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금·리스크 분담" 대만·일본·인도 반도체 동맹 결성, 3국 산업 육성 의지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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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역할 분담' 동맹 구축한 대만·일본·인도 대만·인도 민관, 공격적인 반도체 분야 투자 단행 엘피다 실패 딛고 총력전 나선 일본, 부활 전략 주축은 '라피더스'

대만과 일본, 인도가 반도체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만과 일본이 각각 기술력·자금을 제공하고, 인도가 초기 기술 개발 단계에서 파일럿 역할을 수행하는 ‘역할 분담’ 구도가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협력 전선이 각국의 강력한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에서 기인했다는 평이 나온다.
대만·일본·인도의 반도체 협력 구도
26일 대만 IT 매체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일본 최대 금융그룹 미쓰비시UFJ은행과 대만 반도체 인재 사관학교인 국립 양밍차오퉁대학교(NYCU)는 대만 신주시에서 반도체 산업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공식 체결했다. NYCU의 국제 반도체 인재 양성 전문가인 쳉 YC 교수는 "인도는 대만 산업기술연구원(ITRI)의 성공 공식을 이식해 초기 기술 개발의 위험을 분산하고, 일본은 고도의 금융 역량을 앞세워 첨단 패키징 공정과 교육 인프라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는 최근 시장 곳곳에서 협력 전선을 구체화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생산 서비스(EMS) 기업인 대만 폭스콘은 21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야무나 고속도로 산업개발청(YEIDA) 구역에서 반도체 패키징·테스트(OSAT) 공장의 착공식을 진행했다. 착공식을 주관한 것은 인도의 IT 대기업 HCL 그룹과 폭스콘의 투자 합작사 '인디아 칩'이다. 폭스콘에 따르면 인디아 칩은 향후 수년간 디스플레이 드라이버 칩(DDI) 생산 시설에 3,700억 루피(약 6조3,3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며, 이를 통해 현지 공급망 구축 및 3,500명 이상의 직간접 고용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는 일본 구마모토 2공장에서 3나노(㎚) 반도체를 양산하기로 했다. 당초 TSMC는 해당 공장에 122억 달러(약 17조4,000억원) 규모 자금을 투입해 6~12나노 반도체 생산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었으나, 계획을 바꿔 일본 최초의 3나노 생산 거점 설립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구마모토 2공장에 쓰이는 설비 투자 금액은 170억 달러(약 24조2,45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구마모토 2공장에 최대 7,320억 엔(약 6조6,920억원)을 보조하기로 했던 일본 정부도 추가 지원을 검토할 방침이다.
자금 빨아들이는 각국 반도체 산업
3국이 공격적으로 협력 전략을 펼치는 배경에는 각국의 강력한 반도체 산업 육성 의지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대만은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공격적인 지원을 실시 중이다. 연구개발(R&D) 비용의 최대 25%, 첨단 설비 투자 비용의 약 5%에 세액 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이른바 ‘대만판 칩스법’이 대표적인 예다. 대만 반도체 시장을 떠받치는 TSMC도 2026 회계연도에 최대 560억 달러(약 81조원) 규모의 설비 투자를 단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인도 정부도 반도체 분야에서 10개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하며 관련 산업 지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종적인 목표는 반도체 생산 공장(팹) 2곳과 패키징 시설 8곳이 포함된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것이며, 투자 규모는 1조6,000억 루피(약 25조원)에 달한다. 이 밖에도 인도는 2024년 3월 1,037억 루피(약 1조6,500억원) 예산으로 출범한 '인도 AI 미션'을 통해 연구자, 중소기업, 학계에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보조금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민간 기업들의 성장 의지도 뚜렷하다. 일례로 인도 수라트(Surat) 기반 화학 기업 아쿠타스케미컬스는 최근 한국 반도체 화학소재 업체 인디켐 지분 75%를 인수하며 한국 반도체 소재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총투자 규모는 200억 루피(약 3,140억원)다. 인디켐은 인도 정밀화학 기업 아쿠타스 케미컬과 한국 JN머트리얼즈가 합작해 설립한 반도체 소재 기업으로, 현재 한국 내 제조 공장 건설 및 설비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가동 목표 시점은 올해 말이며, 완공된 시설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증설 흐름에 맞춰 반도체용 화학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日, 반도체 재부흥에 박차
일본은 라피더스를 앞세워 '반도체 부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라피더스는 2022년 정부 주도하에 일본 반도체 산업의 재부흥을 목적으로 설립된 파운드리 기업으로, 정부 지원을 발판 삼아 경쟁력을 키워 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6~2027 회계연도 중 라피더스에 추가로 1조 엔(약 9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를 포함한 총 국비 지원 규모는 2조9,000억 엔(약 27조원)에 달한다. 이밖에 일본 간판 기업 30곳도 라피더스에 총 1,600억 엔(약 1조4,230억원)을 출자한다.
일본 민관의 공격적인 투자는 엘피다의 실패 전례를 만회하기 위한 일종의 '총력전'으로 풀이된다. 과거 일본 메모리 반도체의 희망으로 불리던 엘피다는 도시바, 히타치, NEC의 D램 사업을 통합해 1999년 출범한 기업이다. 출범 이후 엘피다는 한동안 서버·그래픽용 범용 D램과 미세 공정 기술 부문에서 유의미한 경쟁력을 유지했고, 매년 흑자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 갔다. 2003년에는 미쓰비시의 D램 사업까지 인수하며 덩치를 불렸고, 이듬해엔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반도체 다운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2007년 2분기에 첫 적자를 기록한 엘피다는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영향으로 1,779억 엔(약 1조6,26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적자를 떠안았다. 이에 2009년 일본 정부는 엘피다에 공적자금 300억 엔(약 2,700억원)을 지원했고, 채권단도 1,000억 엔(약 9,100억원)을 수혈했다. 이후 2009~2010년 반짝 흑자를 낸 엘피다는 2011년 D램 가격이 급락하며 재차 궁지에 몰렸고, 결국 2012년 2월 4,480억 엔(약 4조95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짊어진 채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시장은 엘피다의 붕괴를 초래한 핵심 원인 중 하나로 정책의 실패를 꼽는다. 엘피다는 2000년대 후반 50나노, 40나노 공정 전환을 추진하며 차입을 통해 대부분의 투자 재원을 조달했다. 문제는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본 은행권이 위험 자산을 대폭 축소하면서 엘피다의 자금 조달 비용이 급격히 상승했다는 점이다. 여기에 엔고까지 겹치며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때 일본 정부가 엘피다에 내준 지원은 대부분 단기 운전 자금과 보증 형태로, 불황을 버티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엘피다가 무너진 후 반도체 경쟁력을 사실상 상실한 일본은 최근 들어서야 경쟁력 회복 및 자국 내 공급망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IT 전문매체 Wccftech에 따르면, 그간 일본 행정부는 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 △부지 무상 제공 △총소유비용(TCO) 절감 혜택 등을 약속하며 일본 내 공장 건설을 수차례 제안했다. 통상 첨단 반도체 팹 한 기를 건설하는 데 20조원 안팎의 비용이 투입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일본이 수조원의 현금을 지원하는 것과 다름없는 구조다. 다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 보호를 우선순위에 두며 이 같은 제안을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