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규제에 갇힌 유럽 자본시장, ‘국가 주도형 IPO’로 산업 전략 바꿔야
[딥파이낸셜] 규제에 갇힌 유럽 자본시장, ‘국가 주도형 IPO’로 산업 전략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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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략 산업 상장 부진 구조적 한계 노출 규제 중심 자본시장 개혁, 위험 분담 설계 부재 국가 지원 IPO 통해 산업 전략 실행력 강화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자본시장 개혁 논의는 매번 같은 진단을 반복해 왔다. 자금은 충분하지만, 상장 기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그 결과 제도권 금융 시장은 외형적 확대에 실패했다. 미국 등 주요국이 핵심 산업 지원을 위해 상장 제도와 자본 조달 체계를 조정하는 동안, 유럽은 국가 주도형 기업공개(State-Backed IPO)를 둘러싼 원론적인 찬반 논쟁에 머물렀다.
유럽에는 이미 상당한 규모의 민간 자본이 존재한다. 2023년 말 기준 벤처캐피털(VC) 규모는 530억 유로(약 90조4,700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전략 산업 기업이 주식 시장을 통해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한 사례는 극히 제한적이다. 자본 조달에 성공하더라도 복잡한 조건과 절차로 인해 실행력을 제약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정보 비대칭이나 시장 효율성 문제로 환원하는 접근 방식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본질은 제도 운영 구조에 있다.
유럽 개혁 담론의 한계
그간 유럽의 자본시장 개혁 담론은 시장의 약점을 유동성 부족과 규제 부담으로만 규정해 왔다. 이에 따라 국가 간 규제 표준화, 상장 비용 인하, 공시 제도 개선, 개인투자자 참여 확대 등이 해결책으로 제시돼 왔다. 이러한 대책은 제도 정비 차원에서는 의미가 있으나, 국가 주도형 IPO가 제기하는 핵심 질문에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즉 상장을 산업 전략의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장기적 위험을 누가 부담하고 그에 상응하는 지배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하다.
유럽연합(EU)의 개혁 제안은 제도 개선을 통해 민간 자본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데 무게를 둔다. 하지만 최근 시장의 흐름은 이러한 전제를 뒷받침하지 않는다. 유럽의 민간 자본 총량은 유지되고 있으나, 전략 산업을 이끌 핵심 기업의 상장은 간헐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2024년 유럽 IPO 공모 규모가 반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대형 상장과 사모펀드(PEF)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거래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EU가 강조해 온 전략 산업 중심의 심층 기술 기업 상장 기반은 여전히 취약한 실정이다.

지정학 경쟁과 자본정책의 변화
이러한 한계는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자본정책은 더 이상 중립적인 제도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지난해 중국은 일부 첨단 제조 및 우주 기업을 대상으로 전통적인 수익성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일정한 기술 기준을 충족할 경우 신속 상장을 허용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는 규제 완화를 넘어 IPO를 산업정책의 핵심 수단으로 재정의한 조치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은 재사용 로켓 기업에 대한 IPO 규제를 푸는 동시에, 대형 국유 및 준국유 펀드가 성장 단계에서 자금을 공급하도록 유도했다. 자본정책과 산업정책이 결합된 대표적 사례다. 유럽 역시 이 같은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할지, 아니면 민주적 통제 아래 책임 있는 전략 산업 금융 체계를 설계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중국 모델의 실질적 작동 방식
베이징증권거래소(BSE)의 상장 제도는 정책적 선택과 절충의 결과물에 가깝다. 중국은 거래 활성화 그 자체보다 전략 산업의 자금 조달을 우선시한다. 일부 유동성 저하를 감수하더라도 국가적 정책 목표 달성을 선택하는 구조를 취한 것이다.
이 체계가 작동하는 배경에는 두 가지 핵심 요인이 존재한다. 먼저 정부는 직접적인 자금 투입과 국유 펀드 운용, 우호적 인수 조건 등을 통해 손실 위험을 적극적으로 분담한다. 동시에 규제 당국과 산업 부처, 공공 금융기관 간의 긴밀한 정책 조율로 상장 요건을 전략 목표와 직접 연계한다.
