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방위산업] 방산 재건의 대가는 동맹의 지갑? ‘돈로 독트린’이 던진 질문
[미국 방위산업] 방산 재건의 대가는 동맹의 지갑? ‘돈로 독트린’이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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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소량 생산 모델 한계 드러나
동맹 개방으로 돌파구 모색 움직임
트럼프식 일방주의 외교 위험 신호

미국 방위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개발하고도 생산 능력에 발목이 잡혔다는 진단이 나왔다. 2000년대 이후 제조업 기반이 약화하면서 방산을 떠받치는 후방 산업 생태계가 붕괴했고, 러시아와 중국 등이 대량 생산과 신무기 개발을 가속하는 사이 미국의 생산 역량은 정체됐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방위산업 재성장의 해법을 자국 내부가 아닌 동맹국과의 시장 개방에서 찾기 시작했다. 동맹국의 국방 지출 확대와 미국산 무기 구매를 연결하고, 이를 통해 자본을 회수해 제조업에 재투자하겠다는 구상이다.
방산 단독 회복 어려운 상황
19일(이하 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방위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만들고도 필요한 속도로 양산·배치하지 못하는 허점을 드러내며 복합적 위기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국방비를 대폭 늘리고 기업의 자본 정책까지 대대적으로 흔들며 일종의 ‘강제 처방’을 꺼냈으나, 이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7년 국방비를 1조5,000억 달러(약 2,200조원)로 50% 이상 늘리는 방안을 제시하며 대형 방산 기업의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를 금지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문제의 뿌리는 2000년대 이후 장기간 누적된 미국 제조업 기반의 약화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이른바 ‘평화 배당(peace dividend)’ 국면에서 제조업과 방산 생산 능력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였고, 산업의 중심축 또한 서비스·금융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방위산업을 떠받치는 금속 가공과 정밀 부품, 소재, 숙련 노동력 등 후방 제조 생태계는 크게 훼손됐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무기체계를 설계할 능력을 갖추고도 이를 활용할 생산 능력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등 적성국과 비교해 크게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러한 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안으로 분류된다. 전장은 고가의 정밀유도 무기보다 값싼 드론과 탄약을 대량으로 투입하는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됐는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의 방산 체계는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과거 미국이 무인기(UAV) 분야의 개척자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현실은 더 뼈아프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보여준 저가 드론 대량 운용 전술은 ‘완벽한 무기 하나보다 충분히 좋은 무기 수백 기가 전장을 바꾼다’는 현실을 부각시켰고, 이는 곧 미국 방위산업의 고급·소량 생산 모델의 한계를 의미했다.
차세대 무기 분야에서도 격차는 뚜렷해지는 형국이다.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속도를 내는 사이 미국은 긴 조달(procurement)과 전력화(fielding) 일정에 묶여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중국의 제조 스케일은 미국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변수로 지목된다. 스티븐 젠 유리존 SLJ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그간 방산 분야에서는 유독 중국 기업들의 물량 요소(volume)가 과소평가됐다”고 짚으며 “성능이 미국산 무기 대비 80% 수준에만 도달해도 중국산 무기는 전장에서 유의미한 활용도를 자랑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동맹국 공동 생산·공급망 공유 구상
미국은 방위산업 재성장의 해법을 자국 내부가 아닌 동맹국과의 시장 개방에서 찾고 있다. 후방산업 약화로 단기간 내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방산을 외교·통상 전략과 결합해 동맹국의 수요와 자본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산업을 재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의 중심에 자리 잡은 개념은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다. 이는 동맹국의 국방비 지출을 미국 방산 및 제조업 회복으로 연결하는, 일종의 ‘경제 메커니즘’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미 국무부는 지난 15일 공개한 ‘2026~2030 회계연도 전략계획’에서 이러한 방향성을 공식화했다. 국무부는 “모든 양자 관계와 협상에서 상업적 거래를 추진함으로써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미국 기업 및 설루션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도록 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미국 기업과 수출을 활용하는 친미(Pro-American) 국가들의 강력한 경제 블록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미국 기술 스택과 방어 시스템을 구매함으로써 미국의 재산업화에 자금을 대고, 21세기 내내 미국의 경제적·기술적 리더십이 지속되도록 보장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동맹국의 방위산업 접근권 자체를 외교 카드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국무부는 “동맹국들이 자체 군사비 지출을 증대하며 억제 수단에 투자하도록 독려하겠다”며 그 대가로 재활성화된 미국 방위산업 기반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해 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공동 생산과 부품 공급망 공유, 상호운용성 강화 등이 포함된다. 통합된 방위산업 기반이 향후 국제 분쟁 발생 시 미국과 동맹국 모두에게 ‘전략적인 생산의 깊이’를 제공할 것이라는 게 미국의 기대 포인트다.
