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리스크] 4년새 3번 뒤집힌 빨대 정책, 산업계 도산 패닉
[정책 리스크] 4년새 3번 뒤집힌 빨대 정책, 산업계 도산 패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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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종이 빨대 쓰라더니 “재질 상관없이 빨대 전면금지” 소상공인·관련 산업계 혼란 가중

정부가 탈(脫)플라스틱 종합대책을 마련하면서 재질과 무관하게 모든 빨대 사용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4년 전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를 예고하며 종이 빨대의 환경성을 강조했던 기존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이다.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이 또다시 방향을 틀면서 종이빨대 생산 업체들은 사실상 폐업 국면에 내몰렸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를 전제로 형성됐던 대체재 시장이 규제 유예와 빨대 사용 금지로 이어지며 붕괴 수순에 직면한 양상이다.
종이빨대 제조업체 17곳→6곳으로 급감
20일 빨대업계에 따르면 최근 다수 업체에서 종이빨대 생산이 사실상 중단됐다. 현재 종이빨대 생산업체는 기존 17곳에서 6곳만 운영되고 있으며, 6곳 중에서도 사업자만 유지할 뿐 실제로 종이빨대를 생산하는 곳은 3곳뿐인 것으로 파악됐다. 아직 종이빨대를 사용하는 대형 프랜차이즈에 납품하는 업체들만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분해 빨대업계 역시 제조사마다 수년간 수십억원을 투자해 신소재 제품을 개발했으나, 최근 반품과 계약 해지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정부의 오락가락 행정 탓이다. 지난달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옛 환경부)는 ‘탈플라스틱 종합대책 수립 대국민 토론회’를 열고 재질에 관계없이 빨대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올해부터 음식점, 카페 등은 소재와 상관없이 원칙적으로 일회용 빨대를 쓸 수 없고, 소비자 요청이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이번 빨대 정책은 불과 4년 사이 세 차례나 번복된 것이다. 2022년 11월 윤석열 정부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1년의 계도 기간을 제시했다. 그러나 2023년 계도 기간 종료 후 무기한 연장하면서 사실상 전면 금지가 무력화됐다. 이후 3년 만에 다시 모든 빨대 규제가 논의된 것이다.
과학적 근거 없이 ‘오락가락 규제’
이는 사실상 기후부가 플라스틱 빨대 금지를 추진하며 종이 빨대의 환경적 우수성을 강조했던 판단을 뒤집은 조치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기후부에서 제출받은 한국전과정평가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플라스틱 빨대는 기후 변화, 인체 발암, 물 사용, 미세먼지 형성 등 16개 환경영향평가 항목 중 10개에서 가장 낮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최근 스타벅스 등에서 대체재로 사용하는 사탕수수 원료의 ‘식물계 빨대’는 10개 항목에서 부정적 영향이 가장 높았다.
2022년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를 금지한 이후 전국 음식점과 커피전문점 등에서 주로 사용한 종이 빨대는 부정적 영향이 보통 수준이었다. 당시 종이 빨대가 확산되자 물에 젖어 흐물흐물해지고 구멍이 뚫려 빨대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소비자 불만이 컸다. 하지만 당시 기후부는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는 생산과 유통 단계만을 다루고 폐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악영향은 반영하지 않은 것이었다. 정부는 대체품인 종이 빨대 개발도 독려했다. 또한 2023년 소비자 불만 등을 이유로 플라스틱 빨대 금지 정책을 돌연 철회하면서 해외 연구 보고서를 취합해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보다 환경에 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기후부는 분석 과정에서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가 작성한 ‘폐기물 직매립 제로화를 위한 일회용품 사용 억제 로드맵 마련’ 보고서를 인용했다. 해당 보고서는 플라스틱 빨대 대비 종이 빨대의 환경영향 감소율이 평균 72.9%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기후부는 이를 근거로 플라스틱 빨대 금지에 따른 대체 빨대 사용 시 환경 편익이 최소 72.9% 증가할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기후부는 올해 들어서야 플라스틱 빨대와 종이 빨대 등 대체 빨대를 대상으로 환경전주기평가(LCA)에 착수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재질에 상관없이 모든 빨대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환경성이 높다는 기존 판단을 스스로 부정한 셈이다.

반복되는 정책 번복에 비용과 혼란 전가
업계 관계자들은 정책 변화로 인해 회수하지 못한 투자 손실이 상당하다고 토로한다. 특히 초기 시장에 진입한 업체일수록 피해가 컸다. 종이빨대 생산을 위해 수년간 투입한 설비 투자와 원자재 비용, 공장 건립 비용 등이 고스란히 손실로 남았기 때문이다. 국내외 빨대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으로 알려진 서일이 대표적이다. 서일은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 강화 기조에 맞춰 종이 빨대 생산 설비에 100억원 규모의 선제적 투자를 단행했으나, 이후 정부가 규제를 유예하면서 수백 원대 재고가 쌓이고 매출이 급감하는 등 경영상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에는 스타벅스 등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식물성 플라스틱 빨대를 병행 사용하던 흐름도 이번 규제 시행 시 어려워질 전망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공장 설비와 원재료, 거래처를 모두 다시 조정해야 한다”며 “정책 불확실성이 소상공인들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 역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정책적으로 사용이 제한되거나 금지된 제품에 대해 해외 바이어들이 신뢰를 갖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 종이빨대 제조업체 대표는 "지금은 완전히 자포자기 상태"라며 "친환경을 주장하며 종이빨대를 만들다가 다시 플라스틱 빨대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푸념했다. 이어 "체력을 회복해 다시 친환경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사업 전환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성토했다. 자영업계에서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발표를 믿고 비싼 값에 대체재를 미리 확보했던 점주들은 정책 번복으로 재고가 무용지물이 되자 "정부 정책을 믿는 사람이 바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책의 일관성 문제는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종이빨대 산업은 정부 정책에 맞춰 형성된 산업인 만큼 정책 변경에 따른 피해를 정부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에 당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담당과에서 해당 종이빨대 업종에 대해서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긴밀히 상의해서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현장에서는 단기적인 재고 처리나 금융 지원만으로는 재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업계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정책 변화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고 사업 전환과 재기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빨대뿐 아니라 일회용 컵 정책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경우 100~200원 이상의 추가 비용을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 제도인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폐지하고, 원하는 지자체만 조례를 통해 자율적으로 시행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는 음료를 일회용 컵에 담아 갈 경우 300원을 내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전국 시행을 추진했지만 소비자·소상공인들이 반발하면서 세종·제주 두 지역에만 제한 적용됐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결국 음료 가격 인상 효과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 관계자는 “이미 음료 가격에는 컵과 뚜껑, 빨대 비용이 포함돼 있다”며 “정부 정책으로 추가 비용을 받게 되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가격 인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생 현장에서는 정책의 내용보다 더 큰 문제는 수시로 바뀌는 정책 그 자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환경 보호라는 명분 아래 규제와 완화를 반복하는 동안, 그 비용과 혼란은 고스란히 자영업자와 영세 제조업체,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