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계속 산다, ‘32조 빚투’ 위로 쌓이는 금융시장 경고음
개미는 계속 산다, ‘32조 빚투’ 위로 쌓이는 금융시장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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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신용거래 중단 조치 잇따라
월가 덮친 1.8조 달러 신용 리스크
개미 매수 행렬 속 커지는 폭락 변수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휘청이는 가운데 국내 증시에서도 경고 신호가 포착됐다. 증권사 신용거래융자가 사상 처음으로 32조원을 넘어서는 등 개인 투자자의 레버리지 자금이 빠르게 확대된 것이다. 월가에서도 대규모 사모신용 시장이 금융시장의 잠재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시장 곳곳에서 경고음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다수의 개인 투자자가 하락 국면마다 공격적인 매수에 나서면서 시장 불안을 키우는 형국이다.
증권가 위험 관리 시스템 가동
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신용거래융자는 3일 기준 사상 최고치인 32조8,041억원으로 집계됐다. 시장별로 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신용 잔액은 21조7,781억원, 코스닥 시장은 11조260억원으로 두 시장 모두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달 말 코스피가 6,000선을 넘어서는 등 강한 상승 흐름이 이어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레버리지 자금을 활용해 주식 매수에 나선 규모도 빠르게 확대된 모습이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을 말한다.
신용거래융자는 일정 수준의 증거금만으로 증권사 자금을 빌려 주식을 매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레버리지 수단이다. 투자자는 최대 90일까지 자금을 빌려 운용할 수 있으며, 상승 국면에서는 적은 자본으로 더 큰 투자 규모를 운용하는 이점을 가진다. 하지만 반대 상황에서는 담보 가치 부족으로 보유 증권이 강제로 처분(반대매매)돼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나아가 쏟아지는 물량이 지수를 더 끌어내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울러 지금과 같은 과열 양상은 증권사들의 신용 공여 한도 관리에도 부담을 더한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종합금융투자사업자가 자기자본의 100%를 초과해 신용공여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빠르게 늘어날 경우 증권사는 법정 한도에 근접하게 되고,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신규 대출을 제한하거나 중단해야 한다. 이는 곧 레버리지 투자 확대가 개별 증권사의 리스크 관리 체계에도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일부 대형 증권사는 신용거래를 제한하며 대응에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4일 오전 8시부터 신용거래융자 신규 매수와 신규거래대주 신규 매도를 일시 중단했고, NH투자증권 역시 5일부터 신용거래융자 신규 매수를 중단했다. 신한투자증권의 경우, 한도 소진 가능성을 공지하며 “예탁증권 담보대출과 신용융자 서비스가 중단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처럼 주요 대형 증권사들이 일제히 신용거래 문턱을 높이고 나선 상황은 현재 주식시장에서 레버리지 투자 수요가 얼마나 과열됐는지에 대한 방증으로 읽힌다.

전쟁보다 무거운 금융 변수
월가에서는 일찌감치 신용 경색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았다. 표면적으로는 주가 상승 흐름이 이어졌지만, 금융시장 내부에서는 신용시장에 누적된 위험 요인이 점차 부각되는 분위기다. 특히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이 빠르게 팽창한 이후 자산 건전성과 유동성 구조를 둘러싼 의문이 잇따르면서 금융시장 전반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월가는 현재 사모신용 시장 규모가 1조8,000억 달러(약 2,639조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은행 규제 강화 이후 기업 대출 수요가 사모펀드로 이동하면서 시장이 급격히 커졌고, 기관투자가에 개인 투자 자금까지 대거 유입되며 레버리지 기반 대출 시장이 빠르게 팽창했다는 평가다.
