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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 뿌리 겨눈 ‘중복상장’ 규제, 시장 인식·기업 행태 변화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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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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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주주가치 훼손 요인 ‘중복상장’, 원칙적으로 금지
해외선 거의 없는 ‘쪼개기 상장’, 한국선 관행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꼼수 경영 민낯

모회사의 알짜 사업부문을 떼어내 상장하는 중복상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중복상장이 모회사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요 원인으로 중복상장이 지목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대기업 자본 조달 전략에 큰 변화가 불가피한 가운데, 투자자 보호와 증시 선진화를 향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한국 자본시장의 지형도를 근본적으로 바꿀지 주목된다.

규제 강화 움직임 속 멈춰선 IPO 시장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상장했거나 상장을 앞둔 기업(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제외)은 나노의약품 개발 전문기업 인벤테라와 전기차 급속 충전 인프라 기업 채비 2곳에 그친다. 스팩을 포함하더라도 총 5곳에 불과하다. 지난달 스팩을 제외하고 8개 기업이 신규 상장한 것과 비교하면 뚜렷한 둔화세다.

기업공개(IPO) 시장의 주춤한 흐름은 1분기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기업설명회(IR) 솔루션 전문기업 IR큐더스가 발표한 '2026년 1분기 IPO 현황 결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신규 상장 기업 수는 총 9곳으로 집계됐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1곳, 코스닥시장 8곳으로 구성된 수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 23곳(코스피 3곳·코스닥 20곳)과 비교해 크게 감소했다. 2024년 1분기(14곳)와 비교해도 낮은 수준이다.

상장 위축의 주된 원인은 정책 환경 변화다. 금융당국이 상법 개정을 계기로 중복상장 규제를 강화하면서 대기업 계열사의 IPO 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바늘구멍 같은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중복상장을 원천 금지해 모회사 일반주주 권익 침해를 막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정부는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자회사를 상장하는 구조를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일반 주주 동의와 국내 상장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외적으로만 허용하기로 했다.

중복상장 범위도 확대된다. 현재 거래소 상장 규정은 분할 후 중복상장에 대해서만 '주주 보호 노력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는 다소 모호한 기준으로 규율한다. 앞으로는 ‘인수·신설 자회사’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면 중복상장 유형으로 심사를 받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중복상장 범위는 △상장회사의 외부감사법상 종속회사 △상장회사의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로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회사(손자회사 등 포함)를 상장하는 경우로 규정된다. ‘상장 필요성·주주 소통·주주 보호·경영과 영업 독립성’ 등을 깐깐히 따져 엄격한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중복상장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심사 기준과 제도 개편안은 2분기 중 마련될 예정이다.

중복상장 정조준에 기업들 ‘볼멘소리’

중복상장은 모회사가 상장된 상태에서 자회사를 상장시켜 모·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구조를 뜻한다. 시장조사업체 LESG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증시의 중복상장 비율은 18.4%다. 이는 일본(4.3%), 대만(3.1%), 중국(1.9%), 미국(0.3%) 등 주요국과 비교해 현저히 높다. 실제 물적분할 후 자회사를 상장하는 방법은 국내 대기업들의 자금 조달 창구로 적극 활용돼 왔다. SSG닷컴, SK온, 카카오엔터·모빌리티 등 올해 예상 IPO 대어 대부분이 대기업 계열사에서 물적분할한 자회사다. 지난해 IPO 대어였던 SK IET·바이오사이언스, 카카오뱅크·페이 역시 모두 쪼개기 상장 사례다.

