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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림플레이션이 낳은 '불법 사이트' 수요, 무료 콘텐츠 원하는 소비자 몰려 '누누티비' 폐쇄 이후로 아류 사이트 대거 등장, 정부 눈 피해 불법 수익 올려 OTT 요금 인상 전략 역효과 냈다, 휘청이는 국내 콘텐츠 시장
OTT 플랫폼의 스트림플레이션(스트리밍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 본격화하자 '누누티비'로 대표되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의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고물가로 여유를 잃은 소비자들이 속속 OTT 유료 구독을 해지, 불법 사이트의 '무료 콘텐츠'를 시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익성 개선을 위해 단행한 요금 인상 정책은 오히려 주요 OTT 플랫폼의 저작권 수익을 갉아먹는 골칫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정부 단속 피해 몸집 불리는 '불법 사이트'
지난 4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의 대표 격인 누누티비가 폐쇄됐음에도 유사한 형태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가 대거 쏟아져 나왔다. 이들 사이트 대부분은 누누티비와 비슷한 인터페이스 및 운영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영화, 예능 등은 물론 △디즈니플러스 <비질란테>, <무빙> △넷플릭스 <이두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등 유료 OTT의 최신 오리지널 콘텐츠를 버젓이 무료로 제공하는 식이다.
수익 창출 방법 역시 유사하다. 불법 도박 사이트와 연동되는 광고를 노출하거나, 성인용품 등을 무분별하게 판매하는 식이다. 접근에 별도의 인증 및 가입이 요구되지 않는 만큼 미성년자도 유해한 서비스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사회 및 콘텐츠 시장에 상당한 피해를 야기하고 있는 이들 불법 사이트가 좀처럼 폐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URL을 우회하거나, 접속 차단 의무가 없는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 사업자 서버를 이용하는 등 교묘하게 정부의 감시를 피하고 있다. 서비스가 차단될 경우 텔레그램 등을 통해 새로운 접속 방법을 안내하기도 한다. 정부는 불법 사이트 증식을 막기 위해 수시로 사이트를 차단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나, 대부분 불법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완벽한 근절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불법 사이트'로 흘러가는 스트림플레이션 수익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의 급성장 원인으로는 '스트림플레이션'이 지목된다. 최근 넷플릭스는 가구 외 구성원과 계정을 공유할 경우 1명당 5,000원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계정 공유 단속' 정책을 국내 도입했다. 애플도 자사 OTT 서비스 '애플TV 플러스'의 요금을 기존 약 9,500원에서 1만3,500원으로 인상했고, 디즈니+는 내달 1일부터 기존 월 9,900원 수준이었던 단일 요금제를 월 1만3,900원 프리미엄 요금제로 개편할 예정이다.
토종 OTT 플랫폼인 티빙 역시 내달 1일부터 베이식·스탠더드·프리미엄 요금제의 가격을 1,600원~3,100원가량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업계에서는 스트림플레이션이 오히려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의 배를 불려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OTT 구독 요금 인상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의 수요가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로 이동, 오히려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이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됐다.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이용 장벽이 매우 낮은 편이다.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손쉽게 접속할 수 있으며, 콘텐츠 시청 시 별도의 회원 가입도 필요하지 않다. '제2의 누누티비'로 불리는 모 사이트는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17번의 제재를 받으면서도 1,900만 명에 달하는 누적 접속자를 끌어모으기도 했다. 고물가에 지친 소비자들은 인상된 구독료를 납부하는 대신 손쉽게 '불법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수익성 강화를 위한 구독료 인상이 오히려 OTT 업체의 '저작권 피해'를 키우고, 소비자들을 불법 도박을 비롯한 유해 콘텐츠의 위험으로 내몬 셈이다.
OTT 업체 피해 막중, 근본적 해결책 강구해야
불법 스트리밍은 중국에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등 대다수 글로벌 OTT는 현재 중국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글로벌 OTT에 등록돼 있는 한국 OTT 콘텐츠를 불법 유통, 현지에서 무료로 시청하고 있다. 중국 콘텐츠 리뷰 사이트 더우반(豆瓣)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이두나!>의 리뷰가 1만여 개나 등록되기도 했다. 속절없이 불어나는 '제2의 누누티비'로 신음하던 콘텐츠 업계는 졸지에 해외 불법 유통 피해까지 떠안게 됐다.
대규모 투자를 등에 업고 제작된 OTT 오리지널 콘텐츠가 국내외에서 순식간에 '무료 콘텐츠'로 둔갑하고 있어 콘텐츠 업계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K-콘텐츠 불법유통 근절 대책' 민당정 협의회에서 "누누티비는 월평균 1,000만 명이 접속해 (OTT의 저작권) 피해액이 5조원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단순 VOD 단가를 기준으로 계산한 수치로, 부가 판권이나 해외 유통 등의 수익까지 고려하면 피해액은 한층 불어나게 된다.
업계에서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대상 수사가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치열한 수사 끝에 사이트 하나를 폐쇄하면 또 다른 유사 사이트가 등장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효성 없는 수사와 처벌은 오히려 이들의 '단속 회피' 방법을 고도화할 위험이 있다. 지금은 콘텐츠 시장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