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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투자 혹한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9월 유독 반도체 분야 스타트업들에 대규모 투자금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중순 100억원대 투자 유치에 성공한 파네시아와 디케이엠씨 등이 대표적인 예로, 이들 기업은 대규모 투자 유치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2030년 CXL 시장 규모 ‘27조원’ 전망
4일 VC 업계에 따르면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ompute Express Link, CXL) 반도체 개발 팹리스 기업 파네시아는 지난달 중순 160억원 규모 시드 라운드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해당 투자에는 대교인베스트먼트와 SL인베스트먼트 등 7개 투자사가 참여했으며, 파네시아는 이번 투자 유치로 1,034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정명수 대표를 필두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 석·박사 인력으로 구성된 파네시아는 CXL 기술 구현에 활용되는 반도체를 탑재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다. 지난해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유즈닉스 연례 회의에서는 세계 최초로 CXL 2.0 기반 풀-시스템 메모리 풀링 프레임워크를 구현한 실장 장치를 선보였고, 올해 5월에는 CXL 3.0 기술을 활용한 데이터센터향 인공지능(AI) 응용 가속 솔루션을 공개해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CXL 3.0 기술 활용 AI 응용 가속 솔루션은 AMD, 메타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대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업계는 파네시아가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차세대 반도체로 주목받는 CXL 시장에 더욱 공격적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CXL은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 반도체를 잇는 도로를 기존 2~3차선에서 8차선 이상으로 대폭 확장하는 기술이다. CXL을 CPU, 그래픽처리장치(GPU), SSD 등 메모리카드에 장착하면 기기의 성능을 대폭 늘릴 수 있다. 고속, 대용량 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는 최첨단 인터페이스로 거론되며 방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초거대 AI 시대에서 필수적인 기술로 손꼽히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CXL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업계는 CXL 시장이 오는 2030년 200억 달러(약 2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파네시아는 이번 투자 유치를 바탕으로 CXL 반도체 기술을 고도화하고, AI 응용 및 대용량 데이터 병렬 처리를 가속하는 CXL 솔루션 등을 추가 개발할 방침이다. 이를 토대로 CXL 생태계 확장에 기여하겠다는 포부다. 정명수 파네시아 대표는 "아직 CXL 생태계가 제대로 성숙하지 않아 CXL 활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풀 스택의 지원 없이는 CXL의 모든 성능을 활용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짚으며 "파네시아의 CXL 솔루션은 CXL IP 및 하드웨어, 이를 활용하기 위한 시스템 솔루션, 그리고 AI, 데이터 처리 응용을 가속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 전부 포함하고 있어 성능과 편의성 측면에서 차별화된다"고 말했다.
디케이엠씨 "설비투자로 반도체 핵심 소재 생산 확대에 총력"
비슷한 시기 반도체 공정소재 쿼츠 전문업체 디케이엠씨도 신기술사업금융회사 에스비파트너스로부터 100억원의 시리즈 B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2020년 미래에셋벤처투자 및 키움인베스트먼트로부터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해 경기도 안성에 반도체용 파츠 정밀세정 및 코팅 라인 및 쿼츠 가공설비를 신설한 디케이엠씨는 이번 시리즈 B 투자금을 바탕으로 반도체 파츠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쿼츠 소재 제품 가공설비 증설에 나선다.
쿼츠는 반도체 전 공정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 중 하나로, 식각·증착·이온주입 등 다양한 공정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보호하고 이송하는 쿼츠 웨어를 비롯해 포커스링, 마스크 등의 부품에도 두루 활용된다. 과거 천연쿼츠가 널리 사용됐던 것과 달리 최근 첨단 공정에서는 내열성과 내플라즈마성에서 더 우수한 합성쿼츠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세라믹 가공을 시작으로 사업에 첫발을 디딘 디케이엠씨는 2019년 SEMES 1차 공급업체에 등록하며 본격적인 반도체 공정소재 생산에 나섰다. 글로벌 최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 디스플레이 부문 공급업체 인증을 획득하고 세라믹 및 쿼츠 소재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연구개발(R&D)에서 정밀가공, 정밀세정 및 코팅에 이르는 일련의 공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했다는 특징이 있다.
케이디엠씨는 반도체 경기가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 4분기를 맞이해 보다 안정적인 생산능력을 갖추면서 쿼츠, 세라믹, SiC 등 다양한 소재의 생산량을 늘리는 등 사업 성장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준현 케이디엠씨 대표는 "글로벌 쿼츠 부품산업이 연평균 27% 성장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평택 및 용인에 입주한 주요 고객사들의 새로운 반도체 공장과 해외 장비업체들의 국내 공장 신규설립에 맞춰 선제적인 설비투자를 통해 반도체 산업 반등 기회를 발판으로 회사를 반도체 가공세정 전문업체로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술경쟁력만 있으면 판로는 '무궁무진'
업계는 이같은 반도체 분야 스타트업 성장 동력 확보의 배경에 영국 반도체 설계자산(IP) 업체 ARM의 미국 나스닥 상장 흥행을 꼽았다. 올해 미국 기업공개(IPO) 시장 ‘최대어’로 꼽힌 ARM은 상장 첫날인 14일(현지 시각) 25% 폭등하며 반도체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에 그동안 시장에서 저평가되면 반도체 관련 기업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면서 투자 유치를 비롯한 여러 방면에서 긍정적인 성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파네시아와 디케이엠씨의 대규모 투자 유치는 ARM의 상장을 전후로 결정과 집행, 발표까지 속전속결 진행됐으며 이들 기업 외에도 사피온, 파인원 등 다수의 스타트업이 반도체 기술력을 인정받아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선택과 집중’을 위해 기술경쟁력 있는 스타트업들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있는 만큼 VC 업계의 투자금이 앞으로도 당분간 반도체 분야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했다. 강경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칩 설계의 복잡성과 비용 증대 등을 이유로 다수의 팹리스 업체들이 모든 IP를 직접 개발하기보다 특정 IP에 강점이 있는 업체에서 구매하고자 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성명하며 “중장기 성장성을 확보한 스타트업들을 중심으로 사업 생태계 확장의 기회가 한층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