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가 이용해 韓 규제 주권 무력화한 쿠팡, 美 의원들 ‘노골적 쿠팡 감싸기’ 본격화
美 정가 이용해 韓 규제 주권 무력화한 쿠팡, 美 의원들 ‘노골적 쿠팡 감싸기’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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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원들, 한국 디지털 규제 차별 문제 제기 미국 기업 보호 논리 앞세운 의회 압박 강화 "미 측 오해하고 있다", 차관급 직접 해명에도 강경

미국 연방 의회에서 한국 정부가 쿠팡을 비롯한 미국 기술 기업들을 부당하게 차별하며 각종 디지털 규제로 이들 기업의 사업을 어렵게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 정부는 이런 주장이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차관급인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워싱턴DC로 보내 행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모양새다. 쿠팡이 쏘아 올린 공이 법정 다툼을 넘어 한미 통상 외교의 시험대가 된 가운데, 미국 의회라는 든든한 '뒷배'를 업은 쿠팡과 우리 정부의 줄다리기는 점차 한국에 불리한 국면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쿠팡 부당 대우 용납 못 해", 美 강경파 의원들 공개 경고
13일(이하 현지시간)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의 에이드리언 스미스(Adrian Smith) 위원장(공화·네브래스카)은 이날 열린 무역소위 청문회에서 “내가 관찰한 바로는 한국이 미국 기업들을 명백하게 겨냥하는 입법 노력을 계속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미스 위원장은 한국의 이 같은 행동이 한미 무역 합의와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담아 작년 11월 미국과 발표한 공동팩트시트에서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하고,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하여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스미스 위원장은 “한국 규제당국은 이미 미국의 기술 리더들을 공격적으로 표적 삼고 있는 것 같다”며 “쿠팡에 대한 차별적인 규제 조치가 한 사례”라고 부연했다. 쿠팡의 개인정보 대규모 유출 사건에 책임을 물리려는 한국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에 대해 ‘차별’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캐롤 밀러(Carol Miller) 하원의원(공화·웨스트버지니아)도 “한국 국회는 최근 통과된 검열 법안을 포함해 미국 기업을 겨냥한 입법을 계속 추진하고 있으며 최근 두 미국인 경영진을 대상으로 정치적 마녀사냥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밀러 의원이 언급한 ‘검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최근 국회를 통과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허위조작정보근절법)을, ‘두 미국인 경영진’은 해럴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 대표와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쿠팡은 대부분의 매출이 한국 시장에서 발생하지만, 델라웨어주에 등록된 쿠팡 Inc가 한국 쿠팡 지분 100%를 들고 있는 미국 회사다. 모회사 의결권의 70% 이상은 미국 국적의 창업주 김 의장이 쥐고 있다.
한국의 디지털 규제 동향과 쿠팡 수사에 대한 우려는 미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제기됐다. 수전 델베네(Suzan DelBene) 하원의원(민주·워싱턴)은 한국과의 무역 합의를 언급하면서 "나는 지역구인 워싱턴주에 있는 쿠팡 같은 기업들로부터 한국 규제당국이 이미 약속을 위반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체결한 무역 합의에는 이행을 강제할 도구가 없다"며 "사생활을 보호하고, 혁신을 지지하며,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 기업들을 보호하는 디지털 교역 규범을 설정하기 위해 의회 주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가 눈치에 차관급 직접 해명 나서
미국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다른 나라의 디지털 규제를 주제로 한 이날 청문회는 여한구 본부장이 한국의 디지털 규제 동향에 대한 미국 정부와 정치권 등의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가운데 열렸다. 미국의 이런 문제 제기는 이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국회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통과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으로 더 부각되는 분위기다.
앞서 미 국무부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미국 플랫폼 기업의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표현의 자유를 약화하는 검열이라고 주장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냈다. 쿠팡에 대해서는 아직 미 행정부 차원의 공개적인 입장 표명은 없지만, 쿠팡이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계속 로비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향후 자국 기업을 지원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법안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같은 규제는 특정 국가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미국 측의 우려를 완화하려고 하고 있지만, 미국 측은 자국 기업들이 차별받는다고 인식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어 규제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더 받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으나, 미국 측은 자국 기업이 정치권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쿠팡에 대한 한국 측의 조치도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쿠팡은 미 정부와 의회에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한국 규제당국의 고강도 제재 가능성도 미 의회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주병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12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쿠팡의 영업정지를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현재 민관합동조사를 하고 있다”며 “어떤 정보가 유출됐는지,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 피해 회복 조치를 쿠팡이 적절히 할 수 있는지 등을 판단해서 필요하다면 영업정지까지 처분할 수 있다”고 했다.
韓 규제 칼날 꺾이나
문제는 쿠팡 사태가 한미 간 외교 갈등 사안으로 비화할 기미를 보이자 한국 정부의 태도도 다소 조심스러워졌다는 점이다. 지난달 대통령실이 외교·안보·정보 라인까지 소집해 비공개로 회의를 개최한 것도 미국 정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정부는 당시 쿠팡의 미국 정·관계 인사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연방 상원이 공개하는 로비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은 2021년 나스닥시장 상장 후 최근까지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1,075만 달러(약 159억원)를 로비 자금으로 사용했다. 로비 대상은 백악관과 연방 상·하원뿐 아니라 상무부, 국무부, 농무부, 재무부, USTR,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알렉스 웡 현 한화그룹 글로벌 최고전략책임자(CSO)도 2021년부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전까지 워싱턴DC에서 쿠팡 대관 업무를 맡았다. 그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인 2017~2021년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와 동아태 부차관보를 맡아 대북 협상 실무를 이끈 인사다. 웡 CSO는 지난해 1~5월에도 백악관에서 국가안보부 수석부보좌관을 역임했다.
쿠팡이 미국 정가를 뒷배로 삼아 역습을 강화하는 가운데 우리 정부의 대응도 다소 달라질 여지가 생겼다. 한 통상 전문가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까지 쿠팡을 미국 기업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역설했다. 한국 정부가 사태 해결의 주도권을 김 의장과 나눠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국 의회를 활용할 경우, 한국 정부의 규제 권한과 정치적 압박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입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또 다른 통상 전문가는 "이번 사건은 개별 기업의 위기 대응을 넘어 규제 회피와 정치 리스크 관리의 전략 지형 자체를 바꾸는 사건으로 평가된다"며 "향후 국내 대관 조직 확대나 정치권 로비에 비용을 투입하는 선택보다, 쿠팡처럼 법인 소재지와 거버넌스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판단이 더욱 합리적인 대안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