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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국내 가계대출 잔액이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며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분기 활기를 띠기 시작한 부동산 시장의 여파로 풀이되는 가운데,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이 부동산에 집중된 만큼 시장 거품을 주의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8월 주담대 증가 주도"
한국은행은 13일 '8월 중 금융시장 동향' 보고서를 통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은행 가계대출 잔액이 1,075조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7월 말과 비교하면 6조9,000억원 증가한 수준이며, 2021년 9월(9조7,000억원) 이후 2년 1개월 만의 최대 증가 폭이다.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4월(2조3,000억원)으로 상승 전환한 후 5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한 달간 7조원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이 가계부채 증가를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증가세로 돌아선 주담대는 6개월 연속 증가 폭을 키우고 있다. 전세자금 수요로 전세자금대출은 소폭 감소했지만, 주택 구입 관련 자금은 크게 늘었다. 금리 상승 등 영향으로 신용대출을 비롯한 기타대출은 1,000억원 줄었다.
한은은 얼어붙었던 부동산 시장이 올해 회복세를 보이면서 주택 구입 관련 자금 수요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2월부터 시행된 특례보금자리론 등 정책금융의 영향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청년층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심리를 자극한다'는 논란의 중심에 선 50년 만기 주담대도 대출 증가세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윤옥자 한은 금융시장팀 차장은 "50년 만기 주담대는 DSR(총부채 원리금상환비율) 측면에서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8월 주담대 증가분 가운데 상당 부분이 50년 만기 주담대 형태로 취급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의 부동산 시장을 살펴보면 이같은 가계대출 증가세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4월 34,965건을 기록한 후 5월 40,746건, 6월 39,622건, 7월 36,260건을 기록하는 등 꾸준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으며, 주택 거래 이후 대출 시행까지 걸리는 시차를 고려하면 9월 이후로도 주담대 증가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윤 차장은 "가계대출이 4월 증가세로 돌아선 후 5월부터 8월까지 짧은 기간에 증가 폭을 키우고 있다"며 "가계대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택 경기인 만큼 8~9월 거래량에 따라서 가계대출 증가 속도와 증감 폭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50년 만기 주담대 손보는 금융당국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등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자, DSR 산정 만기를 최장 40년으로 제한하고 가산금리를 적용하는 등 대출 한도 축소에 돌입했다. 50년 만기 주담대가 DSR 규제 우회 수단으로 악용되는 등 '상환 능력 내 대출'이라는 대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대출 전 기간에 걸쳐 상환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경우 DSR 산정 만기를 최대 40년으로 제한한다. 다만 개별 차주별로 상환능력이 명백히 입증되는 경우에는 50년 만기 주담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권 역시 자체적으로 40∼50년 만기 대출 상품을 취급할 때 과잉 대출이나 투기 수요 등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울일 방침이다. 또 집단대출이나 다주택자, 생활 안정 자금 등 가계 부채 확대 위험이 높은 부문에는 관리를 강화한다.
변동금리 대출에 대해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을 고려해 엄격한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DSR 산정에 일정 수준 가산 금리를 적용하는 '스트레스 DSR'도 도입된다. 예를 들어 연 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금리 4.5%의 50년 만기 주담대(DSR 40% 적용)를 받을 경우, 가산금리 1%p가 적용되면 기존 4억원이던 대출 가능액이 3억4,000억원으로 줄어드는 식이다.
또 가계대출 취급이 많은 은행의 취급 실태를 파악하고, 집단대출 등을 통해 50년 만기 대출을 대규모로 취급한 특수은행 등에 대해서는 DSR 대출 규제 특례가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지 면밀히 점검할 예정이다. 이세훈 금융위 사무처장은 "50년 만기 대출 취급에서 나타난 느슨한 대출행태를 바로잡으려면 차주의 상환 가능성을 면밀히 점검하고 과잉 대출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은행권의 역할이 필요하다"면서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은행권을 비롯한 금융권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하며 금융당국도 제도개선과 기준 마련에 힘써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무리한 정책금융, 금융 불균형 해소 늦추는 역효과 낳을 수도
전문가들은 가계부채 급증 현상을 '금융위기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다수의 기관이 가계부채의 심각한 상황을 내세워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각종 부동산 규제를 완화해 가계부채 증가세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부동산 시장은 2월부터 급매물을 조금씩 소화한 후 3월부터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이는 모두 1월 3일 있었던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일어난 일이다.
정부의 올해 부동산 대책에는 △중도금 대출규제 완화 △규제지역 해제 △전매제한 해제 △실거주 의무 해제 △개발제한구역 적극적 해제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다. 모두 '규제'보다는 '완화' 방안으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동시에 소득 제한 없이 1주택자에게도 9억원 미만 주택에 대해 대출한도 5억원까지 DSR 적용을 배제하는 특례보금자리론 등 각종 정책금융을 제공해 부동산 수요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정부의 무리한 부동산 부양 정책의 부작용이 하나둘 수면위로 떠오르며 한은 금융통화위원들도 일제히 경고에 나섰다. 지난 7월 금통위 회의에서 한 의원은 "최근 가계부채가 급증함에 따라 금융 불균형 해소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으며, 또 다른 의원은 "정책금융 지원 등 공급 요인과 주택가격 상승 기대에 따른 수요 요인이 겹쳐 높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파른 만큼, 보다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