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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 압박 속 ‘해외투자 마케팅’ 제동, 금융권 현장까지 번진 환율 방어

고환율 압박 속 ‘해외투자 마케팅’ 제동, 금융권 현장까지 번진 환율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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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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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투자 상품 노출 축소 움직임
“금융사·투자자 부담 증가” 비판
상시적 자본 이동 흐름 막기 역부족

원·달러 환율이 고점 부근에서 등락을 반복하면서 금융당국의 환율 방어 전선 또한 갈수록 확대되는 모습이다. 해외 주식 투자 확대가 외환시장 불안을 키운다는 문제의식 아래 모든 금융사를 상대로 서학개미를 겨냥한 해외투자 마케팅을 자제해 달라는 메시지가 공식화됐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국내 투자처의 한계와 해외 자산 선호 등 요인으로 개인 자금의 해외 유출 흐름은 쉽게 꺾이지 않아 정책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양새다. 

국내 주식 투자 독려에 집중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권 전반에서는 해외투자 관련 마케팅을 자제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메리츠증권은 해외주식 거래 활성화를 위해 환전 수수료 무료 혜택 등을 제공하던 ‘슈퍼365’ 이벤트를 종료했고, 하나자산운용은 그간 검토해 온 미국 자산 관련 상장지수펀드(ETF) 보수 인하 방안을 잠정 보류했다는 전언이다. 반대로 국내 주식 관련 마케팅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키움증권은 지난 8일부터 비대면 계좌 개설 시 현금 지급 이벤트를 시작했고, 우리투자증권도 국내주식 온라인거래수수료 무료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고환율 장기화 국면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려는 금융당국의 문제의식이 자리한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3일 시장상황 점검회의에서 “최근 코스피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해외 자산 가치 상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으로 해외 주식 투자와 외화 금융상품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며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는 등 사전적 투자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나온 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5.3원 오른 1,473.7원을 기록했다.

금감원은 해외투자 마케팅을 추후 관리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이 원장은 해외 주식 투자와 외화 금융상품 판매 과정에서 과도한 마케팅을 벌이는 금융사 경영진을 직접 면담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외환시장 상황과 금융회사 영업 행태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필요할 경우 관계당국과 공조해 대응 수위를 높이겠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국내 자본시장 환류를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내시장 복귀계좌(RIA), 개인투자자 환헤지 상품의 조기 상품화 등을 병행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당국이 해외 주식 투자와 외화 금융상품 판매를 둘러싼 과도한 마케팅을 직접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은행권에서도 기존 환전 우대율이나 서비스 자체는 유지하되 신규 환전 이벤트나 해외투자 관련 대외 홍보를 사실상 중단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아직 명시적인 지침은 내려오지 않았음에도 선제적으로 몸을 낮추는 모습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투자 자체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외환시장 관리 기조가 강화된 상황에서 공격적인 해외 투자 마케팅을 이어가기에는 부담이 크다”며 “업계 전반이 한발 물러서 상황을 지켜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정책 당국 간 시각 차이

그러나 금융당국의 움직임과 달리 실제 개인 자금의 해외 유출 흐름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연초 들어 서학개미들의 해외주식 투자는 다시 가속됐다. 한국예탁결제원에 의하면 국내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 1일부터 12일까지 미국 주식을 23억6,800만 달러(약 3조5,000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금융권 전반에서 해외투자 마케팅이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개인 자금은 해외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이는 마케팅 축소가 투자 수요 자체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그는 지난 15일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대외채권국인 만큼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수준까지 가도 과거와 같은 금융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환율 수준을 시스템 리스크와 직접 연결 짓는 데 선을 그었다. 이어 이 총재는 “지금은 달러가 없는 위기가 아니라, 달러는 있는데 (환율 상승) 기대 때문에 안 파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해당 발언은 거시경제적 펀더멘털을 강조한 것에 가깝지만, 외환시장에 민감한 투자자 사이에서는 일부 비판적 반응을 불러오기도 했다. 

다만 업계 전반에서는 이 총재의 발언을 정책 당국 간 시각 차이가 노출된 사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와 금감원이 환율 방어와 자본 유출 억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달리 중앙은행은 외환 보유 여력과 대외 건전성을 근거로 보다 중립적인 평가를 내놨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개인 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순매수 흐름은 이러한 발언 이후에도 뚜렷한 둔화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환율 수준에 대한 경계보다 해외 자산 가격과 환율 방향성에 대한 기대가 주를 이뤘다. 

해외투자 마케팅을 억제하는 금융당국의 접근이 금융사의 영업 활동만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비판 또한 이와 무관치 않다. 수수료 인하와 환율 우대, 이벤트 중단 등으로 금융사는 고객 유치 수단을 잃고 비용 부담을 떠안는 반면, 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수요 자체는 줄지 않으면서 거래 비용과 접근성만 악화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환율 방어라는 정책 목표와 달리 자금 흐름은 유지된 채, 금융사와 개인 투자자 모두가 기회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국내 투자처 성장 가능성 ‘흐림’

이러한 흐름의 이면에는 해외투자 억제로는 해결되지 않는 국내 자본시장의 근본적 한계가 있다. 역대 정부는 원화 강세 완화와 외화 유출을 유도하기 위해 1993년 개인 해외주식 투자를 처음 허용한 이후 1996년에는 투자 한도 폐지, 2006년 모든 제한 철폐 등 단계적 개방을 추진했다. 이런 금융자율화 과정에서 개인의 해외투자는 일시적 유행이나 투기적 움직임을 넘어 제도적으로 정착된 상시적 자본 이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 번 열린 자본 이동 경로는 환율 국면 변화나 행정적 압박만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성격을 갖는다.

실제 수치에서도 이 같은 변화는 명확하게 확인된다. 한은이 발표한 국제투자대조표에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의 대외 금융자산은 2조7,976억 달러(약 4,124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거주자의 증권투자 잔액은 1조2,140억 달러(약 1,789조원)로 불과 한 분기 만에 890억 달러(약 131조원) 증가하며 최대 기록을 다시 썼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네 분기 연속 순대외금융자산 1조 달러 이상 국가 지위를 유지했고, 직접투자 역시 8,135억 달러(약 1,199조원)로 이차전지 관련 업종 중심 증가세를 이어갔다. 

같은 시기 개인이 보유한 상위 50개 해외 종목 가운데 49개는 미국 주식 또는 ETF로 확인됐다. 특히 테슬라(283억 달러·약 41조원)와 엔비디아(172억 달러·약 25조원)에 대한 투자가 전체 미국 주식 투자액의 28.5%를 차지했다. 레버리지 ETF 비중도 높아 단기 변동성 감수와 고수익 추구 성향이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 5년간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500 연동 ETF 수익률은 86%, 엔비디아는 1,249% 상승한 반면,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은 약 42%에 그쳤다. 여기에 배당 정책과 자사주 소각 관행, 환율 효과 등을 고려할 경우 체감 수익률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러한 환경에서 해외 투자 흐름은 ‘막아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이미 형성된 자산 배분의 결과에 가깝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중앙은행이 외환 보유 여력과 대외 건전성을 근거로 보다 차분한 평가를 내놓는 배경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단기적인 환율 변동성 관리와 별개로 국내 투자처의 성장성·산업 구성·주주 환원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자금 흐름을 행정적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인식이다. 결과적으로 미국 등 해외투자 열풍은 국내 시장이 장기 자금을 붙잡을 환경을 갖췄는지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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