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한국은행, 8월 금통위서 재차 기준금리 동결 결정
한은 결정에 직접적 의견 표명한 정부, 일각선 "과도한 개입" 비판도
금리 동결 원인으로 지목된 부동산·가계대출, 향후 정부 대책은?
한국은행이 13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가운데, 대통령실이 한은의 판단에 유감을 표명하고 나섰다. 정부가 한은의 금리 조정 움직임에 대해 직접적인 평가를 내놓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강화하며 한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흘러나온다.
한은, 부동산 과열 고려해 금리 동결
2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갖고 금리를 현 수준(3.5%)에서 동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1월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50%로 상향 조정한 뒤, 같은 해 2월부터 13차례 연속 동결을 선택한 것이다. 앞서 시장 일각에서는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금통위원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실제로는 금통위원 7명 전원이 금리 동결에 찬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3개월 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판단한 금통위원은 지난달 2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금리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금통위원이 절반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리 인하가 너무 늦어질 경우 내수 회복이 지연되면서 성장 모멘텀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확대할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고 금리 동결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 총재는 “내수 부진은 시간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는 반면, 부동산과 가계 부채에 따른 금융 안정 위험 신호는 지금 막지 않으면 좀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커지겠다고 판단했다”며 “현 상황에서 한은이 이자를 급격히 낮추거나 유동성을 과잉 공급해서 부동산 심리를 자극하는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집값 상승세와 가계대출 증가세가 금리 동결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셈이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7월 서울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6월보다 0.76% 상승하며 4년 7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됨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 역시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지난 14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19조9,178억원으로, 이달 초 대비 4조 1,795억원가량 급증했다.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압박을 받은 은행들이 7월 이후 여러 차례 대출 금리를 인상했음에도 불구, 증가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 양상이다.
"한은 결정 아쉽다" 대통령실의 시각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정부 측이 한은의 이번 금리 동결 결정과 관련한 직접적인 의견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같은 날 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 권한”이라면서도 “이미 시장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9월 금리를 내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인데, 한은이 선제적 결정을 내렸다면 내수 진작 측면에서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대통령실의 이 같은 발언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현행법상 한은은 거시 경제 상황을 반영해 기준금리를 독립적으로 결정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준금리 결정을 두고 대통령실과 한은의 의견이 충돌하는 일은 역대 정부에서도 종종 있었지만, 기준금리가 실제 결정된 이후에는 한은의 독립성을 존중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평가를 자제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며 "대통령실의 이번 입장 표명은 정부의 내수 증진 정책 효과가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준금리 결정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8월 금통위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정부 차원의 금리 인하 압박이 한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는) 내려갈 방향밖에 없다”며 금리 인하를 종용한 바 있다. 지난 6월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 역시 △근원물가 상승률이 최근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 △다른 국가들도 금리를 인하하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앞세워 "통화 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짚었다. 다만 대통령실은 이번 입장 표명이 개입으로 해석될 여지는 사실상 없다는 입장이다.
금리 향방, 부동산이 좌우한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차후 정부가 펼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10월·11월 금통위 회의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 전문가는 "이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목표치(2%)에 가까워진 지 오래다. 언제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한은이 굳이 동결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지 않겠나"라며 "정부는 무작정 기준금리 인하를 종용할 것이 아니라, 한은의 금리 동결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금리 동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부동산 시장 과열·가계대출 증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 현재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정조준한 대출 규제 방안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 20일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iM뱅크 등 19개 시중은행장과 만난 자리에서 '가계대출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다음달부터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및 2금융권 주담대 전반에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가 적용될 예정이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하는 제도로, 차주들의 대출 여력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이에 더해 금융당국은 수도권 주담대에 비수도권(0.75%p) 대비 높은 1.2%p 수준의 스트레스 금리도 적용하기로 했다. 지역에 따라 대출 한도가 달라지는 셈이다.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가 시행될 경우,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싼 서울 등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거래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실거주를 목적으로 10억원대 안팎의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수요자들이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크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시장에서는 한동안 관망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시적으로 거래량이 감소하며 수도권 집값 상승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문제는 현재의 집값 상승세가 서울의 '공급 부족' 문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충분한 물량 공급이 따라오지 않는 이상 (대출 규제)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