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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관세 장벽 높이는 사이 EU는 무역 상대 다변화, 글로벌 통상 질서 재편 신호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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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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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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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 속 새 경제 파트너 발굴
인니·남미·인도 이어 호주와도 FTA 타결
다자 협정 기반 EU 중심 통상 네트워크 형성

유럽연합(EU)과 호주가 8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전격 타결하며 글로벌 통상 지형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이는 동남아시아·남미·인도와의 협상 타결에 이은 연쇄적 성과로,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불안정을 해소하려는 EU의 전략적 선택이 투영된 결과다. 보호무역주의 기치를 내건 미국의 관세 장벽이 공고해지는 시점에, EU는 개방형 통상 거점을 확장하며 결속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EU-호주 FTA 체결, 상품 관세 99% 철폐

24일(이하 현지시각)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호주 캔버라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FTA 최종 합의문에 공식 서명했다. 2018년 첫 협상을 시작한 지 8년 만에 이룬 성과다. 앞서 양측은 2023년 10월 호주산 소고기 수출 물량 확대와 이탈리아산 스파클링 와인 ‘프로세코’의 지리적 표시 인정 문제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을 전면 중단했다. 하지만 외부 통상 압박이 거세지자 지난해 협상 테이블에 다시 마주 앉았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타협점을 찾았다.

이번 협정 체결로 호주는 EU로 수출하는 상품 98%에 부과하던 관세를 즉시 철폐한다. 와인과 해산물, 원예 가공품이 대표 수혜 품목으로 꼽힌다. EU는 연간 3만600톤 규모 호주산 붉은 고기 수입 할당량을 신설하고 이 중 55%를 무관세로 들여오기로 양보했다. 대신 호주는 협정 발효 10년 이후부터 수출용 스파클링 와인 제품에 ‘프로세코’ 명칭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자동차 관세 장벽도 대폭 낮아진다. 호주는 유럽산 전기차에 매기던 사치세 부과 기준을 12만 호주달러(약 1억2,500만원)로 상향해 대다수 유럽산 전기차가 세금 면제 혜택을 받게 했다. EU는 호주 내 풍부한 리튬과 텅스텐 등 핵심 원자재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첨단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릴 발판을 마련했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EU 기업의 호주 통신·금융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기로 했다.

경제 협력과 함께 안보 동맹도 한층 두텁게 강화한다. 양측은 안보·국방 파트너십을 별도로 체결하고 방위 산업 협력을 비롯해 해양 안보, 사이버 보안, 대테러 대응을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러시아에 맞서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변함없는 지원 의지도 재확인했다. 또 호주가 EU의 첨단 분야 연구비 지원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에 준회원국으로 참가하는 협상도 시작하기로 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EU와 호주의 지리적 거리는 멀지만,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가까워졌다”며 양측이 공유하는 가치의 결속을 강조했다.

EU, ‘무역망 재편’ 속도

EU와 호주가 빠르게 거리를 좁힌 배경에는 글로벌 통상 환경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해부터 세계 각국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해 온 세계화와 자유무역 질서를 훼손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 홀로 자유무역 질서에서 이탈하려는 상황이고, 다른 나라들은 무역 보복을 하거나 서로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는 등 큰 틀에서는 여전히 자유무역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 질서에서 이탈한 미국을 대신해 그 수호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라는 현재로선 EU가 유일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그동안의 국가보조금과 기술탈취 등으로 인해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고, 일본은 경제 규모 측면에서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현시점 EU와 교역 상대국 간 체결된 무역협정은 40개를 웃돌며, 추가 협정들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대형 경제권과의 새 무역협정이 잇따라 체결되며 더 긴밀한 경제 협력은 물론 폭넓은 파트너십의 길도 열리고 있다. 인도네시아와의 협정은 지난해 9월 정치적으로 타결됐고, 올해 1월에는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우루과이 등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4개국과의 협정에 서명했다.

메르코수르 협정은 수십 년 동안 논의돼 온 사안으로, 특히 농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프랑스 등 일부 국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결됐다. EU 집행위원회는 메르코수르 4개국이 자국 내 비준 절차를 마치는 것을 전제로, 이 협정을 오는 5월 1일부터 잠정 발효시키기로 결정했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는 이미 비준을 마쳤다. 유럽의회가 농업 부문의 적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 협정을 유럽사법재판소(ECJ)에 회부한 상황이지만, 법적으로는 잠정 발효가 가능하다.

19세기 ‘졸페라인’ 모델 재현

인도와의 협정도 마찬가지다. 20년 가까이 논의돼 온 양국 협정은 올해 1월 말 최종 합의에 도달했다. 21세기 초부터 인도는 보호무역이 강한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기록하고 있는 인도는 오랫동안 방대한 국내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무역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EU에 있어 규모의 경제와 엄청난 속도의 경제 성장을 보이는 인도 시장은 주요 목표였다. 이에 EU는 인도와 2007년부터 FTA를 위한 공식적인 논의를 시작했지만 양측의 견해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지지부진하던 양국의 협상은 2022년 재개됐고 최근 6개월 사이에 급진전을 보였다. 메르코수르 협정과 같이 지정학적 고려가 합의를 이끈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협정 체결로 인도는 '다른 어떤 교역 상대국에도 제공한 적 없는 수준'의 관세 인하를 EU산 제품에 적용한다. 이는 EU의 대(對)인도 수출품의 96.6%에 해당하는 관세가 철폐되거나 인하되는 것이다. EU는 2032년까지 EU의 인도 수출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인도의 관세는 현재 110%에서 연간 25만 대를 한도로, 단계적으로 10%까지 낮아진다. 유럽산 기계(최대 44%), 화학제품(22%), 의약품(11%) 관세는 대부분 철폐된다. 또 최대 22%에 달하던 철강과 철 제품 관세도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EU가 “사실상 무역을 가로막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던 유럽산 식품에 대한 36% 이상 관세도 철폐하기로 했다. 유럽산 와인 관세는 150%에서 75%로 낮아지고 최종적으로는 최저 20% 수준까지 떨어질 예정이다. 유럽산 올리브유 관세 45%는 5년에 걸쳐 0%로 낮아지며, 빵과 과자류 등에 부과된 최대 50%의 가공 농산물 관세도 사라진다.

현재 EU는 호주와 인도에 그치지 않고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과의 협정 체결도 추진 중이다. 멕시코와의 개정 협정 역시 장기간 표류해 왔지만 올해 5월 말 서명식을 앞두고 있다. 영국과는 기존 협정을 재검토해 위생·식물검역(SPS) 분야의 일부 비관세 장벽을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스위스와도 무역 촉진을 위한 합의가 최근 도출됐다.

EU가 추진하는 광범위한 무역 네트워크 구축은 19세기 프로이센이 주도했던 독일 관세동맹(Zollverein·졸페라인)의 현대적 변용이다. 당시 수백 개의 공국으로 분절됐던 독일 내 연방이 내부 관세를 철폐하고 외부에는 공동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경제적 통일을 완수했듯, EU 역시 역외 국가들과의 결속을 강화해 거대 경제 공동체를 형성하는 중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파편화된 개별 국가의 대응력을 하나로 결집해 강대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맞서는 유효한 방어 기제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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