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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한국에 ‘선박 협력’ 손 내밀어 한국, 생산력·기술력 모두 갖춘 맹방 국가 미 해군 함정, 한국 조선소에서 정비 시작
미국 해군이 보유한 수륙양용 전투함 중 절반이 작전 투입이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국 조선업이 서서히 무너지면서 건조와 수리 역량이 현저히 약화했기 때문이다. 미 해군이 군함 숫자를 늘리기는커녕 유지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 사이 ‘글로벌 1위’로 조선업 굴기를 완성한 중국은 해군 함정 수에서 이미 미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미국, 해상 지배력 도전 직면
14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국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은 이달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올해 3월 기준 미 해군이 보유한 수륙양용함 32척 중 절반인 16척이 기대수명을 채우지 못할 정도로 관리 상태가 나쁘다고 평가했다. 미 해군은 법에 따라 가용 수륙양용함을 최소 31척 유지해야 하지만, 적기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상당수는 작전과 훈련에 투입할 수 없는 상태라는 판단이다. 그간 미 해군은 폐기 예정인 노후 수륙양용함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정비 작업을 하지 않았는데, 신규 함정 도입 지연으로 인해 노후 함정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 상태다.
이는 수륙양용함 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은 조선업 붕괴로 함정 창정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 해군이 운용하는 370척 이상의 함정 중 매년 130~150척이 조선소에 입항해 창정비를 받아야 하지만 조선소 설비 노후화와 인력 부족으로 정비 작업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엔 미국 조선업의 ‘몰락’이 있다. 1970년대만 해도 연간 1,000척의 선박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1위 생산 능력을 갖췄던 미국 조선업은 높은 인건비, 산업 중심의 이동 등에 따라 현재는 연평균 선박 건조 수량이 10척 안팎에 불과한 수준으로 추락했다. 조선업을 보호하겠다며 제정한 법 때문이다. 1920년 탄생한 존스법(Jones Act)은 미국 내 화물 운송에 사용되는 선박은 미국에서 건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 조선업은 해외 조선업체와 경쟁을 피한 채 안정적인 물량을 수주할 수 있게 됐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해외 조선소가 만든 싸고 좋은 배 대신 미국 조선소가 만든 비싸고 질 나쁜 배를 써야 했던 것이다.
조선업 굴기 완성한 중국, 미 해군 추월
그사이 중국 조선업은 해양 굴기에 나선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채 미국을 앞서가고 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초국가적 위협 프로젝트’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이 진수한 구축함은 23척인 데 반해 미국은 11척에 불과하다. 총 전함 수도 미국이 219척으로 중국(234척)보다 적다. 조선업에 필수적인 숙련 용접공 등을 미국 현지에서 구하지 못해 빚어진 결과다. 여기에 함정 정비 지연으로 인한 전력 공백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CSIS는 소련 붕괴 이후 처음으로 해상 지배력이 도전받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 같은 추세를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중국이 현재 속도로 함대를 계속 확장하고, 미국이 조선업을 재활성화하지 못한다면, 해상에서 중국이 승리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질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해전의 승리는 함정 숫자가 좌우한다. 미 해군연구소의 ‘더 큰 함대가 이긴다(Bigger Fleets Win)’라는 제하의 기고문을 보면 저자는 “소수의 고품질 함대를 가진 쪽보다 더 많은 함선을 보유한 쪽이 거의 이긴다”며 “역사적으로 28개의 해전에서 25번 승리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초기 손실 후에도 신속히 대체할 예비함대가 있고, 더 많은 정찰 자산을 통해 적을 효과적으로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플랫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점도 함선 수가 많은 쪽이 갖는 강점이다.
그런데 중국 해군은 함선 수만 많은 게 아니다. 중국의 군함 중 약 70%는 2010년 이후 진수된 비교적 신선(新船)이지만, 미 해군의 군함은 약 25%만이 이 시점 이후 진수됐다. 구축함보다 크고 전함보다는 작지만 강력한 무장과 장거리 항해 능력을 갖고 있는 순양함의 경우, 중국은 2017년 이후 8척을 진수했지만 미국은 1척도 만들지 못했다.
문제는 이 같은 격차가 더 벌어진다는 데 있다. 조선업의 역량 차이 때문이다. 미 해군정보국(ONI)의 ‘중국 해군 건조 추세와 미국 해군 건조 계획(2020-2030)’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최대 조선소보다 규모와 생산성이 더 큰 상업용 조선소를 수십개 보유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7월 유출된 미 해군 브리핑 자료에는 미 해군정보국이 평가한 미·중 조선업 역량 차이가 등장하는데, 한 국가가 1년에 건조할 수 있는 총톤수 기준 중국 조선소의 생산능력은 약 2,325만 톤으로 평가되는 반면, 미국은 10만 톤 이하로 평가됐다. 중국의 생산 역량이 미국의 최소 232배에 달한다는 얘기다.
