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AI 도입 확산’ 유럽, 자금 부족·규제 장벽에 글로벌 성장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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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AI 활용 확대에도 글로벌 성장 과제 산적 투자 편중과 시장 분절로 해외 진출 난항 산업별 특화 AI, 고객 확보와 수익성에 주목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 인공지능(AI) 산업의 관심이 기술 도입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과 사업 확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유럽투자은행(EIB)에 따르면, 지난해 빅데이터 분석과 AI를 활용한 기업의 비율은 유럽연합(EU)이 46%로, 미국의 40%보다 높았다. 물론 빅데이터 분석까지 포함한 수치여서 AI 기술력의 우위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유럽 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연구개발과 시험 단계를 넘어 실제 업무에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와 같이 AI 도입이 확산되면서 유럽 기업들이 공략할 수 있는 시장도 넓어졌다. 그러나 늘어나는 수요를 매출로 연결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려면 해외 영업망 구축과 사업 확장에 필요한 자금 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AI 활용 확대 속 투자 편중 심화
유럽 기업들의 AI 활용이 확대되면서 생산성 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EIB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빅데이터와 AI가 전체 총요소생산성(TFP) 증가분의 약 12%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했다. 기업들이 관련 기술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기 시작한 만큼 AI 공급업체에도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를 입증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기술 도입과 운영에 드는 비용을 고려하더라도 충분한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어야 지속적인 수요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졌지만, 자금은 일부 기업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정보 플랫폼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유럽 스타트업의 전체 투자 유치액은 176억 달러(약 24조원)로,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92억 달러(약 13조원)가 AI 기업에 몰렸다. 반면 같은 기간 투자 거래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40% 감소했다. 기술 도입이 실제 업무 전반으로 확산되는 속도에서도 미국과 차이를 보였다. EIB 조사에서 빅데이터와 AI를 사용하는 EU 기업 가운데 최소 2개 사업 부문에서 생성형 AI에 투자하는 기업은 55%로, 미국의 81%를 크게 밑돌았다. 올해 초 실시된 별도 조사에서도 AI를 사용하는 근로자 비율은 미국이 43%인 반면, 유럽 6개국 평균은 32%에 그쳤다. 이처럼 유럽 기업의 AI 활용 범위가 제한적인 만큼 기존 고객사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대할 여지는 남아 있다.

성장 단계에서 확대되는 자금 조달 격차
유럽 AI 기업들이 해외 시장으로 사업을 넓히는 데 걸림돌 중 하나는 자금 조달이다. EIB는 스타트업과 성장 기업에 대한 EU와 미국의 연간 자금 조달 격차를 1,200억 유로(약 185조원)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800억 유로(약 124조원)는 기업이 본격적으로 사업 규모를 키우는 스케일업 단계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초기 고객을 확보한 기업도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상당한 자금이 필요하다. 현지 영업 인력을 채용하고 고객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데다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관련 비용이 본격적인 매출 발생에 앞서 투입되는 만큼 초기 투자금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유럽과 미국의 벤처투자 시장 규모에서도 격차가 뚜렷하다. 지난해 유럽의 벤처캐피털(VC) 투자액은 662억 유로(약 102조원)로, 미국 전체 투자액의 약 22%에 그쳤다. 한편, 미국 자본을 유치하면 자금 확보는 물론 현지 고객망 확보와 해외 진출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소수의 해외 투자자에게 의존할 경우 후속 투자 협상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따라서 유럽 내 투자 기반을 확충해 기업들이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을 검토하고 사업 전략에 따라 진출 시장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별 규제 장벽에 투자금 회수 불투명
국가마다 다른 규제도 유럽 AI 기업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EIB 조사에 따르면 EU 기업의 62%가 회원국별 규제 차이로 역내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웨어 기업도 다른 회원국에 진출하려면 제품 번역뿐 아니라 현지 법률에 맞는 계약서를 마련하고 국가별로 상이한 조달 절차에 대응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자체는 적은 비용으로 여러 시장에 공급할 수 있지만, 영업과 운영 체계를 국가마다 새로 구축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러한 비용을 줄이기 위해 EU 단일시장 내 규제 간소화가 필수적이다.
투자금 회수의 불확실성도 신규 자본 유입을 제한하는 요인이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을 통한 지분 매각이 어려워지면, 투자자들은 장기 투자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투자자 역시 출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줘야 하는 만큼 원활한 자금 회수는 후속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조건이다. 이를 위해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후속 투자와 자금 회수가 이어지는 투자 환경을 갖춰야 한다. 기업 역시 추가 투자 유치에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 매출 전망과 운영비, 계약 지연 가능성 등을 고려해 해외 진출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민간 자본 유치가 관건
EU는 이러한 자금 조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성장 단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8월 4일 글로벌 투자회사 EQT가 운용을 맡은 '스케일업 유럽 펀드(Scaleup Europe Fund)'의 법적 설립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공공과 민간 투자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이 펀드는 50억 유로(약 8조원) 조성을 목표로 AI를 비롯한 핵심 기술 기업의 성장을 지원할 예정이다. 관건은 공공 자금이 민간의 후속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일각에서는 공공 투자가 오히려 기업가치만 끌어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유럽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일부 기업에 집중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펀드 조성이 투자 저변 확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따라서 공공 부문은 안정적인 매출과 고객 유지율을 확보한 기업에 민간 투자가 이어지도록 지원하되, 사업성이 부족한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자금 투입은 경계해야 한다. 규제 개선도 함께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별 규제 차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줄이지 못한다면, 기업들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마다 추가 자금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질 매출 확보가 성장 열쇠
투자 규모 확대와 시장 환경 개선이 추진되는 가운데 부동산, 금융, 제조업 등 특정 산업의 수요에 특화된 AI가 새로운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산업별 특화 AI(Vertical AI)는 자체적으로 첨단 AI 모델을 개발하지 않더라도 기존 기술에 산업별 전문성을 결합해 시장 수요에 맞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 판단에서도 기술력 자체보다 고객 유지율과 자본 효율성, AI 연산과 고객 지원 비용을 감안한 수익성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글로벌 투자회사 주브르 캐피털(Zubr Capital)이 투자한 AI 기반 운동 코칭 플랫폼 징 코치(Zing Coach)는 프랑스 프로축구 구단 파리 생제르맹(PSG)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고객층에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2024년 투자를 유치한 부동산 AI 솔루션 기업 플레이시(Placy)는 부동산 중개업체의 업무 효율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징 코치가 기존 브랜드와 유통망을 활용해 고객 접점을 넓히는 전략이라면, 플레이시는 업무 시간 단축과 생산성 개선을 통해 고객의 지속적인 유료 이용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결국 두 기업 모두 시장 진입 자체보다 이후의 성과가 중요하다. 파트너십이나 초기 도입이 장기 고객과 반복 매출로 이어지고, 서비스 확대 과정에서도 비용 부담을 통제할 수 있어야 사업성을 입증할 수 있다.
유럽 AI 산업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기술 수요가 늘더라도 이를 지속적인 매출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의 사업 확장 노력과 함께 정책당국의 규제 개선, 민간 자본의 후속 투자가 요구된다. 향후 유럽 AI 산업의 성장세는 해외 고객과의 재계약 실적과 수익성을 바탕으로 한 지속적인 사업 확장 성과에서 확인될 전망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 Joined the AI Race: The Real Gap Is Scal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는 외부 기고문의 국문 번역본이며, 원문의 견해는 저자 개인의 견해입니다.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