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플레이션 온다" 때 이른 폭염에 유럽권 '비상', 생활 마비 넘어 거시경제 리스크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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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씨 40도 안팎 폭염에 짓눌리는 유럽, 실생활 제약 본격화 에너지·노동 생산성·물가 등 전방위 경제 압박 가중 전망 글로벌 리스크로 부상한 기후플레이션, 각국 중앙은행 딜레마 빠져

유럽 전역이 40도(이하 섭씨)를 오르내리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각국이 알코올 소비 금지, 단축 수업·휴교 등 비상 대책을 속속 발령할 정도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이상기후가 단순 생활 불편을 야기하는 것을 넘어, 유럽 경제 전반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후변화가 물가를 밀어 올리고 거시경제 리스크를 가중하는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 현상이 심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 덮친 극단적 폭염
21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정부는 전국 96개 지역 중 35개 지역에 최고 단계인 적색 열파주의보를 발령했다. 이는 이날 파리 등 남서부 지역의 온도가 39∼41도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보된 데 따른 조치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긴급 위기 회의를 개최해 적색 열파주의보가 발령된 35개 지역에서 열리는 대규모 음악 축제에서의 알코올 소비를 선제적으로 금지했다. 프랑스 국철(SNCF)도 에어컨 고장 위험을 근거로 71편의 장거리 열차 운행을 전격 취소했고, 다수의 학교가 기말고사를 연기하거나 단축 수업을 진행했다.
같은 날 독일 대부분 지역에서도 기온이 38도에 근접하면서 폭염주의보가 발령됐으며, 소위 ‘폭염 휴교’ 조처도 취해졌다. 독일 기상청은 폭염과 높은 습도가 강력한 폭풍을 야기할 수 있다며 경보를 내리기도 했다. 스페인 기상청도 22∼23일 이베리아반도 내륙과 발레아레스섬들에서 최고 기온이 37∼39도까지 오르고, 타구스와 과디아나, 과달퀴비르 등지에선 40∼42도까지 치솟아 폭염이 정점에 달할 것으로 예보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설치된 월드컵 야외 거리 응원장(팬 존)도 극심한 더위로 인해 폐쇄됐다.
포르투갈 현지 기상청 역시 23∼24일 자국 일부 지역에서 42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발생할 것이라 예보했다. 36∼37도를 오가는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의 콜로세움을 찾은 관광객들이 더위를 피해 지하 유적지로 대피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영국 기상청도 22∼23일 일부 지역 최고 기온이 36도까지 뛸 것으로 보고, 22일 새벽 1시를 기해 잉글랜드 남동부와 웨일스 남부 상당 지역에 두 번째로 높은 폭염 경보인 '주황'을 발령했다.
경제적 위험 요소 가시화
이러한 폭염은 유럽 경제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에서는 폭염과 강한 일사가 겹치는 여름 낮 시간대에 태양광 발전이 활성화하며 전력 도매가격이 0 또는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현상이 빈번히 발생한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전력 가격 하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력 시장의 구조적 불균형을 드러내는 신호에 가깝다. 태양광 발전은 한낮에 집중되지만, 폭염으로 인한 냉방 수요는 오후 늦게까지 이어지고 저녁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낮에는 전력이 남아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해가 진 뒤에는 태양광 공급이 사라진 상태에서 냉방 수요가 남아 전력망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전력 가격은 시간대에 따라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 전력 도매가 급락은 재생에너지 산업 성장에도 제약이 된다. 태양광 발전 사업자가 전기를 많이 생산하고도 충분한 이익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신규 재생에너지 투자 유인이 줄고, 보조금이나 장기 계약 등 정책 지원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기후는 업무 능률과도 직결된다. 글로벌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극심한 더위는 개인의 작업 능력을 떨어뜨리고 노동 생산성 저하 및 경제 산출 감소를 야기한다. 이 같은 결론은 유럽의 과거 폭염 사례를 지역·산업별로 분석해 도출됐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유사한 분석을 내놨다. ECB는 여름철 폭염이 발생한 지역에서는 경제 활동이 약 1% 감소하며, 폭염 2년 뒤에는 산출 감소 폭이 1.5%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계산했다. 폭염이 지나가면 곧바로 경제가 회복된다는 기존 인식과 달리, 생산 차질과 물가 상승 압력이 장기간 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폭염이 지속되면 물가도 상향곡선을 그리게 된다. 앞서 유럽환경청은 기후 변화로 유럽의 폭염, 홍수, 가뭄의 빈도 및 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물 공급, 농업, 생태계, 기반 시설이 압박을 받는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2022년 여름 유럽을 덮친 폭염은 스페인 올리브 재배 지역을 황폐화했고, 영국에서는 더위에 지친 닭들이 폐사하며 육계 생산량이 전년 대비 9% 급감했다.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70년 만에 최악의 가뭄으로 리소토(risotto)용 쌀 수확량이 대폭 감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원재료 공급망 차질은 전반적인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역내 인플레이션 위기를 가중할 수 있다. 이에 더해 폭염은 철도 선로 변형, 전력 설비 과열, 차량 냉방 부담 증가 등 교통망 애로사항을 유발하며, 이로 인한 운송 지연은 출퇴근, 물류망, 기업 영업시간 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기후플레이션發 거시경제 압박
이 같은 기후플레이션 위기는 전 세계적 '뇌관'으로 급부상하는 추세다. 글로벌 물가를 끌어올리는 핵심 경로는 결국 유럽과 마찬가지로 식품 가격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슈퍼컴퓨팅센터의 막시밀리안 코츠 연구원, ECB,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PIK) 연구진이 기온 상승과 물가의 연관성을 121개국 월별 소비자물가지수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기온 상승이 식품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 12개월 동안 지속된다. 연구진은 고온 현상만으로 2035년까지 글로벌 식품 물가가 연간 최대 3.2%P, 전체 소비자물가가 최대 1.18%P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추정치도 제시했다.
문제는 이러한 물가 상승 압력이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폭염과 가뭄, 홍수 같은 기후 충격은 발생 시점과 강도, 지역별 피해가 불규칙하다. 같은 기온 상승이라도 원래 더운 지역과 서늘한 지역, 식품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와 낮은 국가가 받는 충격 역시 상이하다. 이상기후가 세계 물가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임과 동시에, 국가별·지역별 물가 격차를 확대하는 변수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물가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 정책 판단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은 수요를 식혀 물가를 낮출 수는 있지만, 기후 재난으로 발생한 공급 차질 자체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물가를 잡기 위해 과도한 긴축을 단행하면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를 위축시켜 실물 경제 부담을 키울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물가 상승을 일시적 현상으로만 보고 방치하기도 어렵다. 기후 충격이 반복되면 소비자와 기업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해 임금 인상 요구와 가격 전가 흐름이 본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 변화는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중앙은행 통화 정책의 신뢰와 물가 안정 체계를 시험하는 일종의 거시경제 리스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