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MEMO] AI로 시간 줄였지만 생산성은 제자리, 한국의 AI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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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가치 확대에도 국가·직종별 격차 지속 한국, 높은 AI 활용에도 생산성 개선 미미 실질적 성과 위해 업무·조직 재편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용이 확산되면서 노동시간 절감에 따른 경제적 가치가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AI가 세계 경제에서 창출하는 가치는 연간 약 2조7,000억 달러(약 3,727조원)로 분석 대상 86개국 국내총생산(GDP)의 3.4%에 달한다. 불과 6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문제는 AI가 창출한 가치가 모든 계층에 고르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경제적 가치의 대부분이 임금 상위권의 소수 전문직에 집중되는 반면, 고소득 국가에서는 다양한 직종과 소득계층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흐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높은 소득 수준과 탄탄한 디지털 인프라를 갖추고 AI 활용도 빠르게 늘었지만, 경제적 성과는 비슷한 소득 수준의 주요국만큼 폭넓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소득 수준별 AI 활용 성과 격차
최근 연구진은 수십 개국의 AI 이용 데이터를 토대로 AI가 창출한 가치가 특정 소득계층에 얼마나 집중되는지를 보여주는 ‘AI 집중도 지수’를 제시했다. 지수가 1에 가까우면 경제적 가치가 고임금 직종에 집중된 것으로 보고, 0에 가까울수록 다양한 소득계층에 고르게 분포한 것으로 평가한다. 국가별로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AI가 창출한 경제적 가치가 일부 고임금 직종에 집중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1인당 소득이 5,000달러(약 690만원) 미만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에서는 AI 집중도 지수가 0.9~1.0에 달했다. 반면 1인당 소득이 5만 달러(약 6,900만원)를 넘는 서유럽과 북미에서는 대부분 0.4~0.6 수준에 머물렀으며 노르웨이는 0.17로 집계됐다.
AI를 통해 창출되는 경제적 가치의 규모에서도 국가별 소득 격차가 드러났다. GDP 대비 AI 가치 창출 규모는 고소득 국가가 약 4.2%로 중소득 국가의 0.6%, 저소득 국가의 0.1%를 크게 웃돌았다. 전 세계에서 측정된 AI 가치의 96%도 고소득 국가에 돌아갔다. 고소득 국가일수록 AI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면서 그 성과가 상대적으로 넓은 계층에 분포하는 구조가 나타난 셈이다.

AI 성과 좌우하는 제도·언어 환경
이 같은 국가별 격차에는 제도와 언어 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AI가 경제 규모에 비해 얼마나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지와 창출된 가치가 여러 계층으로 얼마나 확산되는지를 구분해 살펴본 결과, 각각 다른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우선 AI 가치 창출 규모에는 제도적 기반과 서비스업 비중이 주요 요인으로 꼽혔다. 데이터 활용과 책임 소재, 국가 간 AI 활용 등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AI를 통한 가치 창출 규모가 컸다. 관련 제도가 명확할수록 기업이 AI를 시범 도입에 그치지 않고 실제 업무에 활용하기 쉬워지는 구조다.
반면 창출된 가치가 경제 전반으로 퍼지는 정도는 언어와 학습데이터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자국의 제도와 공공 지식이 대규모언어모델(LLM) 학습데이터에 충분히 포함된 국가에서는 AI 이용이 늘수록 집중도 지수가 빠르게 낮아졌다.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AI 활용이 지식집약적 직종에 편중돼 집중도가 오히려 커졌다. 한국은 제도적 기반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어 AI 도입이 빠른 편이지만,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데다 디지털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 구조도 광범위한 성과 확산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AI 성과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언어와 산업 구조 등 추가적인 조건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AI 활용 확대에도 생산성 효과 제한
이러한 특징은 국내 업무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중반 국내 근로자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51.8%가 업무에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미국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AI를 활용한 근로자는 평균 3.8%의 업무시간 절감 효과를 봤다. 하지만 줄어든 업무시간은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AI로 절약한 시간과 근로자가 응답한 생산량 변화의 상관계수는 0.008에 그쳐 사실상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근무시간 중 휴식 비중은 1.3%포인트 증가했다. 업무를 빠르게 마쳐도 생산 목표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확보한 시간이 추가 업무보다 휴식에 쓰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간 절감 폭은 직종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전문직과 사무·행정직은 각각 2.8%, 1.9%의 시간 절감 효과를 보인 반면, 육체노동과 서비스직, 단순직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러한 차이는 개별 근로자의 업무에서도 확인됐다. AI로 절약한 시간의 약 70%가 특정 핵심 업무 하나에서 발생해 시간 절감 효과도 직무 전반보다 일부 업무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AI 활용 격차 키우는 조직 역량
근로자 개인의 AI 활용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은 기업 차원의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실시간 AI 이용 데이터를 분석한 별도 연구에 따르면, AI를 업무에 얼마나 깊이 활용하는지에 따라 기업 성과가 엇갈렸다. 성능이 높은 폐쇄형 AI 모델을 유료·장기 계정으로 이용하고 복잡한 업무에 적극 활용한 기업은 제한적으로 사용한 기업보다 주식시장 수익률이 높았다. 가치가중 기준 수익률 격차는 주당 약 64bp에 달한 반면 AI를 일시적이거나 시험적으로 활용한 기업에서는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차이는 AI 도입 자체보다 실제 업무에 얼마나 깊이 활용하는지가 기업 성과를 좌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AI를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려면 기존 업무 절차와 역할을 조정하고 관련 시스템 구축과 직원 교육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기업 규모에 따른 활용률 차이도 조직 역량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지난해 유럽연합(EU) 대기업 가운데 하나 이상의 AI 기술을 활용한 비율은 55%를 웃돌았지만, 중견기업은 약 30%, 중소기업은 17% 수준에 그쳤다. 연구진은 AI 도구에 대한 접근성보다 시스템 구축과 인력 교육, 조직 개편에 필요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여건이 기업별 격차를 키운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한국이 높은 AI 활용률을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하려면 기술 도입 이후의 변화가 중요하다. AI로 업무시간을 줄여도 생산 목표와 업무 방식이 그대로라면 확보한 시간을 추가적인 생산으로 연결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기술 활용에 맞춰 생산 목표와 업무 분담을 조정하고 조직 운영 방식도 함께 재정비해야 한다. AI 도입 속도를 높이는 단계를 넘어 실제 업무와 생산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 향후 생산성 향상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Korea’s AI Paradox: High Adoption, Low Productivity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