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지 입주에도 전세 품귀, 잠실에서 확인된 새로운 임대시장 공식
대단지 입주에도 전세 품귀, 잠실에서 확인된 새로운 임대시장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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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 거주 선택 증가→전세 위축
반전세 및 고가 월세 선택 구조 고착
무주택 청년층 매수 전환 사례 증가

서울 송파구 일대가 대단지 신축 아파트 입주장에도 전세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현상을 보여 눈길을 끈다. 통상 입주 시기에 전세 물량이 늘며 가격이 조정되는 것과 달리 매물이 제한되면서 상승 흐름이 이어진 것이다. 실거주 의무와 전세대출 규제 등 제도 변화가 공급을 제약한 가운데, 임대차 시장은 월세 비중 확대와 임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러한 변화는 세입자들의 주거 선택과 매매 시장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4,500가구 입주장 무색
14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월 첫째 주(2025년 12월 29일~2026년 1월 4일) 송파구의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09% 오르며 지난해 1월 둘째 주 이후 52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일반적으로 대단지 신축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인근의 전셋값이 내려가는, 이른바 ‘입주장 효과’가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이마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송파구에서는 2,678가구 규모의 ‘잠실래미안아이파크’가 지난달 31일 입주를 시작했으며, 이달 20일부터는 잠실르엘(1,865가구)이 입주를 시작한다.
가격 상승의 직접적 원인으로는 매물 부족이 꼽힌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등록된 매물 기준 잠실래미안아이파크 전세는 107건에 불과했으며, 잠실엘스는 64건으로 월세(84건)보다도 낮은 수준을 보였다. 지난 2018년 헬리오시티(9,510가구)가 입주를 시작하자, 전세 매물이 쏟아지면서 주변 아파트 단지의 전셋값이 도미노처럼 하락한 것과 선명히 대비된다. 당시 잠실은 전용면적 84㎡ 아파트 전셋값이 2억원 안팎으로 떨어지며 입주장 효과를 톡톡히 누린 바 있다.
업계는 연이은 부동산 규제 강화와 향후 주택 공급 물량 부족이 매물 감소를 부추긴 것으로 봤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잔금 치를 때 세입자의 전세대출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이 때문에 세입자를 들이기 힘든 구조가 형성됐다”면서 “여기에 정책적으로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다 보니 집주인이 세입자를 구하는 대신 입주하는 경향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잠실래미안아이파크와 잠실엘스는 모두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으로, 수분양자는 입주 가능일로부터 3년 이내 실거주해야 한다.
세입자의 갱신청구권을 보장한 ‘2+2’ 임대차 보호법을 ‘3+3+3’ 형태로 개정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라는 점도 집주인들의 임대 의지를 꺾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이제 전세는 2+2년이 기본이 됐는데, 첫 계약에서 싸게 내놓으면 2년 뒤에 가격을 올릴 수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여기서 임차인 보호가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세입자를 들이지 않는 게 낫겠다는 인식마저 확대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 역시 “최근 전세 매물 가운데는 3년 거주 등 특약이 붙은 물량이 적지 않아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전세 공급은 더 줄어든 상태”라고 전했다.

중산층까지 월세 부담 전이
전세 매물 자체가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임차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택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47만6,000원으로 한국부동산원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2016년 1월(90만5,000원)과 비교해 63% 상승한 수치이자, 같은 시점 4인 가구 중위소득(609만8,000원)의 2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주거비 부담이 임차인의 가계 전반을 압박하는 구조가 고착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상승 흐름은 가격 수준뿐 아니라 상승률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아파트 월세 가격 상승률은 3.29%로 집계됐다. 이 역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연립주택과 단독주택 월세 역시 각각 2.26%, 1.74% 상승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월간 흐름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후인 6월부터 상승 폭이 뚜렷해졌다. 서울 아파트 월세 상승률은 지난해 6월 0.29%, 7월 0.29%에서 9월 0.33%, 10월 0.64%, 11월 0.63%로 높아졌다.
초고가 월세 거래 증가는 이러한 흐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의하면 지난해 서울에서 신규 계약된 월세 1,000만원 이상 거래는 205건으로 집계되며 전년(182건) 대비 12.6%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용산구가 66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48건)와 성동구(39건), 강남구(35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개별 사례에서는 청담동 ‘에테르노청담(전용 231㎡)’가 보증금 40억원·월세 4,000만원에 세입자를 맞았고, 성수동1가 ‘갤러리아포레(241㎡)는 보증금 1억원·월세 4,000만원에 거래됐다.
장기 추이를 놓고 보면 변화는 더욱 뚜렷하다. 서울의 월세 1,000만원 이상 거래는 2020년 단 1건에 불과했으나, 2021년 52건, 2022년 135건, 2023년 160건, 2024년 182건, 2025년 205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이 같은 흐름은 고액 자산가 중심의 월세 수요 확대와 함께 전세를 대체하는 임대 방식으로 월세가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중산층 임차인에게도 월세 부담이 전이되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점에서 월세 시장의 변화는 임대차 시장 전반의 체질 변화를 반영하는 지표로 해석된다.
임대 비용 장기화에 따른 소유 선호 강화
주목할 만한 점은 이러한 임대 부담이 세입자들의 매수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월세 150만~200만원대가 일상적인 선택지로 자리 잡으면서 임대차에 머무르는 비용과 주택을 소유했을 때의 비용을 비교하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했다. 이 과정에서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현금 지출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매수를 택하겠다는 판단이 세입자들 사이에서 현실적인 선택으로 떠올랐다. 이는 주거 안정에 대한 요구가 임대차 시장 내부에서 해소되지 못하면서 수요가 매매 시장으로 이동하는 근본적 전환으로 읽힌다.
실제 거래 지표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생애 최초로 집합건물(아파트·빌라·오피스텔 등)을 매수한 인원은 6만1,132명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30대 매수자는 3만473명으로 2021년(3만5,382명)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을 보였다. 이들 30대 생애 최초 매수자는 지난해 1월(1,346명)과 2월(1,587명), 3월(1,779명)에는 2,000명에 못 미쳤으나 5월(2,754명) 급증했고 6월(3,326명) 정점을 찍었다. 이후 서울 전역을 규제지역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부동산 대책 영향으로 10월(2,447명)과 11월(2,346명) 잠시 주춤하다가 12월(3,079명) 다시 반등했다.
이 같은 매수 전환은 서울 전역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지난해 30대 생애 최초 매수자는 송파구가 2,004명으로 가장 많았고 △강서구 1,953명 △영등포구 1,919명 △노원구 1,775명 △동대문구 1,711명 △성동구 1,692명 △마포구 1,677명 △강동구 1,661명 △성북구 1,658명 등 순으로 집계됐다. 한강 벨트와 외곽 지역이 동시에 포함되면서 자금 여력에 따라 선택지는 달랐지만 ‘내 집 마련’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폭넓게 공유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최근의 매수세를 과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수)’ 국면과 구분한다. 단기적인 집값 상승에 베팅하기보다는 거주 안정 확보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집값 상승세는 강남 등 한강 벨트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지만, 40대 이하 청년층의 매수세는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등 외곽 지역에서도 활발했다”며 “월세 부담을 피하고 안정적으로 거주할 주거지를 확보하려는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고 진단했다. 임대차 시장의 비용 구조가 바뀌면서 매수 수요가 억제되기보다 오히려 자극되는 역설이 나타났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