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중국 제조업의 체질적 진화, 유럽이 직면한 통상 정책의 한계
[딥파이낸셜] 중국 제조업의 체질적 진화, 유럽이 직면한 통상 정책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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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우회 넘어선 중국 대EU 수출 급증 정부 지원·가격 경쟁·규제 비대칭 복합 작용 공급망 재편 속 유럽 통상 전략 전환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통상 질서가 재편되는 가운데, 중국이 지난해 기록한 1조1,900억 달러(약 1,740조원) 규모의 상품 무역 흑자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는 현대 경제사에서 이례적인 일로, 세계 교역 구조의 변화를 상징하는 수치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는 그 배경으로 미국의 대중 관세 강화를 지목했다. 2023~2025년 중국의 대미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는 동안, 대(對) 유럽연합(EU) 수출은 뚜렷한 확대 흐름을 보여서다. 이에 따라 관세 부담을 피해 수출 물량이 유럽으로 이동했다는 ‘무역 전환’ 가설이 힘을 얻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들은 이러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관세라는 단기 요인보다 중국 제조업의 구조적 경쟁력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수출 확대의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평가다.
무역 전환 가설의 재검토
관세가 교역 경로를 바꾼다는 주장은 이론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특정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아질 경우 기업이 대체 시장을 모색하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된 국면에서 중국 기업이 유럽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는 분석도 이러한 논리 위에서 힘을 얻었다.
하지만 실증 분석은 복합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미국에서 유럽으로 뚜렷하게 수출 방향을 전환한 품목은 예상보다 제한적이었다. 상당수 품목은 최근 관세 조치 시행 이전부터 이미 대EU 수출이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었다. 유럽통계청(Eurostat) 통계에서도 중국의 대EU 수출 확대는 2020년대 초반 전반에 걸쳐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 관세의 직접적 영향이 크지 않았던 분야에서도 수출 증가가 확인된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이는 산업 경쟁력과 수요 구조 등 기초 여건이 수출 흐름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국제통화기금(IMF) 또한 중국이 지난 10년간 견고한 산업 기반을 토대로 세계 제조업 수출 점유율을 유지·확대해 왔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최근 EU로 향한 수출 급증을 관세 회피성 경로 변경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산업 정책, 비용 구조, 공급망 전략 등 구조적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전체 양상이 드러난다.

정부 지원에 따른 가격 중심 경쟁
구조적 요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변수는 중국 정부의 산업 지원 정책이다. 각국이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활용하고 있으나, 중국은 지원의 규모와 집행 방식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최근 산업 지원은 전자·기계·친환경 기술 등 전략 제조업에 집중됐다. 중국은 국유 은행의 저리 대출과 정부 조달 확대를 결합해 기업의 실질 생산 비용을 낮추는 구조를 구축했다. 이는 국제 시장에서 강력한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소폭의 가격 차이만으로도 시장 점유율이 크게 변동한다. 범용 기계 부품이나 가전제품처럼 가격 민감도가 높은 산업에서 중국 수출이 빠르게 확대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중국 내 경기 둔화 역시 수출 확대를 자극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 유지를 위해 해외 시장 공략을 강화했다. 정부의 산업 지원은 낮은 이윤을 감수하더라도 물량 중심의 수출 전략을 지속할 수 있는 재정적 토대가 됐다. 결과적으로 유럽 시장 점유율 확대는 정책 지원에 기반한 가격 경쟁력이 주도한 결과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규제 비대칭과 경쟁 조건
유럽의 규제 환경 역시 경쟁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유럽 기업은 환경·노동·제품 안전 기준을 엄격히 준수해야 하며, 이에 따른 비용 부담이 구조적으로 반영된다. 탄소 배출 비용과 친환경 설비 투자, 각종 인증 절차 이행에 따른 행정 비용은 생산 원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비용 구조는 최종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며, 가격 경쟁이 치열한 산업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문제는 수입 제품과의 경쟁 조건이다. 유럽 시장에 진입하려면 안전 기준을 충족해야 하지만, 생산 단계에서 유럽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환경·노동 규제 비용을 부담했는지는 별개의 사안이다. 이 지점에서 경쟁 환경의 비대칭,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된다. 가격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경우 소비 선택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가격 경쟁이 치열한 분야일수록 중국 제품의 시장 영향력이 확대됐다. 반면 기술 장벽이 높은 산업에서는 유럽 기업이 비교적 안정적인 성과를 유지했다. 이는 기술 고도화와 산업 특화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유럽은 항공, 초정밀 제조 등 혁신 역량이 핵심 경쟁 요소인 분야에서 여전히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동남아의 역할
국제 공급망의 재편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지난 10년간 중국 기업은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로 생산 네트워크를 대폭 확장했다. 이는 미국의 관세 압박에 대응한 위험 분산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중국 자본의 유입은 동남아 지역의 제조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해당 생산 거점은 투자와 기술 이전, 부품 교역을 통해 중국 본토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특히 최종 조립이 동남아에서 이뤄지더라도 공급망의 핵심 통제권은 중국 기업이 유지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통상 통계는 최종 조립 국가를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이러한 산업적 연계성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 관세는 공장의 위치를 이동시킬 수는 있지만,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산업 네트워크의 경쟁 우위를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의 대EU 수출 급증은 단일 변수로 설명하기 어렵다. 관세에 따른 우회 효과는 제한적이었으며, 정부 산업 지원과 가격 경쟁 구조, 규제 비대칭, 공급망 재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유럽의 대응 역시 단순한 수입 억제에 머물러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경쟁이 왜곡된 구조적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기술 우위 강화와 보조금 투명성 제고를 중심으로 정책 대응을 설계해야 한다. 산업 정책과 글로벌 공급망이 맞물린 현실을 직시할 때 지속 가능한 통상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heap Prices or True Competitiveness? Rethinking Chinese Exports to the EU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