나아가 미국은 동맹국에 일정 수준의 부담을 요구했다. 한국을 비롯한 다수 동맹국의 국방지출 확대 필요성을 재확인하면서 증액된 예산이 미국산 무기 구매로 연결될 것임을 분명히 하는 식이다. 동맹국으로서는 방산 협력의 범위와 기술 이전 수준, 장기적인 산업 자율성과 관련해 새로운 협상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제시한 돈로 독트린 청사진에는 방위산업 재건의 현실적 선택지라는 평가와 동시에 동맹국들이 미국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와 가능성이 판가름 날 것이라는 회의적 시각이 뒤따른다.

협의보다 일방적 요구 강화 흐름
해외 비개입을 원칙으로 했던 ‘먼로 독트린’의 외교 철학을 뒤집은 돈로 독트린은 미국 외교의 일방주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1823년 제임스 먼로 미국 5대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 독트린은 유럽 열강의 미주 대륙 개입을 차단하는 것은 물론 미국 역시 유럽의 정치·군사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상호 불간섭 원칙을 핵심으로 했다. 이는 스페인·포르투갈 제국의 쇠퇴와 중남미 신생 독립국 등장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아직 패권국이 아니었던 미국이 미주 대륙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내놓은 방어적 선언에 가까웠다.
반면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본격화한 돈로 독트린은 이러한 원칙을 모두 해체한다. 먼로 독트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니셜 ‘D’를 결합한 해당 용어를 공식화함으로써 미국은 외교 노선의 방향 전환을 분명히 했다. 이를 두고 주요 외신들은 “서반구를 미국의 배타적 전략 공간으로 설정하고, 국익에 직결된 사안에는 적극적 압박과 개입을 정당화하는 노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불간섭을 전제로 한 소극적 방어 논리에서 벗어나 경제·군사·외교 수단을 총동원해 영향력을 관철하는 적극 개입 전략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를 보인다는 설명이다.
변화는 실제 정책과 발언을 통해 구체화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에 대한 강경 조치를 단행했고, 파나마 운하 통제권 문제,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 언급, 캐나다 병합 가능성 발언 등 일련의 행보를 이어갔다. 이는 합의나 조율은 배제하고 압박과 거래를 앞세운 방식으로 자국의 단기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접근으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브레이크 없는 돈로 독트린”이라 정의하며 미국 우선주의가 외교 영역에서 더욱 공격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돈로 독트린은 먼로 독트린의 역사적 원칙을 전도해 미국 중심 힘의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 외교 노선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일방주의 외교가 동맹국과의 방위산업 협력 구상에도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미국이 방위산업 재건을 위해 동맹국의 협력에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지금과 같은 일방적 요구가 누적될수록 전략의 지속 가능성 또한 제약받을 공산이 크다. 동맹국과의 신뢰와 조율 없이 추진되는 돈로 독트린이 방위산업의 재건이라는 뒷받침할 수 있을지는 미국 정부의 정책 의지보다 동맹국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