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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대행 플랫폼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의 운명이 결국 법원에 넘어갔다. 14일, 채권자인 OK캐피탈이 법원에 P플랜(사전회생계획제도·Pre-packaged Plan)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P플랜은 법정관리 개시 전 채무자가 채권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 회생 계획안을 제출하고, 법원이 이를 심리·결의해 인가해 주는 법정관리의 한 방식이다. 미리 회생 계획안을 마련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통상적인 방식보다 회생에 걸리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
OK캐피탈이 신청한 P플랜에는 유진소닉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이 OK캐피탈 손을 들어줄 경우 유진소닉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두고 스토킹호스(Stalking Horse) 경쟁입찰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스토킹호스는 회생법원이 경쟁입찰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좋은 조건을 내건 응찰자가 나오면 기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OK캐피탈 등 채권단 내부에선 스토킹호스 방식 도입 시 메쉬코리아에 신규 자금이 유입되면서 내년 1분기 내 경영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이번 P플랜에는 채권 전액 변제 계획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P플랜을 인용하면 OK캐피탈뿐 아니라 모든 거래처들의 원리금 회수에 이상이 없을 전망이다. 아울러 약 2~3개월 정도의 단기 회생 절차를 밟음으로써 전국 지점, 배송기사까지 회생 절차 지연에 따라 발생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P플랜에는 회생 절차 중 2륜 배송사업 지속을 위한 긴급자금 조달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채권자 계획대로 법원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앞서 유정범 메쉬코리아 의장 개인이 ARS(자율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 및 회생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ARS는 회생 신청부터 회생 절차 개시 결정까지 기간을 이용해 채권자들과 채무자들이 자율적으로 구조 조정 협의를 할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다. 해당 기간 내에 채무자와 채권자가 구조 조정안에 합의하면 회생 신청을 취하하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대로 회생 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진다.
업계 관계자는 “유 의장이 신청한 ARS 및 회생 신청과 OK캐피탈이 신청한 P플랜 방안을 비교한 뒤 메쉬코리아와 채권자 보호에 더 적합한 방식을 선택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밝혔다. OK캐피탈 측은 유 의장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개인주주 자격으로 법원에 ARS와 회생 신청을 했기 때문에 OK캐피탈이 제시한 P플랜보다 주주, 채권자, 메쉬코리아에 더 좋은 회생 방안을 확약받는 게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P플랜, 사전회생계획제도란?
사전회생계획제도는 채무자 부채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채권을 가진 채권자나 채권의 동의를 얻은 채무자가 회생 절차가 개시되기 전까지 법원에 사전회생계획안을 제출하고 이를 법원이 인가해 진행하는 구조조정법을 말한다. 미리 회생계획안을 마련해 놓은 뒤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회생계획안 제출에만 4개월 넘게 걸리는 통상적인 회생 절차보다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회생기업은 신청이나 개시 자체로 신용도 급락, 채권 회수, 거래처의 기피 등으로 영업과 신규 투자에 막대한 지장을 겪게 되며, 따라서 절차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우선적으로 강조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생 절차는 개시, 인가, 종결이나 허가신청 등에 대한 각종 심리, 채권조사나 채권자 동의를 위한 각종 절차 진행 등에 있어 법에 근거한 공정한 절차 진행과 결정을 본질적 요소로 하는 사법절차이다. 때문에 그러한 공정성을 기초로 부실기업이 회생하는데 필요한 M&A나 채무의 감면 변경 등 다수 이해관계인과의 집단적 법률관계 조정이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서로 상반될 수 있는 법익들 사이의 충돌은 회생 절차의 실효적 운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 '사전회생계획제도'는 그러한 법익 충돌을 극복하고 회생 절차의 실효적 운용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회생 절차 개시 당시 법원이 별도로 정한 기한 내 회생 계획안이 제출되고 이후 관계인 집회에서 채권자 동의를 얻는 통상적인 회생 절차와 달리, 법원이 정한 서면결의 회신 시간의 초일 전날까지만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만으로도 결의가 된 것으로 하는 간단한 방식으로, 사전 계획안을 통해 채무자와 채권자가 회생 개시 전에 신규자금을 확보해 '신속히'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부분의 회생 절차가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사전회생계획안 제출 제도는 이 과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비교적 빠른 시일 내로 실시할 수 있다. 회생 또한 신속히 진행되고 비용 절감이 되는 것은 물론이므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는 제도다.
P플랜 선례, 쌍용자동차는 어떻게 됐나?
P플랜의 선례로 쌍용자동차가 있었다. 쌍용차는 HAAH오토모티브와 사전회생계획제도 가동이라는 큰 틀에서 합의를 하고, 그 합의안을 토대로 채무변제계획 등이 담긴 사전회생계획안을 마련했다. 사전회생계획제도에 들어가기 위해 상거래 채권단인 협력업체의 동의를 필수로 받아야 하는데, 쌍용차는 협력업체 비상대책위원회에 당시 2천억원 규모의 어음을 상환할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용차 협력업체 비상대책위원회는 토론 끝에 쌍용차의 회생을 위해 사전회생계획제도 돌입과 어음 만기연장을 수용하기로 했다. 이후 쌍용차는 KG그룹에 인수되면서 지난 11월, 1년 7개월 만에 회생 절차를 종결했다. 종결한다고 끝은 아니다. 이제 법정관리 꼬리표를 떼고 경영정상화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회생 절차를 졸업해도 이후 수익성 개선과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쌍용차 역시 이를 위해 내년 토레스 전기차 버전 출시를 목표로 다시 수익 증진에 몰두하고 있다.
메쉬코리아 억울? 어쩌다 이 지경까지
메쉬코리아 유정범 의장은 올해 초 내부 사정이 어려워지자, 지분 21%를 담보로 OK캐피탈한테서 360억원을 대출받았다. 기한 내 대출을 갚지 못하자, 지난달에 ARS를 신청하면서 회생 개시 전까지 채권자들이 메쉬코리아 자산을 가압류하거나 가처분, 강제집행 등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같은 상황에 OK캐피탈은 메쉬코리아가 대출 상환을 못하니 바로 지분을 빼고, P플랜을 법원에서 승인받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투자자들의 의견을 따라 물류센터를 잔뜩 지었는데, 이제 회사 무너진다고 다들 발 빼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유정범 의장은 다소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법원은 P플랜과 ARS를 종합적으로 비교한 후,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적합한 방법을 선택할 예정이다. 적어도 내년 2월 24일까지는 ARS 회생 절차가 유효하게 진행되므로, 이 기간 중에 OK캐피탈 채무 변제를 완료할 수도 있다. 채무자와 채권자의 갈등 끝에 과연 법원이 어떤 결정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