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패권전쟁] "임상·신약 개발 최전선" 정부 지원 업고 질주하는 中 바이오, 美 견제 실효성 '의문'
입력
수정
中 바이오, 정부 지원 업고 시장 존재감 대폭 확대 ADC·siRNA 등 첨단 분야서 美 추월, 빅파마 협력도 급증 제재에 총력 기울이는 美, 中 성장 제동 걸기엔 역부족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바이오제약 시장의 판을 뒤흔들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과 기업 친화적인 현지 시장 환경을 발판 삼아 양적·질적 성장을 가속화하며 미국의 기존 바이오 패권을 위협하는 양상이다. 입지를 위협받게 된 미국은 각종 제재를 앞세워 중국 바이오산업의 성장세를 견제 중이지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미국의 조치가 중국에 큰 위협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中 바이오의 글로벌 영향력
6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중국 바이오 업체들은 최근 수년 사이 가파른 양적·질적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4년 발표된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분석을 살펴보면, 중국은 바이오 분야 핵심 기술 7개 가운데 합성생물학, 유전체 분석, 바이오 제조, 항생제·바이러스 등 4개 기술에서 미국을 제치고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벨퍼 센터가 발표한 '핵심 및 신흥 기술 지수' 바이오 분야에서는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의 존재감은 첨단 바이오 중심 특허 출원 부문에서도 두드러진다. 중국은 2019년부터 미국을 추월해 바이오 특허 최다 출원국으로 등극했으며, 우수 특허 출원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 제너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합성 의약품의 복제약) 생산국에 그쳤던 중국이 첨단 바이오 연구의 중심축으로 거듭났다는 의미다. 특히 중국은 항체-약물 접합체(ADC)와 소간섭리보핵산(siRNA) 등 고난도 신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현재 초기 임상 단계에 진입한 전 세계 신규 ADC 후보 물질 중 50% 이상이 중국 기업의 제품이다.
기술 경쟁력을 판단하는 척도가 되는 라이선스아웃(기술 이전) 건수와 금액도 증가했다. 지난 한 해 동안 중국 기업이 체결한 라이선스 계약은 100건을 넘어섰으며, 전체 거래 규모는 850억 달러(약 125조원)에 달했다. 구체적 거래 사례를 살펴보면, 노바티스는 지난해 9월 중국 바이오 기업 아르고와 52억 달러(약 7조4,900억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siRNA 기술력을 확보했다. 영국 GSK는 지난 14일 장쑤헝루이제약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치료제 등 12개 신약 후보 물질에 대해 최대 120억 달러(약 17조3,000억원) 규모의 협력 계약을 맺었다.
정부가 급속 성장 떠받쳐
중국 바이오산업의 급격한 성장세는 정부의 지원사격이 견인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를, 2016년 ‘헬시 차이나 2030’을 발표하는 등 바이오 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이어 왔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는 바이오를 포함한 첨단 제조·기술 산업에 대한 자본 투자를 유도하는 산업 전략이다. 헬시 차이나 2030은 보건·의료·바이오 혁신을 하나의 국가 경제 전략으로 병합하는 방안으로, 바이오 분야의 연구개발(R&D) 활성화와 투자 확대를 이끌었다.
중국 정부는 신속심사제도, 바이오테크 클러스터 인센티브, IPO 개혁 등 정부 주도 혁신을 통한 제도적 성장 기반 마련에도 힘썼다. 지난 2018년에는 '묵시적 승인(implied approval)' 절차를 도입하며 임상시험 문턱을 대폭 낮추기도 했다. 묵시적 승인은 규제당국이 정해진 기간 내에 반대 의견을 내놓지 않으면 신약 임상시험이 자동으로 시작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그 결과 중국 바이오 산업계는 창업 문턱이 낮고 의사 결정이 빠른 기업 친화적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에 더해 중국 정부는 지난해 고가 혁신 신약의 시장 진입을 지원하기 위해 ‘카테고리 C’ 상업건강보험 항목을 신설했다. ADC, 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등 공공급여(NRDL) 대상에서 제외된 고가 치료제들에 민간 보험을 통한 수익화 통로를 열어준 것이다. 같은 해 상하이 STAR 마켓에서는 '성장 계층(Growth Tier)' 제도도 도입됐다. 이 제도는 수익을 실현하지 못했지만 정부 인허가를 받은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R&D 성과와 시장 전망이 입증된 기업에 상장 기회를 제공한다. 해당 조치를 통해 기존 수익성 중심이었던 상장 기준이 한층 유연해졌고, 바이오를 비롯한 고위험 신기술 분야 스타트업의 자금 조달 환경이 대폭 개선됐다.

바이오 패권국 美, 견제 본격화
기존 바이오 패권국인 미국은 중국의 급성장을 명백한 위기로 인식하고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중국을 비롯한 적대국이 미국의 개방된 과학·규제 시스템 허점을 활용했다고 지적하며, 의약품 허가와 라이선스 거래에 엄격한 제한을 가하는 행정명령 초안을 배포했다. 초안에는 △중국 바이오 기업으로부터 의약품을 허가받으려는 미국 제약사에 대한 국가 안보 차원의 심사 △중국 임상시험 데이터 제출 기업의 규제 수수료 인상 △FDA의 중국 임상 자료 검토 강화 △아세트아미노펜 등 중국 의존도가 큰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 촉진 △미국 생산 제품에 대한 정부 구매 우대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지난해 12월 미 의회를 통과한 국방수권법안(NDAA)에도 중국 바이오 기업을 견제하는 '생물보안법' 성격의 조항이 담겼다. 생물보안법은 미국인의 개인 건강과 유전 정보를 우려 기업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발의된 법안으로, 중국 최대 유전체 회사 BGI그룹과 관계사의 미국 내 사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2024년 1월 발의돼 같은 해 9월 미국 하원을 통과했으나, 2024년 말 상원 표결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만 NDAA는 생물보안법과 달리 '우려 바이오 기술 제공자'와의 계약을 제한할 뿐, 특정 중국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국의 중국 바이오 규제가 사실상 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 본다. 글로벌 빅파마(거대 제약사)들이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좀처럼 끊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현시점 중국은 임상과 신약 개발 최신 트렌드를 주도하는 국가"라며 "글로벌 빅파마 입장에서는 관계를 끊기 어려운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미국의 중국 바이오 견제가 한국 등에 반사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지만, 이 역시 비약에 가깝다고 본다"며 "CDMO(위탁개발생산) 등 일부 분야에서는 기회가 생길 수도 있지만, 산업 구조와 경쟁 구도를 감안하면 한국을 명백한 수혜국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