7,600억원) 대출을 기반으로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소속 비밀 요원들의 개인정보를 보유한 해당 보험사를 조용히 인수했다. 이는 표면상 불법성이 없는 거래였지만, 중국 자본이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전략적 정보와 민감한 산업 기반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을 낳았다.
미국 윌리엄앤메리대학교 부설 연구소 에이드데이터가 공개한 자료는 이러한 움직임이 단일 기업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 훨씬 넓은 투자 흐름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2000년 이후 중국은 해외에 2조1,000억 달러(약 3,000조원)를 투자했는데, 그 자금은 전기차·로봇·반도체 등 중국이 전략 산업으로 규정한 분야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국유은행 금리와 대출 방향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중국 특유의 금융 시스템을 고려하면, 이는 단순 투자를 넘어 핵심 기술과 공급망을 자국 영향권으로 편입하려는 정책적 목적을 띤 자본 흐름으로 해석된다.
넥스페리아를 둘러싼 갈등은 이 같은 흐름이 유럽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국유은행 대출로 인수된 기업이 기술과 운영권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렸고, 이에 대응해 네덜란드는 법적 감독권을 발동해 운영 구조를 사실상 이원화했다. 이 과정에서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 생산·운영 부문과 중국 제조·패키징 부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특수한 형태로 변모했고, 결국 중국 자본이 참여한 기업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중적 통제 구조’의 전형을 띠게 됐다. 각국 정부가 법제·규제 측면에서 대응하는 사이 중국이 생산·시장 접근성을 활용해 대응 수단을 다변화한 결과다.
이처럼 중국 자본이 해외에서 민감한 기업을 인수하고, 해당 기업의 기술·데이터·공급망을 자국의 전략적 이익과 결부시키는 사례는 전 세계 각지에서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왔다. 각국은 뒤늦게 투자 심사와 안보 검증 체계를 강화했으나, 이미 중국 자본에 인수된 기업들은 국제 분쟁 가능성을 내포한 채 글로벌 시장 내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향후 중국 기업이 참여한 여타 인수·투자 건들에서도 유사한 충돌이 재발할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넥스페리아는 앞으로 벌어질 더 큰 갈등의 전조로 남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