그간 관행처럼 여겨 온 중복상장에 제동이 걸리자, 재계는 우려하는 분위기다. 모호했던 중복상장 기준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는 공감하지만, 획일적 규제로 이어지면 자금조달 환경이 위축될 수 있고 나아가 한국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의 중복상장 비율이 과도하다고 말하지만 미국은 플랫폼, 소프트웨어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 비중이 높아 수익성이 높고 일본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며 "후발주자였던 중국이 디스플레이, IT기기를 넘어 휴머노이드, 인공지능(AI) 반도체 분야에서 앞서나가고 있는데 국내 기업들이 사업 재편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사실상 IPO 외에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중복상장 규제 강화에 대한 우려는 이미 업계에서 확산하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는 AI 관련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반도체와 로보틱스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IPO를 추진해 왔던 HD현대로보틱스가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연이은 쪼개기 상장으로 재미를 본 카카오는 이미 재검토에 나섰다. 카카오는 최근 계열사 경영진의 ‘먹튀 논란’ 등 여론이 악화하자, 13일 “상장 관련해서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카오는 지난해 카카오뱅크·페이·게임즈 등 3개 자회사 상장에 이어 올해 카카오모빌리티·엔터테인먼트 상장을 계획했다. 이에 카카오의 주주들은 계속되는 쪼개기 상장이 모회사인 카카오의 기존 주주가치를 희석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SK 역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SK바이오팜, SK바이오사이언스, SKIET 등은 분할 후 재상장에 나선 대표적인 계열사다. 하지만 규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다음 타자인 SK온의 IPO가 당장은 여의치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에서 분할된 SK온은 작년 12월 주관사 선정 후 3조원 수준의 프리 IPO 작업에 들어갔다. 사업부의 물적분할을 검토하던 기업들도 당장 진행을 결정하기는 조심스럽다. KT는 비통신 기업 간 거래(B2B) 사업의 핵심인 클라우드 및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업부문을 분사한 후 사모펀드(PEF)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물적분할 방식이 유력하지만, 해당 부문이 비통신 강화 전략에서 핵심인 부분인 점을 고려하면 신중히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 인식 전환 없인 ‘코리아 프리미엄’도 없다

정부가 중복상장을 문제 삼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모회사 일반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사례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대기업 집단의 잇단 중복상장이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 심화 요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국의 중복상장 문제는 과거부터 존재해 왔으나, 투자자들이 이를 심각한 구조적 결함으로 인식하고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진 결정적인 계기는 2022년 1월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이다. 당시 LG화학 주주들은 배터리 성장성을 보고 투자했지만, 핵심 사업부가 별도 법인으로 나간 뒤 상장하자 모회사인 LG화학의 주가가 폭락하는 경험을 했다. 이를 기점으로 중복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며 규제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됐다.

미국 등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모기업이나 지주회사가 상장하면 자회사나 관계사를 별도로 상장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며, 중복상장이 시장 왜곡과 이해관계 상충을 야기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금기시하고 있다. 구글의 지주사인 알파벳은 상장사지만 자회사 구글은 비상장으로 둬 모든 실적이 지주사 가치에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메타 또한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을 별개로 상장시켜 자금을 조달하지 않으며, 아마존 역시 핵심 캐시카우인 클라우드 부문을 따로 떼어내 상장하지 않는다. 자회사 상장이 필요하더라도 일부 지분만 먼저 시장에 내놓는 카브아웃(Carve-Out) 이후 최종적으로 ‘스핀오프(Spin-Off, 회사 분할)’를 통해 완전히 분리하는 방식이 더 일반적이다.

반면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4%대였던 중복상장 비율이 2010년 이후 자회사 IPO, 분할 상장, 지주사 전환 등을 거치며 18% 이상으로 급증했고 현재까지도 이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비판 속에서도 중복상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체 자금을 쓰지 않고 신사업 투자금을 외부에서 수월하게 끌어올 수 있으며, 동시에 적은 지분으로도 다단계 구조를 통해 그룹 전체를 통제하는 '사실상의 복수의결권' 효과를 누릴 수 있어서다.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30%를 갖고, 그 자회사가 다시 손자회사 지분 30%를 갖는 다단계 구조를 만들면, 지배주주는 실질적으로 아주 적은 지분만으로도 하위 계열사를 통제할 수 있는 레버리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 성장하는 핵심 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신설 자회사를 상장시키는 과정에서 알짜 사업을 잃은 모회사의 주가가 폭락하도록 방치하면서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5년간 중복상장이 발생한 모회사들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 72.7%가 지수보다 부진한 성적을 냈다. 코스피가 평균 5.5% 상승하는 동안 모회사 주가는 3.5% 하락했다. 성장성이 높은 사업부가 빠져나가면 모회사는 투자 매력을 완전히 상실한 알맹이 없는 회사가 되기 때문이다. 시장 관계자들은 지배주주가 모회사를 통한 그룹 전체의 경영권은 굳건히 유지하면서도, 사업 확장에 수반되는 막대한 리스크와 자금 부담은 자회사 공모주에 투자한 일반 투자자들에게 떠넘겨왔다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기업가치가 모회사와 자회사에 이중으로 계상되는 이상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필연적으로 모회사의 극심한 지주사 할인 현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한 경제 전문가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부담이 커진 점은 분명히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그동안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이어져 온 지배구조 관행이 일반주주 권익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특히 중복상장 과정에서 소액주주 가치가 훼손된 사례가 반복되면서 시장 신뢰가 크게 저하된 만큼, 제도 개선과 함께 기업 스스로의 인식 전환이 병행돼야 한다. 이제는 기존 방식에 의존하기보다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자금조달 구조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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