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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 전력망 밖으로 나간 저장 설비, 중국은 속도전 미국은 출발선

[ESS] 전력망 밖으로 나간 저장 설비, 중국은 속도전 미국은 출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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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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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가격 경쟁력·내수 기반 우위
후발주자 美, 투자 불확실성 존재
화재 안전성 비롯 기존 기술 한계

전 세계적인 재생에너지 확대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 저장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시장도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대규모 내수 시장과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설치 용량을 빠르게 늘리며 시장을 선점했다.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장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중국산 배터리 배제 정책이라는 변수가 산업 구조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다. 전력 안정화 수단으로서 ESS의 필요성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기술·안전 과제와 정책 지속성이 향후 시장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대규모 양산 능력·가격 경쟁력 무기

22일(현지시각) 글로벌 에너지 분석 기관 벤치마크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신규 ESS 용량은 전년 대비 40% 급증한 174.19기가와트시(GWh)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같은 대기록은 중국 정부가 제시한 제14차 5개년 계획 종료 시점을 앞두고 프로젝트 준공이 연말에 집중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중국 전력망에 새로 연결된 ESS 용량은 65GWh를 소폭 웃돌았는데, 이는 미국이 2025년 한 해 동안 설치한 전체 용량 약 50GWh보다 15GWh 많은 수치다. 

업계는 이러한 물량 집중이 정책과 산업 구조가 맞물린 데 따른 것으로 봤다. 중국은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력 변동성과 송배전 병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ESS 설치를 사실상 필수 인프라로 규정해 왔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산업단지 전력 안정화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대규모 저장 설비는 국가 전력망 계획의 일부로 편입됐다. 이후 저장 용량 확대는 개별 기업의 투자 판단을 넘어 중앙정부 정책 목표와 연동된 구조로 움직였고, 연말 집중 준공이라는 형태로 실적을 가시화했다. 

누적 설치 규모 또한 압도적이다. 벤치마크인텔리전스는 “올해 중국의 신규 ESS 설치량은 239GWh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며 “이는 전 세계 신규 설치량의 52%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2027년까지 저장 용량을 두 배로 확대하기 위해 최대 350억 달러(약 51조원) 규모 투자를 예고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설치량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중국 내에서는 이미 ESS가 전력 시스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게 업계 전반의 인식이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의하면 글로벌 ESS 시장 점유율은 CATL 37%, EVE 13%, BYD 9%, CALB 7%, 고션 6%로 상위권 업체 대부분이 중국에 있다. 이 가운데 CATL과 BYD의 경우, 전기차용 배터리에서 확보한 대규모 양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ESS로 그대로 이전하며 공급 우위를 강화했다. 이들 기업이 생산한 배터리가 전 세계 전기차의 70% 이상에 탑재된다는 점은 동일한 제조·공급 체계가 저장 설비 시장에서도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울러 중국 ESS 시장의 성장은 국가 주도 제조업 전략 전반과도 연결된다.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이후 중국은 ESS를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분류한 바 있으며, 제15차 5개년 계획(2026~2030)에서도 핵심 성장 축으로 설정했다. ESS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데이터센터 등 산업 전반을 연결하는 중간 고리로 작동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2024년 기준 중국 제조업 부가가치가 전 세계의 27.71%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구상이 단기간 내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됐음을 보여준다. 

LG에너지솔루션의 전력망용 ESS 배터리 컨테이너/사진=LG에너지솔루션

후발 주자 미국은 韓 기업과 맞손

미국은 ESS를 둘러싼 정책·규제 환경과 공급망 선택에서 중국과 다른 경로를 택했다. 중국이 중앙정부 주도의 중장기 계획을 기반으로 대규모 설비를 빠르게 구축한 반면, 미국은 주(州)별 전력 정책과 민간 투자 중심 구조 속에서 보급 속도가 상대적으로 제한됐다. 그러나 미국 역시 전력 수급 구조의 변화는 좌시할 수 없었다.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늘어나면서 전력망의 변동성이 확대됐고, 여기에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전력 수요가 추가된 탓이다. 이 과정에서 ESS는 단기간에 전력 인프라 투자 지형을 바꾸는 변수로 부상했다. 미국 태양광산업협회는 미국 내 ESS 설치 규모가 오는 2030년 100GWh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미국 시장의 확대는 중국과 같은 속도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우드맥킨지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미국 에너지저장시장 모니터’ 보고서에서 2025년 이후 ESS 설치 증가세가 일시적으로 둔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6년을 기점으로 유틸리티급 ESS 설치 증가율은 낮아지고, 2027년에는 전년 대비 10%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규제와 정책 불확실성을 꼽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법안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OBBBA)’과 외국우려기관(FEOC) 규정이 투자세액공제 요건을 강화하며 단기 조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미국 ESS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탈중국’이라는 방향성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현재 북미 ESS 시장의 약 85%를 중국 기업이 점유한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산 배터리와 부품을 단계적으로 배제하는 공급망 재편 전략을 추진 중이다. FEOC 규제에 따라 중국산 배터리 셀을 사용할 경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 이는 기업의 프로젝트 개발 일정과 조달 전략에 불확실성을 더한다. 우드맥킨지가 앞선 보고서에서 “공급망 불확실성과 허가 지연이 겹칠 경우, 향후 5년간 미국 내 ESS 설치량이 최대 16.5GW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한 이유다. 

