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훼손 그만" 중복상장에 제동 거는 정부, 해외 쪼개기 상장 '부작용'까지 차단해야
"주주가치 훼손 그만" 중복상장에 제동 거는 정부, 해외 쪼개기 상장 '부작용'까지 차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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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韓 증시 중복상장 관행에 본격 경고 신호 '중복상장 논란' LS그룹 상장 철회, 여타 대기업도 자회사 상장 전략 수정 불가피 규제 강화 흐름 속 '해외 쪼개기 상장' 부작용 발생 전망, 제도적 보완 필요

기업공개(IPO) 시장에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직접적인 지적을 받은 LS그룹을 시작으로 중복상장을 시도하는 기업들에 대한 압박이 가중된 탓이다. 정부 차원의 중복상장 규제 강화 조짐이 속속 관측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해외 쪼개기 상장 등 부작용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규제 효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LS그룹, 美 증손회사 상장 취소
26일 LS는 소액주주, 투자자 등 내·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상장 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주주 보호 및 신뢰 제고를 위해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LS는 미국 증손회사인 특수권선 제조사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을 추진하다가 중복상장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에식스솔루션즈의 지배구조는 ‘LS(95.4%)-LS I&D(100%)-Superior Essex Inc.(78.95%)-에식스솔루션즈’ 형태다.
이 같은 중복상장 논란은 주주를 넘어 정치권까지 확산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중복상장은 비일비재한 고질적 현상인데 이대로 두면 안 된다"며 직접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L자 들어간 주식은 안 사'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를 인용, LS를 직접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복상장 논란에 대한 정부의 비판적 견해가 이번 사례를 통해 한층 분명히 확인된 셈이다.
이 같은 상황 속 향후 대기업 그룹사들의 계열사 상장 전략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현시점 중복상장 논란 속에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HD현대로보틱스의 경우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게 될 확률이 높다. HD현대 그룹의 로봇 계열사인 HD현대로보틱스는 UBS와 한국투자증권, KB증권을 IPO 대표 주관사로 선정하며 상장을 본격화한 상태다. HD현대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HD현대로보틱스의 지분 81.82%를 보유 중으로, HD현대로보틱스가 상장될 경우 모회사와 자회사 간 중복상장 구조가 형성된다.
이와 함께 한화에너지, DN솔루션즈, SK에코플랜트 등 상장을 추진 중인 여타 대기업 자회사들 역시 정부의 압박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 중 일부는 프리 IPO(상장 전 투자 유치) 단계에서 재무적 투자자(FI)로부터 최대 조 단위의 자금을 확보한 만큼, 상장에 실패할 경우 투자금 회수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이밖에도 한컴인스페이스, 디티에스, 덕산넵코어스 등은 이미 상장예비심사가 중단됐다. 모두 상장사의 자회사이자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진 기업들이다.
빈번한 중복상장, 왜 '병폐'인가
국내 증시의 중복상장 문제는 꾸준히 고질적인 병폐로 꼽혀 왔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 가운데 중복상장 기업의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18.0%에 달한다. 일본(4.0%)이나 대만(2.7%), 미국(0.05%) 등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높은 수치다. 반면 테슬라와 엔비디아, 애플 등 뉴욕 증시를 대표하는 기업 중 핵심 사업을 분리해 자회사로 상장한 기업은 거의 없다. 기업 가치를 하나의 종목에 집중시키고, 주주 및 시장의 신뢰를 장기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의 보편적인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연쇄 파산을 방지하고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적 분할 제도가 악용되며 중복상장 문제가 고착화했다고 평가한다. 기업들이 물적 분할 제도 도입 이후 중복상장의 '메리트'를 인지하며 알짜 사업부를 쪼개어 상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회사가 증시에 입성하면 모기업의 지배력이 낮아지지만, 지배주주 지위만 잃지 않는다면 모기업은 자회사에 대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외부 자금을 이용해 기업 덩치를 키우면서도 얼마든지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관행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중복상장이 모기업 가치를 희석해 기존 투자자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기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의 알짜 사업부가 따로 상장하면 알짜 사업에 대해 새로운 주주가 생기고, 기존 모회사 주주들은 물리적으로 알짜 사업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게 된다. 알짜 사업을 보고 모회사에 투자했던 주주들이 중복상장을 ‘사기’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지주사 주가는 자회사 가치만큼 할인되는 ‘더블 카운팅(중복 계산)’ 리스크에 노출되고, 주주들의 자산 가치는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훼손된다.

규제 강화 시 부작용 나타날 위험도
향후 중복상장 문턱은 대폭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중복상장 관행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를 보낸 가운데, 한국거래소 역시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1분기 상장규정 시행세칙 개정을 목표로 '중복상장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선 상태기 때문이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중복상장의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 시장 참여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다. 가이드라인 초안은 이르면 다음 달 완성될 것으로 보이며, 한국거래소는 이후 금융 당국과의 협의를 거쳐 세칙을 개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중복상장 규제가 강화될 시 해외 시장 상장으로 눈길을 돌리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해외 쪼개기 상장의 대표적인 예가 LG전자의 인도 법인 상장이다. LG전자 인도 법인은 상장 전까지만 해도 한국 LG전자의 100% 완전 자회사였고, LG전자는 신주 발행 없이 구주만을 매각해 인도 법인을 현지 증시에 상장시켰다. LG전자가 보유한 인도 법인 지분 100% 중 15%를 인도 주식시장에서 팔고, 85%를 그대로 보유하는 방식이다.
이는 한국 LG전자 일반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다. LG전자는 100% 자회사인 인도 법인의 자산과 실적을 연결 기준 재무 실적에 반영해 왔다. LG전자 전체 순이익 중 인도 법인의 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이다. 그러나 인도 법인의 상장으로 인해 매각 지분에 해당하는 가치가 사라졌다. LG그룹과 LG전자는 잔여 지분 85%의 가치 인정을 주장하지만, 시장에서는 상장된 자회사의 가치를 모회사가 전부 인정받으려는 것은 더블 카운팅에 해당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LG전자가 보유한 인도 법인 지분 85%의 가치는 한국 시장에서 실제보다 낮게 평가될 수 있다. 이밖에 한국 LG전자 주주와 인도 법인 주주 사이에서 배당 규모와 방식, 배당금 한국 이전 등 투자 수익과 회수 문제를 두고 이해충돌이 발생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중복상장 규제 강화와 동시에 해외 쪼개기 상장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해외 증시 진출을 원하는 기업은 ADR 발행 등을 택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DR은 미국 내 예탁 기관이 해외 기업의 주식을 보관한 뒤 이를 기초로 발행해 미국 증시에서 주식과 동일한 효력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증서를 뜻한다. 주식은 국내 시장에 상장돼 있지만, ADR을 통해 미국 투자자들도 간접적으로 해당 주식의 거래가 가능해 사실상 미국 내 직상장 방법으로도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