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미국 관세 탓 아니다”, 중국 수출 지형 재편의 실상은
ECB “미국 관세 탓 아니다”, 중국 수출 지형 재편의 실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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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효과 축소” 진단, 설득력 낮아
중국 저가 공세 vs. 유럽 규제 확대
무역 흑자 1조 달러 역풍 가능성↑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를 기점으로 중국의 수출 지형도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중국의 대유럽 수출 증가를 미국 관세 인상의 결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진단을 내놨지만, 실제 수출 통계에서는 미국의 비중 축소와 동남아시아·유럽·중남미 등 수출 확대가 맞물려 전개됐다. 중국에 사상 최대 규모의 무역흑자를 안긴 이 같은 변화는 각국의 규제 강화와 통상 갈등으로 이어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중국의 수출 전략 전환이 세계 교역 질서에 몰고 올 파장에 시장의 이목이 쏠린다.
“글로벌 무역 구조 재편 흐름”
18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ECB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달 초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유로존 수출 증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인상 이전부터 진행된 중장기 변화의 결과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중국 기업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무역 경로를 재조정하는 과정을 밟아 온 만큼 공급망 재편과 시장 다변화가 일정 수준 이뤄진 것이란 분석이다. ECB는 “이는 단순한 ‘물량 이동’이라기보다 글로벌 무역 구조 재편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 같은 진단은 최근 중국의 수출 지표와 맞물리며 시장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중국해관총서 집계에서 지난해 중국의 수출입 총액은 45조4,700억 위안(약 9,567조원)으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수출은 26조9,900억 위안(약 5,679조원)으로 6.1% 늘었고, 수입은 18조4,800억 위안(약 3,888조원)으로 0.5% 증가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미국발 관세 압박에 수출이 급격히 꺾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전체 수출과 무역 규모는 도리어 확장하는 추세를 보였다.
지역별 흐름을 보면 미국 의존도 축소와 제3시장 확대가 동시에 나타났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상품 수출은 19.5% 감소했다. 한때 145%에 달했던 대중국 수입 관세는 47.5%까지 낮아졌지만, 여전히 중국 대미 수출업자의 이윤 마지노선인 35%를 웃도는 수준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반면 아프리카 수출은 26% 증가했고, 동남아는 13%, 유럽연합(EU)은 8%, 라틴아메리카는 7% 늘었다. 교역국은 240개국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190개국과의 교역 규모가 성장세를 기록했다. ECB가 지적한 “중장기 변화”라는 표현은 이 같은 교역 지형 이동을 염두에 둔 해석으로 읽힌다.
품목 구성 역시 달라졌다. 전기차·리튬배터리·태양광을 뜻하는 ‘신3양’ 수출은 1년 사이 27.1% 증가했고, 자동차 수출은 700만 대를 돌파했다. 이에 따라 중국의 고기술·고부가가치 제품 수출은 5조2,500억 위안(약 1,100조원)으로 전년 대비 13.2% 늘었다. 이러한 흐름은 중국이 전략 품목을 앞세워 미국 외 세계 시장으로 수출 외연을 넓힌 결과로 해석된다. 다만 유로존으로의 유입이 실제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별도의 추적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ECB의 진단은 데이터 해석을 둘러싼 논쟁의 출발점으로 남는다.
유럽 산업 기반 약화 우려 커져
유럽 내 각국은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를 예의주시하며 무역 장벽을 높이 쌓으려는 모습이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공식 석상에서 “유럽 대륙의 산업 및 혁신 모델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무역이 균형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경우, 중국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러한 발언은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하는 최대 45.3% 수준의 관세가 상향 조정될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관련 업계 전반의 긴장을 키웠다.
자동차 수출 지표는 이 같은 긴장의 배경을 보여준다.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 집계에서 중국의 1월 자동차 수출은 57만6,000대로 역대 최고 수준을 보였는데,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운 유럽 시장 확대 전략이 주효했다. EU의 고율 관세는 중국에서 생산된 순수 전기차에만 적용되고, 하이브리드차에는 적용되지 않는 까닭이다. 여기에 비야디(BYD) 등 일부 업체는 유럽 현지 생산까지 추진하고 나서면서 중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보다 확대될 전망이다. CPCA는 “중국의 신에너지차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확대되는 만큼 향후 수출 성장에도 견고한 기반이 마련됐다”고 자평했다.
