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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탈취 사건 매년 증가세, 삼성전자도 '골머리'
재택근무 모니터링 강화 나선 삼성디플, 직원들은 "사생활 침해"
노동법상 관련 규정 전무, 노동계 "정부 차원 제도 정비 나서야"
삼성디스플레이가 원격 근무자를 대상으로 '안면 인식 시스템' 도입을 시사했다. 기술 탈취 문제를 사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노동조합 측은 해당 시스템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개인정보 침해나 직원 감시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근로자가 많아지고 있는 만큼 모니터링에 대한 법률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등 제도 정비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쏟아진다.
삼성디스플레이 안면 인식 시스템 도입
3일 삼성전자초기업노조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2일부터 웹캠으로 원격 근무자의 얼굴을 인식해 업무 프로그램에 접속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RC운영그룹 ▲FAB품질그룹 ▲Cell기술팀 ▲ME팀 등의 외주 운영 부서, 국내외 해외 출장과 업무파견, 시스템 관리자 등이 주요 대상이다. 사측은 해당 부서 일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1개월간 시범 운영 후 대상자를 확대해 시스템을 전면 도입할 계획이다.
안면 인식 시스템은 업무에 필요한 원격접속프로그램(VDI) 최초 접속 시 개인정보 동의서를 받고 얼굴을 좌우로 회전해 6장을 촬영, 안면을 등록한다. 이후로는 안면 인식을 통해야만 업무 프로그램에 로그인할 수 있으며, 직원이 잠시 모니터 앞을 떠나면 화면 전체가 검은색으로 블라인드 처리된다.
삼성디스플레이 측은 안면 인식 시스템 도입 경위에 대해 "기술 탈취 사고를 사전 예방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주요 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 문제는 점차 심화하고 있다. 실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경찰이 송치한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은 지난 2021년 9건, 2022년 12건, 2023년 22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특히 이 중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 유출 송치 건수는 ▲2019년 1건 ▲2020년 2건 ▲2021년 3건 ▲2022년 7건 ▲2023년 12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기술 탈취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바 있다. 지난 2022년 퇴사를 앞둔 반도체 직원이 재택근무 중 반도체 기술과 관련된 전자문서 등 보안 자료 수백 건에 접근,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해당 자료들을 촬영한 것이다. 해당 사건 이후 삼성전자는 화면 워터마크 도입 등 보안 관련 시스템과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노조 측 반발, "개인정보 침해 등 부작용 우려 커"
하지만 노조 측은 안면 인식 시스템 확대에 반대 입장을 내놨다. 개인정보 침해 및 과도한 직원 감시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단 이유에서다. 노조 측 관계자는 "웹캠으로 거주지 등이 노출될 수 있고, 자리를 비울 때마다 블라인드 처리되는 시스템이 업무 감시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VDI 접속 시 받는 개인정보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을 경우 업무 자체가 어려워진다"며 "이는 회사 방침에 동의하지 않는 직원에 대한 업무 배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웹캠을 통한 모니터링만으로는 기술 탈취 문제를 온전히 막을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하람 삼성디스플레이 열린노조 위원장은 "최근 카메라 해상도가 좋아서 정면에서 촬영하지 않고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술 유출이 가능하다"며 "이미 원격 근무 시 해당 PC 화면 녹화, 워터마크 삽입 등 컴퓨터 사용 기록이 저장되고 있고 OTP 등을 이용한 인증 절차도 진행하고 있는데 웹캠 설치까지 하는 건 직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해당 시스템 백지화를 위한 노사 간 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논란이 발생한 건 '모니터링'을 둘러싼 노사 간 인식에 차이가 커서다. 사용자 입장에선 재택근무 시 노동자의 근태를 관리하는 건 영업 기밀 보호, 업무 진행 상황 관리, 주 40시간 근무제 공고화 등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재택근무 시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활용한 근태 관리가 이뤄지는 이유다.
문제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근태 모니터링이 어디까지 정당하고 정당하지 않은지 일률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단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재택근무 및 원격근무와 관련한 노동법상 규정이 전무한 상태다. 고용노동부 지침과 재택근무 관련 질문·대답을 담은 가이드라인이 있긴 하지만, 범규범 역할을 대신하기엔 미흡한 수준이다.
개인용 PC에 업무용 컴퓨터 수준의 보안 대책을 마련하기 어렵단 점도 한계다. 기술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지만 개인 소유의 컴퓨터에 인터넷 사용 내역이나 로그 파일 등 세부적인 부분까지 감시해 기록을 남기거나 이를 실시간 전송하면 사생활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 결국 현존하는 시스템으론 '적법한 모니터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란 의미다.
재택근무 희망자↑, 관련 제도 정비 필요
재택근무 모니터링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모니터링 방식을 둘러싼 논란과 별개로 재택근무를 원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활용하지 않은 이들 중 앞으로 재택근무를 희망하는 근로자는 지난해 기준 141만5,000명에 달했다. 조사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고치다.
이에 노동계를 중심으로 재택근무 등 원격근무에 대한 제도 정비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정부 차원에서 ▲근로 시간 준수 보장 ▲업무와 관련한 연락을 받지 않을 연결차단권 ▲재택근무를 요청할 수 있는 원격근무 접근성 보장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단 것이다. 노동법상 규정이 마련되면 사측의 모니터링 방식이 적법한지 여부를 두고 사내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을 방지할 수 있을 거라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및 보안 기술 강화 등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재택근무 근태 관리의 책임이 대부분 기업 측에 있어 관련 시스템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부담만 과도하게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비용이 온전히 기업의 책임으로 돌아가면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 규모의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기피하게 될 수밖에 없다"며 "재택근무에 따른 보안 문제와 비용 문제 등 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