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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후 잠재성장률 한 차례 반등 없이 떨어져 올해 잠재성장률 2%, 2030년 1% 초중반까지 하락 저출생에 투자 부진 등으로 노동·자본 생산성 축소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내년부터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모든 생산 요소를 활용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으로 국가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가늠하는 지표다. 한은은 노동시장 개편과 출생률 상승, 여성·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 등 적극적인 구조개혁 없이는 20년 안에 잠재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韓 잠재성장률, 2000년대 이후 하락 추세
19일 한은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발표하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인구 및 노동시장 구조변화 등을 고려한 잠재성장률을 재추정치를 발표했다. 한은이 잠재성장률 수치를 내놓은 것은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한은은 기존의 추정 방식과 비교해 거시변수의 변동성을 모형 추정에 반영하고, 노동시장 참가자의 성·연령·학력 집단별 특성을 고려해 노동 투입 지표의 추정 방식을 수정하는 등 개선된 방법론을 이용해 잠재성장률을 추정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초반 5% 내외에서 2010년대 들어 3% 초중반으로 하락했고, 2016~2020년에는 2% 중반으로 낮아졌다. 팬데믹 이후 올해까지 2% 수준을 유지하던 잠재성장률은 내년부터 2029년까지 연평균 1.8%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이처럼 잠재성장률이 추세적으로 낮아지는 것은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구조적 요인과 함께 총요소생산성과 자본 투자 증가세가 둔화한 데 기인하는 것으로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가적인 구조개혁이 없이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0년대 잠재성장률이 1% 초중반으로 떨어지고 2040년대 후반에는 연평균 0.6% 수준으로 낮아진다고 예상했다. 자본 투입·총요소생산성 기여도가 서서히 둔화하고, 노동 투입 기여도 역시 점차 하락한다고 가정한 결과다. 다만 연구진은 향후 구조개혁으로 대응할 경우 잠재성장률 하락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구진은 "혁신 생태계 조성, 수도권 집중 완화, 일과 가정의 양립 정책 등 그간 논의돼 온 구조개혁이 성공적으로 시행될 경우 잠재성장률은 추가 상승하게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총요소생산성 향상, 출산율 제고, 여성·고령층 노동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2040년대 후반 기준 전망 대비 각각 △0.7%포인트 △0.1~0.2%포인트 △0.1%포인트씩 오를 것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향후 잠재 성장률을 효과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는 한편 미래 경제구조 변화에도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기업투자 환경 개선, 혁신기업 육성 등으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올리고,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 공급 둔화 속도를 완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정책 노력도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美 잠재성장률 상승세, 지난해부터 韓 추월
한은에 앞서 지난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정한 올해 우리나라 잠재성장률도 2.0%로 낮은 수준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0~2021년 2.4%에서 2022년 2.3%, 2023년 2.0%로 최근 5년간 0.4%포인트 하락했다. 2013년 OECD 보고서가 제시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3.5%임을 감안하면 10년 새 1.5% 하락한 것이다.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으로 저출생·고령화로 생산연령인구가 줄어든 점을 꼽았다. 실제로 한국처럼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심화하는 일본은 같은 기간 잠재성장률이 0.6%에서 0.3%로 반토막 났다.
이에 반해 미국은 반등했다.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2020~2021년 1.9%로 한국보다 낮았지만 2022년 2.0%, 2023년 2.1%로 높아지면서 지난해부터 한국을 추월했다. 올해도 2.1%로 전망돼 한국에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한국의 15배 이상에 달하는 미국에 역전당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낮은 경향이 있는데 이에 비춰보면 한국이 소득 수준이 더 높은 미국보다 잠재성장률이 낮아진 점은 이례적이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도 최근 잠재성장률이 오르는 추세다. 독일은 2020년 0.7%에서 올해 0.8%로, 영국은 같은 기간 0.9%에서 1.1%로 상승했다. 이제 막 선진국에 진입해 한참 더 성장해야 할 한국이 이미 완숙(完熟) 경제에 접어든 주요국보다 성장 잠재력이 뒤처진 것이다. 다만 한국 잠재성장률의 절대적인 수치는 주요 7개국(G7)과 비교하면 여전히 2위 수준이다. 미국(2.1%)을 제외하면 모두 한국(2.0%)보다 낮다. 캐나다(1.9%)가 미국 뒤를 이었고 프랑스·이탈리아·영국(1.1%), 독일(0.8%), 일본(0.3%)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등 주요국의 잠재성장률이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경제 활성화에 총력전을 벌인 산업 정책의 성과가 나타난 결과라고 평가한다. 미국은 유연한 노동시장을 바탕으로 경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AI, 디지털 등 신기술 개발이 지속되면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효과적인 거시경제 정책과 투자 촉진 정책이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영국과 독일도 연구개발(R&D)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노동시장 개혁,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경제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주력해 왔다.
韓 경제 활력 잃어, 주력산업 성장률도 하락
반면 한국 경제는 저출산·고령화에 혁신 부족과 불확실성 제고 등의 문제가 더해지면서 구조적 장기 침체가 이미 시작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활력을 잃은 한국 경제는 잠재성장률이 2011년 3.8%를 기록한 이후 단 한 차례의 반등 없이 떨어지기만 했는데, OECD 38개 회원국 중 10년 넘게 잠재성장률이 하락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여기에 실질GDP가 잠재GDP에 못 미치는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경제가 퇴행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지난 1일 한은이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GDP갭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GDP갭은 '실질GDP-잠재GDP' 값으로 이 수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특정 해의 실제 생산 수준(실질GDP)이 잠재GDP에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은이 OECD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한국의 연도별 GDP갭율(실질GDP-잠재GDP/잠재GDP)은 △2020년 -2.5% △2021년 -0.6% △2022년 -0.3% △2023년 -1.0% △2024년 -0.4% △2025년 -0.3%로 전례 없는 음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통상 실질GDP와 잠재GDP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양 또는 음의 GDP갭율이 높지 않은 수준에서 유지되는 상황을 이상적으로 보는데, G7국가 중에서도 이 기간 GDP갭율이 반등 없이 마이너스를 유지한 나라는 프랑스뿐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한국 경제의 퇴행이 OECD가 지적한 저출생·고령화의 탓도 있지만 더욱 큰 원인은 혁신 능력 저하와 투자 부진, 노동생산성 악화 등으로 경제 활력이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주력산업의 성장률 하락은 심각한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에 따르면 전자·화학·전기 장비 제조업 등 한국 주력 산업 성장률은 1970년대 19.3%에서 1990년대에 9.6%로, 2010~2022년엔 그 수치가 3.4%까지 뚝 떨어졌다. 20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제조업 가동률은 2010년 80.4%에서 지난해 71.3%까지 하락했다.
신생 기업 수도 감소 추세다. 기업의 소멸과 생성이 계속돼야 산업 생산성이 올라가는데 한국은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약해진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기업생멸행정통계'에 따르면 2000년대 중반 국내 기업 신생률은 18%대였지만, 2022년 13.6%까지 떨어졌다. 신생기업의 수는 99만7,000개로 2년 연속 감소했고 신생기업의 36%는 1년 이상 사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폐업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산업구조의 변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Lilien Indicater)'에서도 한국은 1991~199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위였지만 2014~2018년에는 30위까지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