철강 산업에서도 방어 조치가 본격화했다. 지난해 10월 EU는 기존 철강 세이프가드를 대체할 저율관세할당(TRQ)을 도입하며 연간 수입 할당량을 1,830만 톤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이는 기존 세이프가드 총량 대비 47% 줄어든 규모다. 할당량을 초과하는 수입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율을 25%에서 50%로 상향 조정한다. 아울러 ‘조강(melt and pour)’ 기준을 도입해 모든 수입 철강재에 조강국가 증빙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값싼 중국산 철강이 제삼국을 거쳐 원산지를 세탁해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다.
이 같은 규제 강화의 배경에는 유럽 산업 기반의 약화 우려가 자리한다.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EU의 철강 생산 비중은 2014년 9%에서 최근 7%로 낮아졌고, 최근 15년간 철강 산업에서만 일자리 10만 개 이상이 사라졌다. 더욱이 2022년 이후로는 친환경 전환과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에서 저가 수입품이 시장을 잠식한다는 인식까지 확산됐다. 이 때문에 자동차·철강 등 전략 산업에서의 대중국 압박은 단순한 무역 분쟁을 넘어 산업 생태계 유지에 가깝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저가 공세로 시장 왜곡
일각에서 중국의 밀어내기 전략을 ‘디플레이션 수출’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이 내수 부진과 과잉 생산으로 발생한 초과 물량을 해외 시장에 낮은 가격으로 방출해 수입국의 가격 체계와 산업 수익성을 압박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수년간 생산 설비를 공격적으로 확충했지만, 부동산 침체와 민간 투자 위축으로 내수 수요가 이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면서 초과 공급을 소화하지 못했다. 초과 물량은 고스란히 글로벌 시장에 쏟아졌고, 가격 하락 압력을 키웠다.
이는 다시 마크롱 대통령이 지적한 무역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중국의 무역흑자는 1조1,890억 달러(약 1,725조원)로 전년 대비 20.0% 증가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이 기간 달러 기준 상품 수출은 3조7,700억 달러(약 5,470조원)로 5.5% 늘었고, 위안화 기준으로는 6.1% 증가했다. 수출 확대 속도가 수입 증가를 크게 웃돌면서 대규모 흑자가 형성됐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흑자가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에 따른 효과”라는 해석과 함께 “글로벌 수요를 잠식하는 방식의 성장”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통상 마찰도 갈수록 심화하는 형국이다. 지난해 말 중국은 EU산 돼지고기와 부산물에 대해 4.9~19.8%의 반덤핑 관세를 향후 5년간 부과하기로 확정했다. EU가 자국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한 맞대응 성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이자 EU의 핵심 수출 시장으로, 관세 적용으로 판로가 제한될 경우 유럽 현지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 또 이 과정에서 남는 물량이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으로 유입되면, 가격 압박은 또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공산이 크다.
프랑스와의 갈등도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프랑스 정부 자문기관 전략·기획위원회(HCSP)가 중국산 제품에 30%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제언하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GT)는 “중국도 프랑스산 와인에 반덤핑·반보조금 조사를 시작하고, EU 제품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2024년 기준 EU의 대중 와인 수출은 7억 달러(약 1조원) 규모로 중국 전체 와인 수입의 30% 이상을 차지했고, 이 중 절반가량이 프랑스산이다. 상호 관세가 현실화하면, 양측 농식품 산업에는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처럼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 논란은 개별 품목 경쟁을 넘어 국가 간 통상 정책 충돌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중국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앞세워 수출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수입국들은 자국 산업 생태계 악화와 고용 감소를 우려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의 보호무역 조치가 강화될 경우, 중국의 수출 확대 전략은 점차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규모 흑자가 단기 성과로 남을지, 통상 장벽의 연쇄적 강화로 이어질지는 향후 각국의 정책 대응과 중국의 내수 전환 속도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