실제 시장에서도 스트레스 징후가 연이어 포착됐다. 웰스파고와 제프리스 등 월가 금융기관이 자금을 공급했던 영국 모기지 업체 MFS는 이중 담보 사기 의혹 속에 24억 파운드(약 4조5,000억원) 상당의 대출을 남긴 채 파산했다. 이는 지난해 시장을 흔든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 업체 트라이컬러와 자동차 부품사 퍼스트브랜즈 파산 사례와 유사한 유형으로 거론된다. 당시 JP모건 최고경영자 제이미 다이먼은 “집안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를 목격했다면, 한 마리가 끝이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발언으로 신용시장 내부의 잠재 위험을 지적한 바 있다.
대형 사모신용 펀드에서도 자금 유출과 환매 요구가 동시에 증가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블랙스톤의 대표 사모대출 펀드 BCRED는 최근 전체 자산의 7.9%에 해당하는 38억 달러(약 5조5,000억원) 규모 환매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분기별 환매 한도를 기존 5%에서 7%로 확대했다. 동시에 블랙스톤 임직원 펀드에서 1억5,000만 달러(약 2,200억원)를 투입하고, 회사 자본 2억5,000만 달러(약 3,700억원)를 추가 투입해 환매 대응에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를 두고 “대규모 자금 이탈 사태에 직면한 사모신용 업계의 불안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사모신용 시장의 유동성 구조와 평가 방식에 대한 우려도 다시 부각됐다. 사모대출은 상장 채권이나 공개 시장과 달리 실시간 가격이 존재하지 않고 외부 평가도 제한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특히 장기 대출 자산을 보유하면서 투자자에게 정기 환매를 허용하는 구조는 시장 상황이 악화될 경우 유동성 불균형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UBS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모신용 시장 부도율은 최악의 경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15%가량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과열 경고에도 이어진 ‘줍줍’
하지만 전 세계 증시 곳곳에 경고등이 커진 가운데서도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는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과 기관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개인 투자자 자금이 시장을 지탱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지난 2월을 기준으로 보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13조3,460억원을 순매도했고 보험과 연기금도 각각 1조3,378억원과 3,343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시기 개인 투자자는 6조3,193억원 순매수에 나섰다. 주요 기관 투자자가 자금을 회수하는 상황에서도 개인 투자자 자금이 시장 유동성을 떠받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개인 투자자의 매수 심리는 지수 상승 과정에서 더욱 강화됐다. 코스피는 지난해 2,000선에서 4,000선을 단숨에 돌파하며 76%의 상승률을 기록했고, 미국과 일본, 중국, 영국 등 주요국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올해 들어서도 상승률은 47% 수준을 기록하며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높은 성과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하락 국면이 나타날 때마다 저가 매수에 나서는, 이른바 ‘줍줍’ 전략을 반복했다. 증권가에서는 연일 “시장 붕괴 가능성”, “과열 구간” 등 경고의 메시지를 내놨지만, 개인 투자자의 매수세를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해외 증권사들도 이례적으로 국내 증시의 과열 가능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홍콩계 증권사 CLSA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코스피 200 선물지수는 장기 이동평균선을 기준으로 보면 기록적인 프리미엄을 기록해 극도로 과열됐다”고 평가하며 “미국에서 이미 기술주 중심으로 하방 압력이 강화 추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시장 상황은 추격 매수보다는 리스크 관리와 이익 실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특정 국가 증시가 연속적으로 글로벌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사례는 희박한 만큼 상승 흐름의 지속 가능성 또한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외부 충격이 결합될 경우,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다. 대신증권은 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과 이란 간 충돌이 장기화할 경우, 코스피 역시 큰 폭의 조정을 겪을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분쟁이 일주일 전후로 마무리될 경우 글로벌 증시가 약 5% 내외 조정 이후 상승 추세를 유지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면 분쟁이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엔 10% 내외 조정이 발생할 수 있으며, 6개월 이상 또는 1년 이상 장기화될 경우 코스피 조정폭이 30% 이상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가뜩이나 개인 투자자 중심의 수급 구조가 형성된 상태에서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하락세는 걷잡을 수 없이 가속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일관된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