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美 관세 협상 주역" TSMC 560억 달러 설비 투자, 韓·日·대만 제조업 판도 변화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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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2026년 설비 투자 규모 520억~560억 달러로 책정 美·대만 관세 협상 따라 대미 생산 시설 투자 확대 예정 통일된 韓·日·대만 관세율, 생산성 경쟁 시대 열린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2026년 설비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인공지능(AI) 호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만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대규모 투자 패키지를 포함한 형태로 타결된 결과다. 이번 관세 협상을 통해 대만과 한국·일본의 관세율이 동일 수준으로 조정되자, 일각에서는 향후 3국 제조업 경쟁 판도가 가격 경쟁력이 아닌 '생산성'을 중심으로 격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공격적 투자 계획 공개한 TSMC
15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TSMC는 이날 2026년 설비 투자 규모를 520억~560억 달러(약 76조3,360억원~82조2,080억원)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5년 대비 최소 25% 이상 늘어난 수준이자, 시장 예상치를 훌쩍 웃도는 수치다. TSMC는 이 가운데 70~80%를 3나노(N3)와 2나노(N2) 등 선단 공정에 투입할 계획이다. 아울러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설비 투자 급증에 대한 시장 우려와 관련해 “고객(빅테크)들이 AI로 실제 돈을 벌고 있는지 재무제표를 직접 확인했다”며 “그들은 정말 부자(Rich)더라”라고 말했다. 이는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시장 '큰손'들의 자금력과 강경한 집행 의지를 강조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웨이 회장의 태도에는 중장기적으로 AI발(發) 시장 호황이 지속되리라는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 TSMC는 2026년 매출 증가율이 약 30%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TSMC는 AI 가속기 시장 '큰손'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사로, AI 열풍이 본격화한 이후 실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은 5,057억 대만달러(약 2조3,490억원)로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고, 같은 기간 매출은 331억 달러(약 48조6,300억원)에 달했다. TSMC는 2025년 연간 매출이 처음으로 1,000억 달러(약 146조8,000억원)를 돌파할 것이라 예상 중이다.
TSMC의 자신감 넘치는 행보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관련 시장이 철저한 '공급자 우위' 구조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객사들이 물량을 따내기 위해 '을'의 위치를 자처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엔비디아가 TSMC에 건넨 파격적 제안을 살펴보면 이 같은 흐름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대만 TF인터내셔널증권의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15일 X(옛 트위터) 계정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TSMC에 단순히 생산 라인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공장을 지을 ‘땅’ 자체를 예약하겠다고 나선 것 같다”고 언급했다. 궈밍치에 따르면 황 CEO는 지난해 11월 대만 타이난의 팹18(Fab18) 인근 P10, P11 부지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직접 지불할 의사가 있다고 TSMC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파운드리 고객사는 라인 등 할당된 생산량을 두고 협상을 진행하는데, 엔비디아는 아예 공장 부지를 통째로 선점해 경쟁사들의 진입을 원천 봉쇄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만의 '대미 투자 패키지', TSMC가 중심축
TSMC의 공격적 설비 투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대만 정부가 미국과 관세 협상을 체결하며 미국에 총 5,000억 달러(약 736조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투자 패키지를 제공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15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의 투자 패키지는) 대만 반도체·기술 기업들의 직접 투자 2,500억 달러(약 368조원)와 대만 정부가 중소기업의 대미 진출을 돕기 위해 제공하는 신용 보증 2,500억 달러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대만 기업들은 이 자금을 통해 미국 내에서 첨단 반도체, 에너지, AI 등 핵심 산업의 생산 및 혁신 역량을 구축하게 되며, 대만 정부 역시 별도의 보증 프로그램을 가동해 미국 내에서 완전한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 같은 합의의 중심축에 선 것이 TSMC다. 현재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6개를 건설 중이거나 완공한 TSMC는 이번 무역 협정에 따라 5개의 공장을 추가로 증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트닉 장관은 “TSMC가 애리조나 공장 부지에 인접한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매입했다”며 “미국 내 생산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대만의 대규모 투자에 발맞춰 양국 간 상호 관세율을 기존 20% 수준에서 15%로 낮추고, 대만 반도체 기업들에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만 기업은 공장 건설 기간 생산 능력 대비 최대 2.5배 물량에 품목별 관세 면제 혜택을 받으며, 공장 완공 후에도 생산 능력의 1.5배 물량까지는 무관세로 미국 수출이 가능하다. 만약 대만 기업이 미국에서 웨이퍼 100만 개를 생산하는 공장을 짓는다면, 건설 기간에는 대만 본토에서 만든 웨이퍼 250만 개를 관세 없이 미국으로 들여와 팔 수 있게 되는 셈이다.

韓-日-대만의 경쟁 관계
대만이 관세 협상 과정에서 대규모 대미 투자를 단행하는 강경책을 선택한 것은 경쟁국으로 꼽히는 한국, 일본과의 관세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국은 지난해 7월 미국에 3,500억 달러(약 515조원)를 투자하는 조건으로 상호관세율을 15%까지 낮춘 바 있다. 일본 역시 5,500억 달러(약 760조원) 규모 대미 투자와 자동차, 쌀, 농산물 시장 개방을 약속하며 기존 25%였던 관세를 15%로 인하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대만에는 지난해 8월 20%의 관세율이 책정됐다. 아직 양국 간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갑작스레 미국 측이 관세율을 결정한 것이다.
이는 작년 4월에 발표된 32%보다 낮아진 수치지만, 대만 내에서는 기대에 못 미친 결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한국과 일본 대비 관세율이 높았던 탓이다. 3국은 반도체 및 전자 산업 관련 제품을 주요 수출 품목으로 삼으며 치열한 제조업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특히 대만의 경우 대미 수출 중 60%가 반도체를 포함한 정보기술(IT) 분야에 치중돼 있다. 일본·한국과 관세 격차가 발생하면 TSMC를 비롯한 대만 기업들의 대미 수출 경쟁력이 눈에 띄게 약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관세 협상으로 3국이 나란히 미국으로부터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받게 된 가운데, 시장에서는 향후 이들 국가가 가격 경쟁을 넘어 '구조적 경쟁'을 벌이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각기 짊어진 구조적 한계를 먼저 극복하는 국가가 최종적으로 승기를 쥐게 되리라는 분석이다. 우선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저출산·고령화까지 겹치며 약 30년 동안 저성장·디플레이션에 짓눌리고 있다. 생산 인구 감소와 내수 부진이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은 것이다.
수출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장기간 고환율과 저임금을 용인해 온 대만의 경우, 수입 물가 상승·저임금·국민 생활 수준 정체 등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현지 기업들이 미국 등 해외로 생산 거점을 옮기는 ‘산업 공동화’에 속도가 붙으며 위기가 한층 가중되는 추세다. 수출로 벌어들인 기업 이익이 국내에서 낙수 효과를 일으키지 못하며 내수 침체 위험이 커진 것이다.
한국은 낮은 생산성과 고임금으로 인해 곤혹을 치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57.5달러(2024년 기준)로, 7년째 OECD 38개 회원국 중 30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물가를 고려한 구매력평가환율로 환산한 우리나라 임금은 일본·대만을 20%가량 상회(한국경영자총협회 분석치 기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국내 제조업 상용근로자 연 임금 총액은 6만7,491달러(약 9,938만원)로 일본보다 27.8%, 대만보다 25.9% 높았다. 고임금·저생산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는 위태로운 구조인 만큼, 임금 체계 재정비 및 생산성 향상 대책 마련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