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트럼프 관세 이후, 동남아가 새로운 제조 허브로 부상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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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격차가 만든 생산 거점 이동 압력 반도체·전자 중심 동남아 제조 기반의 확대 숙련 인력·교육체계 재편이 좌우하는 성장 경로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면서 생산 거점의 이동이 한층 뚜렷해지고 있다. 중국의 동남아시아(ASEAN) 제조업 투자는 2017년 125억 달러(약 17조원)에서 2023년 373억 달러(약 51조원)로 크게 늘었고, 같은 기간 ASEAN의 반도체 수출도 2,688억 달러(약 370조원)에 도달하며 세계 시장의 24~25%를 차지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의 대중(對中) 관세 체계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이 기존 공급망 유지 비용을 다시 계산하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공장 이전과 인력 재배치가 잇따르는 가운데, 동남아 제조업은 단순한 우회 경로를 넘어 독자적 생산 기반을 넓히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관세 격차가 촉발한 생산 이전의 가속
미국의 무역법 301조(Section 301)는 약 3,700억 달러(약 499조원) 규모의 중국산 품목에 7.5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2024년 공식 검토에서도 이 조치가 2017~2023년 동안 중국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9%포인트 이상 낮춘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들은 이 시점부터 중국에서 직접 수출하는 방식의 위험을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략 품목에 더 높은 관세를 예고하면서 공급망 재편은 ‘가능성’이 아니라 ‘필요한 선택’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는 투자 흐름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분석기관 로듐그룹(Rhodium Group)에 따르면 중국의 ASEAN 제조업 투자는 2017년 125억 달러(약 17조원)에서 2023년 373억 달러(약 50조원)로 거의 세 배 증가했다. 공장과 창고뿐 아니라 기술교육 센터까지 함께 조성되며, 생산라인은 단순 설비 이전을 넘어 인력·공정·품질관리 체계 전체가 통째로 이동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관세 격차는 기업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동인이 되었고, 글로벌 생산 지도를 다시 그리는 출발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동남아 제조업의 기회 전환과 생산 기반 확장
관세 격차는 기업들의 이동 동기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2025년 동남아 국가들과의 협상을 통해 19~20% 수준의 상호 관세를 적용하며 초기 40%대였던 조건을 크게 낮췄다. 반면 중국산 제품이나 중국에서 우회된(환적) 상품에는 40% 이상의 벌칙 관세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생산 거점 선택에서 발생하는 비용 차이는 더욱 커졌다. 이 격차는 공장 이전뿐 아니라 신규 설비 투자, 조달 체계 조정, 현지 파트너십 강화 등 기업 전략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
이는 수출 지표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ASEAN의 반도체 수출은 2023년 2,688억 달러(약 363조원)에 이르며 세계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했고, 베트남의 소비자 전자 수출 비중도 2017년 8.3%에서 2023년 10.4%로 꾸준히 상승했다. 로이터는 베트남의 미국 수출이 2024년 1,424억 달러(약 192조원)에 달해 GDP의 30%를 구성한다고 전했다. 산업단지 확장, 신규 물류 허브 조성, 외국 기업의 장기계약 체결이 이어지며 동남아 수출 구조는 점차 다층적인 형태로 재편되고 있다.
이 흐름 속에서 동남아 제조업의 생산 기반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이전되는 공장과 증가하는 기술 인력은 지역 공급망의 두께를 키우고 있으며, 부품·소재 기업들의 이전 검토와 인프라 투자 계획도 동시에 확대되는 양상이다.

주: 2017~2023년 중국의 아세안 제조업 투자는 약 12억 5,000 달러(약 1조7,000억원)에서 37억 3,000 달러(약 5조원)로 확대돼 관세 회피 목적의
생산 이전 흐름을 보여준다.
동남아 생산 이전이 촉발한 교육·기술 환경 변화
기업들이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기면서, 필요한 숙련 인력의 기준 역시 함께 이동하고 있다. ASEAN 인구 6억 8천만 명 중 40세 이하가 65% 이상이라는 점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탄탄한 인력 기반을 제공한다. 전자·반도체·배터리 등 고난도 제조업이 확대될수록 기술교육, 품질관리, 에너지 효율 운영 등에서 요구 수준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으며, 기업과 교육기관 모두 새로운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산업단지 주변의 대학과 직업학교를 중심으로 기업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편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 점도 주목된다.
그러나 기존 직업교육 체계가 경공업 중심으로 설계된 탓에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지적은 여전히 크다. 2018~2023년 ASEAN 반도체 수출이 41.6% 증가하고 외국인 제조업 투자가 꾸준히 확대된 흐름은 산업 구조가 이미 한 단계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공정제어, 설비관리, 공장자동화 등 세부 기술 중심의 교육과정 개편 요구가 커지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교사 재교육 프로그램과 실습 장비 교체 논의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누적되면서 노동시장과 산업 기반 역시 점차 새로운 구조로 재편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주: 아세안 반도체 수출은 2018년 약 1,899억 달러(약 256조원)에서 2023년 2,688억 달러(약 363조원)로 증가하며 동남아 제조업의 고도화를 보여준다.
동남아 제조업의 향후 10년을 결정할 정책 선택
정책 환경도 변화 속도를 따라가며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이 환적 단속을 강화하면서 베트남 등 일부 국가는 중국 기술 의존도를 낮추라는 요구를 받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46%의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로이터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기업들은 물류 우회보다 현지 공장 설립을 택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ASEAN 정부는 미국산 제품의 시장 접근을 넓혀주는 조건으로 낮은 관세 구간을 확보하며 생산 유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동남아 제조업이 더 이상 ‘중간 기착지’가 아니라, 독자적인 생산 중심지로 자리 잡아가는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
앞으로의 성패는 각국의 정책 역량에 달려 있다. 투자 인센티브를 기술훈련, 교사 역량 강화, R&D 협력과 연계할 경우 가치사슬 상단으로 이동할 여지가 커지고, 공정제어·소재 기술·공장자동화 등 고난도 분야에서도 기반을 다질 수 있다. 반대로 정책 조정이 지연되면 생산 규모는 유지되더라도 임금 상승, 기술 축적, 산업 고도화 속도는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세 환경이 생산 이전의 ‘출발점’을 만들었다면, 각국의 정책은 앞으로 동남아 산업 구조를 실제로 어떻게 형성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rump’s Tariffs and the Quiet Rise of Southeast Asia Manufacturing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