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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급 11만2,000원 인상에 역대급 성과금까지
대대적 파업 우려 딛고 46일 만에 잠정 합의 도달
6년 연속 무분규 달성, 10일 예정됐던 파업 취소
현대자동차 노사가 기본급 11만2,000원 인상 등을 골자로 하는 임금 잠정합의안을 마련했다. 전국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추후 해당 잠정합의안을 투표로 가결시키면 현대차는 6년 연속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마무리하게 된다. 과거 매년 파업을 되풀이하며 ‘강경 투쟁’의 대명사로 꼽혀온 현대차 노조의 변화를 두고 글로벌 자동차 산업 급변기 속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공동의 의지, 노조 내 세대교체 등 복합적인 영향이 미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차 노사 임단협 '잠정 합의'
현대차 노사는 8일 오후 울산공장에서 열린 12차 교섭에서 이같은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밝혔다. 노조는 오는 12일 잠정합의안 수용 여부를 묻는 조합원 찬반 투표를 통해 합의안이 통과되면, 현대차는 2019년 이후 6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1987년 결성된 현대차 노조는 거의 매년 파업을 반복하며 대립각을 세워 왔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등 대외 경제 여건에 따라 변하기 시작했다. 2011년 이후 8년 만인 2019년에 파업 없이 무분규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타결한 것을 시작으로 상생의 노사 문화를 다져왔다. 현대차의 이 같은 합리적인 노사 문화는 최대 실적 달성으로 이어지는 근간이 됐다는 평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영업이익은 2021년 6조5,270억원, 2022년 9조8,250억원, 지난해 15조1,27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최근에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등을 맞고 있는 자동차 업계가 생존을 위한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는 만큼 노사가 손을 맞잡고 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면서도 물량 확대, 기술 개발 등에 매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강해지고 있다.
아울러 기존의 노조를 주도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소위 MZ세대 조합원들의 인식이 크게 다르다는 점도 무분규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상대적으로 젊은 조합원들이 강경 파업 대신 대화와 타협 등 실리 위주의 해결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연령별 인력 현황을 보면, 30세 미만 임직원은 2021년 2만3,689명, 2022년 2만6,249명, 지난해 2만6,97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는 반면, 50세 이상 임직원은 같은 기간 각각 3만5,805명, 3만4,792명, 3만3,950명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기본급 4.65%·1,800만원·주식 25주, 모두 역대 최고 인상
양측이 이날 마련한 합의안에는 기본급 4.65%인상, 기본급의 400%와 1,000만원에 해당하는 2023년 경영성과금, 2년 연속 최대 실적 달성 기념 별도 격려금 명목의 기본급 100%와 280만원, 재래시장 상품권 20만원, 임금교섭 타결 관련 별도 합의 주식 5주 지급이 포함돼 있다. 기본급과 성과급 모두 역대 최고 인상안이다. 이와 별도로 올해 9월 말에는 ‘글로벌 누적 판매 1억대 달성’ 기념 품질향상격려금으로 400만원과 현대차 주식 20주를 지급한다.
임금협상 외 별도요구안에 대한 잠정 합의도 이뤄졌다. 양측은 현장직들에게 지급되는 ‘컨베어 수당’을 인상하기로 했다. 호봉제 폐지를 비롯한 임금체계 개선과 관련해서는 ‘미래변화대응 TFT’를 통해 10월까지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노조의 요구가 강했던 핵심 쟁점인 정년연장은 노사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일단 봉합됐다. 내년 상반기까지 정년연장 관련 정부 정책과 사회적 인식변화에 따른 법 개정 등의 상황을 감안해 노사 협의 후 시행키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만 64세 정년연장을 요구했다. 현재 현대차 정년은 만 60세다.
노사는 이번 잠정합의에서 '노사 미래 동반 성장을 위한 특별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교섭에서 합의한 국내공장 미래 투자 관련 합의 사항 구체화와 연계, 국내공장을 중장기 미래사업 핵심 제조기지로 전환하기 위한 내용을 담았다. 회사는 전동화 전환, 차체 경량화를 위해 완성차의 알루미늄 바디 확대 적용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해 첨단 대형 다이캐스팅 차체 제조 공법인 '하이퍼 캐스팅' 기술 내재화를 본격 추진한다.
또한 노사는 최근 사회적 난제로 대두된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대를 모아 단체교섭과 별도로 노사 공동 저출산·육아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직원과 가족의 임신을 돕기 위해 난임 유급 휴가를 기존 3일에서 5일로 확대했으며, 난임 시술비도 1회당 100만원 한도로 횟수 제한 없이 지원하기로 했다. 출산 지원책으로는 출산축하금을 대폭 확대해 첫째 300만원, 둘째 400만원, 셋째 이상 500만원을 지원한다. '엄마·아빠 바우처' 제도도 신설해 직원이 자녀를 출산 시 첫째 50만원, 둘째 100만원, 셋째 이상 150만원 상당의 바우처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오는 13일 예정됐던 부분 파업 계획은 취소됐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4일 오후 쟁의대책위원회를 통해 10일과 11일 각각 4시간씩 파업에 돌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대트랜시스, 현대위아 등 계열사들도 파업일정을 잡은 상태였기에 현대차 노사의 임금협상이 불발되면 현대차그룹 노조 전체적인 파업의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현대차 노사가 잠정합의안을 마련하면서 그룹 전체로 파업이 확산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양측이 합의안을 마련한 만큼 당초 쟁의대책위원회가 계획했던 10일 파업은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자동차 업계 협상 타결 '마중물' 기대
현대차가 비교적 순조롭게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노사 협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기아는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에서 합의안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아 노조는 올해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을 요구한 상태다. 현대차 노조 요구안인 기본급 15만9,0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등과 큰 차이가 없다.
KG모빌리티도 지난해까지 14년 연속으로 임단협 타결을 이어온 만큼 올해도 큰 갈등 없이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KG모빌리티 노조 역시 3년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있으나 현대차 노사가 결론을 내지 못한 만큼 동력을 잃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르노코리아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임금피크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지난해 실적이 전년 대비 감소한 만큼 큰 폭의 임금 인상은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GM 한국사업장 노사의 올해 임단협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일 파업권을 획득한 노조는 8~11일 일정으로 부분파업에 들어간 상태다. 한국GM 노조는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전년도 순이익의 15%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9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만큼 요구안을 관철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