이 같은 환경은 미국 ESS 시장의 성장을 제약하는 동시에 중국을 대체할 공급처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낸다. 미국산 또는 비(非)중국산 셀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최우선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전기차용 배터리를 중심으로 대규모 양산 경험과 품질 관리 체계를 확보해 왔고, 그 과정에서 미국 현지에 생산 설비와 운영 인프라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반은 ESS로의 전환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 활용될 공산이 크다. 

기업들 역시 북미 생산 전략을 ESS로 조정하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SK온은 미국 플랫아이언에너지개발과 1GWh 규모 ESS 배터리 공급 계약 체결을 비롯해 6.2GWh 추가 프로젝트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확보했으며, 삼성SDI는 미국 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 공장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해 가동을 시작했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을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전용 기지로 전환했고, 스텔란티스와 합작한 캐나다 공장 내 일부 전지 라인도 ESS용으로 전환해 연내 LFP 배터리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기술 경쟁 2막 돌입

이처럼 안정적인 전력 공급 측면에서 ESS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산업 전반에서 상당 부분 형성된 상태다. 기존 중앙집중형 전력망만으로는 수급 불균형을 흡수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이에 따라 과거 주파수 조정이나 단기 출력 보정 중심이던 ESS의 역할 또한 최근 들어서는 재생에너지 출력 안정화를 비롯해 피크 저감, 예비력 확보, 전력 도매시장 참여 등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이런 흐름은 ESS가 전력 시스템의 유연성을 좌우하는 기반 설비로 기능 범위를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시장 확대와 함께 안전성에 대한 우려 또한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클린에너지어소시에이츠(CEA)는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미국·한국·중국 등에 설치된 총 30GWh 규모의 ESS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26%가 화재 감지 또는 진화 기능에서 문제를 보였다고 밝혔다. 또 ESS 발열을 관리하는 열관리 시스템에서 이상을 보인 설비도 전체의 18%에 달했다는 지적이다. CEA는 “화재 진압 및 열 관리 시스템은 기능 안전에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시스템의 결함은 화재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전 논쟁의 중심에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주력 기술로 업계의 현실이 자리한다. 리튬은 질량과 부피 대비 에너지 밀도가 높고 고속 충·방전에 유리해 전기차와 ESS에서 폭넓게 활용되지만, 화학 반응성이 높아 화재에 취약하다는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 실제로 2021년 호주 빅토리아주에 설치된 테슬라 ‘메가팩’ ESS에서는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 150명이 나흘간 진화 작업을 벌였는데, 메가팩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일본 파나소닉의 원통형 LFP 배터리가 탑재됐었다. 

기술적 과제는 비단 안전성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됨에 따라 잉여 전력을 장시간 저장해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장주기 ESS에 대한 요구도 빠르게 커지는 양상이다. 업계와 다수의 연구기관은 향후 전력 발전 구조 변화에 대응하려면 최소 6시간, AI 데이터센터 확산 국면에서는 12시간 이상 활용이 가능한 장주기 ESS가 필요해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리튬이온 배터리가 용량과 저장 시간 증가에 따라 비용이 선형적으로 상승한다는 점이다. 단주기 ESS에서는 경제성이 우수하지만, 장주기 영역에서는 균등화저장비용 기준으로 비리튬계 기술이나 비전지 기반 저장 방식이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중국에서는 바나듐레독스플로우배터리(VRFB), 압축공기저장(CAES), 열에너지 저장 카르노 배터리, 중력 저장 방식 등 장주기 ESS 대안 기술에 대한 투자가 병행되고 있다. 이들 기술은 에너지 밀도나 응답 속도에서는 리튬이온 배터리에 뒤처질 수 있지만, 장시간 저장과 반복 사용에서 안전성과 비용 측면의 강점을 갖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곧 ESS 시장이 단일 기술로 수렴되기보다는 전력 시스템의 요구 조건에 따라 리튬 기반 단주기 설비와 비리튬 장주기 설비가 병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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