한화오션, 美 군함 MRO 수주 릴레이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미·중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군함 등 특수선 분야 생산력·기술력을 모두 갖춘 맹방 국가인 한국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달 7일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선박 수출뿐 아니라 MRO(유지·보수·정비, Maintenance, Repair, Overhaul) 분야에서도 긴밀한 양국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배경에도 미 해군 군사력 약화에 대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이미 한·미 간 조선 협력은 공고화 단계다. 한화오션은 올해 하반기에만 미 해군 함정 MRO 사업 2건을 수주했다. 지난 8월 미국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시라(Wally Schirra)’함에 이어 지난달 급유함인 ‘유콘(USNS YUKON)’함의 MRO 사업도 수주한 상태다. 해당 함정들은 앞으로 3개월간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서 창정비를 받게 되는데, 미 해군 함정이 한국 조선소에 들어와 정비와 수리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 해군은 전투함 관련 기술·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외국 기업에 정비를 맡기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화오션이 수주한 MRO 함정은 모두 비전투함으로, 국내 조선업계는 최근 미 GAO가 언급한 수륙양용함처럼 장기적으로는 미 전투함 MRO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전투함이 수가 많고 창정비 규모도 커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한화오션이 올해 6월 미 필라델피아의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를 1억 달러(약 1,400억원)에 인수한 것도 장기적으로 미 전투함 MRO 시장까지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한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후 MRO 라이선스를 취득하고 함정MRO 수행을 위한 사업장으로 쓸 예정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군수지원함 등 비전투함 MRO에서 미국의 신뢰가 쌓이면 전투함 MRO 진출도 가능해질 거라 본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도 한화오션과 마찬가지로 지난 7월 미 해군과 MSRA를 체결하며 향후 5년간 미 해군 함정 MRO 사업 참여 자격을 확보했다. 아직 HD현대중공업은 MRO 사업을 수주하진 않았지만 능력은 입증했다는 평가다. HD현대중공업은 2022년 필리핀에 군수지원센터를 설립하고 국내 조선업체 최초로 해외 MRO 사업에 나선 바 있다. 향후 필리핀 해군 MRO 실적을 바탕으로 미 해군 발주 사업을 노린다는 계획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비전투함 분야부터 상호 신뢰관계를 구축한 후 단계별로 MRO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해군 MRO 시장, '한일전' 양상
다만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경쟁국인 일본을 넘어서는 게 우선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현재 일본은 미 7함대가 주둔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요코스카 해군기지를 중심으로 미 항공모함과 구축함, 잠수함 등의 고부가가치 MRO를 맡고 있다. 올해만 해도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항공모함인 USS 로널드 레이건(CVN-76)을 비롯해, 이지스 구축함인 USS 밀리어스(DDG69)와 USS 벤폴드(DDG 65) 등의 MRO를 잇따라 마쳤다. 일본이 미 해군과 7함대의 MRO를 해 온 세월만 75년 이상이다. 그만큼 일본은 인도-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 해군 작전의 핵심을 담당하는 중요한 축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등 수익이 큰 고부가가치 함정의 MRO는 일본이 전담하고, 일본에서 소화할 여력이 없는 물량만 국내 업체들이 수주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문근식 한국군사문제연구원 객원연구원은 “미국은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가 크기에 보안이 필요한 함정들의 MRO는 일본에 줄 가능성이 많다”며 “군사적 동맹으로서 한미보다 미일 관계가 더 신뢰성이 높은 데다 해군기지도 일본에 위치해 함대를 운용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국내 업체들이 일본을 따라가려면 우선 미 해군 MRO 사업의 경비를 한미 방위비 분담금에서 지불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일본이 수행하는 미 7함대 배속 함정의 MRO 사업 비용은 미일 방위비 분담금에서 지급된다. 미국 입장에선 해군 함정의 MRO 비용을 직접경비로 지불하는 대신 방위비 분담금에서 해결하면 부담이 적으니 일감을 맡기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최태복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이사도 “한미 방위비 분담금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지원하는 비용”이라며 “미 해군 또한 한반도 전쟁 억제를 위해 역할을 하는 만큼 이를 해군 함정의 MRO까지 폭넓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