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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에 난항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해외 주요 국가의 반대로 인해 진행이 더뎌지자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이 ‘플랜B’를 가동시킨다는 소식마저 보도됐다. 하지만 산은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수년째 끌어온 합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산은 경영진의 책임론까지 나오고 있다. 애초부터 지적되던 미국과 EU를 설득 문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적 자금 8,000억원을 투입하고서도 민간 사모펀드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까지 더해지면서 산은은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산은, 아시아나 제3자 매각 검토
8일 오전 한국경제신문의 단독 보도로 인해 합병 논란이 더욱 불거졌다. 한국경제신문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경영정상화 방안'에 대한 자문을 위해 삼일회계법인을 끌어들였다고 보도하면서 합병 무산 가능성을 암시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에서는 미국과 EU 등 경쟁당국의 최종 결론이 ‘불가’로 나올 경우를 예상하는 게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산은은 플랜B 가동 사실을 강력히 부인해 왔지만, 회계법인 컨설팅 소식이 전해진 것은 결국 중요 국가의 승인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산은은 합병이 무산될 경우 대비책(플랜 B)이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발표했지만, 두 달 만에 이야기가 바뀌었다.
다국적으로 활동하는 기업, 특히 항공사의 경우 합병 시 각국의 반독점법에 따라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필수적으로 승인을 받아야 하는 미국과 중국, EU, 일본 등 4개국 중 단 한 곳이라도 합병 허가를 받지 못하면 합병이 무산된다. 그러나 아시아나-대한항공은 지금까지 중국 단 한 곳의 승인만 받은 상태다. 게다가 미국과 EU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실제로 미국 법무부(DOJ)는 지난 5월 대한항공에 합병으로 인한 독과점 발생을 우려하며 합병 승인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명시적으로 통보한 바 있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산은이 지금까지 한진 측의 '긍정적 전망'만 맹신하다가 드디어 합병 무산 가능성을 인지한 것이 아니겠나"라며 "거래 무산 시에도 산은 책임론이 부각되지 않도록 재무회계적 방어 논리를 마련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전했다.
반독점법 교착 상태
지난 5월 DOJ는 대한항공의 합병 승인을 위해서는 잠재적 독과점을 해소할 수 있는 경쟁 항공사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대응책으로 저비용항공사 설립을 제안했지만, DOJ는 그마저도 거부했다. 미국과 더불어 EU 집행위원회(EC)도 여객 및 화물 운송 부문에서 독점적 경향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 규제 당국을 달래기 위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 화물 사업부를 티웨이항공과 같은 기업에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산은은 난색을 보였다. 아시아나항공의 사업부 매각은 아시아나항공의 회생과 시너지 활용이라는 합병의 본래 목표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화물사업은 2021년 아시아나항공 항공운송 매출의 72.5%를 차지하는 알짜 사업부다.
고개 드는 산은 책임론
앞서 산은은 2019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을, 2020년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각각 합병하겠다는 조선·항공 산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경쟁이 지나치게 치열한 데다 재무 여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1등 회사에 2~3등 회사를 붙이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당시 EU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불허했다. 역시 독과점이 문제였다. 결국 지난해 9월 한화가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취득해 인수하기로 결론이 났다. 한화를 제외한 다른 대기업이 인수에 난색을 표하면서 2019년 당시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정리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을 비롯한 산은 경영진이 무리한 기업결합을 밀어붙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과 항공 합병 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게 되는데, 해외 경쟁당국이 이를 문제 삼을 여지가 충분했고, 그간 많은 지적이 있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아시아나의 항공운송 사업 부분이 호조를 보이는 만큼 이를 바탕으로 독자 생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결국 무리한 합병은 한진그룹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합병만을 위한 합병이 되고 있다”며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된 만큼 본래 취지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산은은 인수 과정에서 대한항공 모회사인 한진칼에 8,000억원(유상증자 5,000억원, 교환사채 3,000억원)을 투입했다.
게다가 반독점 관련 우려로 인해 상당수의 슬롯을 반납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 아시아나는 이미 런던 히드로 공항과 중국의 일부 슬롯을 포함해 여러 개의 중요한 슬롯을 포기했다. EU의 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바르셀로나, 미국의 뉴욕-샌프란시스코-LA와 같은 장거리 노선은 ‘황금노선’으로 불릴 정도다. 수익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면서까지 포기한 것이다.
결국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에 성공하더라도 장거리 노선에 대한 시장 지위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합병을 강행하는 것이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인수가 지연되는 사이 부채비율이 늘어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건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