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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에 최대 20% 보편 관세 부과 선언
기업들 ‘적극 로비→생산시설 이전’ 분주
인플레이션 초읽기, 금리 인상 가능성 대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목전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의 ‘고율 관세 정책’에 대응한 산업계의 발걸음이 분주한 모습이다. 많은 기업이 정책 변경을 위해 로비까지 불사했으나, 트럼프 당선인의 의지가 완강한 탓에 차선책 마련이 시급해진 것이다. 시장에서는 차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주요 결정 트럼프 혼자, 보좌진 의견 제시 기회 차단
15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많은 기업이 미국 의회와 트럼프 당선인 측에 관세 면제를 촉구하기 위해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등 방법을 고민하고 있지만, 좌절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 같은 사례로 LG전자, 글로벌파운드리 등을 소개했다. LG전자 미국법인은 최근 무역과 공급망 현안을 로비하기 위해 대관업체 캐피털카운슬과 계약했으며, 반도체 제조사 글로벌파운드리는 로비회사 코젠 오코너를 고용했다. 또 멕시코산 맥주 수입 업체 컨스털레이션은 공화당과 연관 있는 컨설팅 회사와 접촉했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의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에는 60%의 관세율을 적용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이어 선거 승리 직후에는 내년 1월 20일 취임과 동시에 중국에 10%의 관세를 추가 부과하고, 멕시코와 캐나다에는 각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으로 구성된 경제연합체인 브릭스(BRICS)가 달러 패권을 위협할 경우 100%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WSJ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브릭스 관세 관련 발언을 SNS에 올리기 전에 알았지만, 멕시코·캐나다·중국 관세의 경우 충분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체로 이와 같은 문제를 혼자 결정하는 탓에 보좌진들이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게 WSJ의 전언이다. 그리고 이는 기업의 적극적인 로비 활동이 트럼프 당선인에게까지 닿지 않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활동한 한 로비스트는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에 대해 하는 말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라며 “그를 만류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단언했다.
재고 늘리고, 가격 인상 카드 ‘만지작’
이에 각국 주요 기업들은 서둘러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현재 거론 중인 방안으로는 높은 관세가 적용되는 중국을 빠져나와 생산지를 이전하는 것과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방안 등이 꼽힌다. 먼저 장난감 회사 해즈브로의 경우 향후 4년 안에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40%에서 20%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공급업체와 협상을 진행 중이며, 디자인 변경 또한 검토한다는 설명이다. 크리스 콕스 해즈브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이미 몇 달 전부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왔다”고 밝혔다.
가격 인상을 시사한 기업들도 다수 눈에 띈다. 자동차 부품 회사 오토존, 아웃도어 제품 업체 컬럼비아스포츠웨어, 공구 제조사 스탠리 블랙&데커 등이다. 도널드 앨런 스탠리 블랙&데커 CEO는 “트럼프 당선인의 새로운 관세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다”며 “관세 인상에 앞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세 인상 전 미리 중국산 제품 재고를 늘린 기업도 있다. 파버웨어, 미카사, 키친에이드 등 여러 주방용품 브랜드를 운영 중인 라이프타임 브랜즈가 대표적 예다. 로버트 케이 라이프타임 브랜즈 CEO는 지난달 초 컨퍼런스 콜에서 “관세 인상 가능성에 대비해 재고 수준을 올렸다”며 “단기적으로는 비용이 늘었지만, 잠재적 관세가 미칠 리스크를 대비한다는 데 의의를 뒀다”고 말했다.
“언젠가 산다면, 지금 사야”
수입산 제품 ‘사재기’ 현상은 비단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 소비자들 또한 상품 가격이 오르기 전 생필품 비축에 돌입했다. 시장조사기관 크레딧닷컴이 이달 초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2,000명 중 약 30%가 11월과 12월에 더 많은 물품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39%는 차기 행정부의 추가 관세에 따른 수입품 가격 인상 우려를 그 이유로 꼽았다.
많은 경제학자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기간 수요가 급증하면 공급과의 불균형으로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2.7% 상승했다. 9월 2.4%로 둔화했다가 10월 2.6%로 오른 데 이어 11월에도 그 상승 폭을 키운 것이다. 미 의회예산국 또한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공약이 시행되면 내년 물가상승률이 기존 2.4%보다 2%포인트 높은 4.4%로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관세에 따른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 연방준비제도(Fed)는 다시 금리 인상 기조로 돌아설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윌콕스 U.S이코노믹리서치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은 인플레이션과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조치를 선언해 Fed의 업무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통화정책은 시차를 두고 작동하기 때문에 Fed는 앞으로 회의에서 금리를 결정할 때 트럼프의 다양한 제안이 실행될 가능성을 평가하고 위험의 균형을 맞출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