결과는 핵심 산업의 장기 성장을 뒷받침하는 자금 공급 체계로 나타났다. 실제 중국 민간 로켓 제조사 랜드스페이스(LandSpace)는 수익성 기준 완화로 상장 기회를 확보했다. 이전 단계에서 국유·준국유 자금이 선제적으로 투자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정책 금융과 시장 제도가 결합된 대표적 결과물로 평가된다.
반면 유럽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단순한 시장 완화 조치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특히 EU 회원국들은 대규모 공공 자금 투입이 산업정책이나 국가 보조금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경계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책임성과 공정 경쟁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뢰 가능한 공공 지원 체계가 부재할 경우, 자금 배분의 최종 결정권은 민간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전략 산업의 투자 방향과 국가적 우선순위 실현 여부에 직격타다.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유럽 내 민간 자본은 유지되고 있으나 위험 회피 성향은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와 인베스트 유럽(InvestEurope) 보고서는 전략 산업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공공 자금 수단의 부족을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리스크 분담과 전략 집행 장치가 결합되지 않은 채 제도만 정비한다면, 소모적인 개혁 논의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 주도형 IPO 설계 원칙
문제가 운영 구조의 결함에 있는 만큼, 해법은 인센티브를 다시 설계하고 민주적 통제 아래 공공이 위험을 분담하는 체계 구축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성과 조건을 명확히 한 ‘공공 공동투자 기금’의 도입이 시급하다. 특허 확보, 탄소 배출 감축, 생산 역량 확대 등 구체적 지표를 설정하고, 목표 미달 시 제재를 부과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기한과 성과에 연동된 방식으로 공공의 영향력을 행사하되, 정치적 감독과 투명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또한 공익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에는 신속 상장 제도를 도입하고, 정부가 최종 인수자로 참여하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회 위임 아래 조건을 공개하고 민간 공동투자를 요구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일정 수준의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거버넌스 통제 장치를 확보한다면 정책 목적과 시장 규율을 병행할 수 있다.
상장 이후의 지배구조 관리 방안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주주 간 계약에 공공의 대표성을 반영하고 독립적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며, 일몰 조항과 사전 합의된 출구 전략을 포함해야 한다. 이는 영구적인 국가 통제를 뜻하지 않는다. 재무 성과와 더불어 전략적 성과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보고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다만 이 같은 접근은 시장의 비효율과 정치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비판을 수반한다. 그러나 기준과 절차가 명확하다면 특혜 논란은 최소화할 수 있다. 오히려 단순한 규제 완화에 머물 경우, 전략 기업들은 더 유리한 자본 환경을 찾아 해외로 떠나거나 자금난에 직면할 위험이 크다. 최근 IPO 시장에서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커진 흐름은 상장의 시점과 구조가 국가 전략보다는 민간 자본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현재 유럽의 민간 자본은 충분하지만 전략 기업의 상장은 여전히 정체돼 있다. 이는 제도 운영의 경직성에서 기인한다. 핵심은 유럽이 민주적 통제 아래 리스크를 분담하면서도 성과를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실행 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자본시장 개혁은 선언의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 집행 역량이 성패를 가른다. 투명한 공동투자 구조, 성과 연계형 조건부 공공 지원, 상장 이후의 감독 체계와 명확한 출구 전략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한다. 정책 수단과 시장 메커니즘이 분절된 채 병존하는 구조로는 전략 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기 어렵다. 기술 자립과 탈탄소 전환이라는 장기 과제를 현실화하려면, 이에 상응하는 금융·제도 인프라를 구체화해야 한다. 거시적 목표를 제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자본의 위험을 흡수하고 성과를 환류시키는 정교한 정책 장치를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State-Backed IPOs and EU Capital Markets Reform: Why Europe Needs Enforced Mission Financ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