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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상속' 해외에선 되고 한국에선 안 된다, 국내 제도 정비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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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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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공 참사 유족 SNS 정보 공개 요구
네이버·카카오, 국내 법 미비로 거부
美 디지털 유산 상속 법안 근거로 메타 등 약관 마련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이 희생자의 디지털 계정정보를 요청했지만 국내 기업들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제공을 거부하면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는 법과 플랫폼의 지원을 통해 디지털 유산 접근권을 보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국내 법제화 필요성이 커지는 분위기다.

日, 고인 유튜브 채널도 '상속 재산'

17일 임프레스와치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 부모의 유산 상속 과정에서 소유물을 함부로 처분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재산 조사를 통해 빚의 규모를 완벽히 파악하기 이전에 이러한 행동을 취할 시 '상속 포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유에서다.

최근에는 시대 변화에 따라 수익이 발생하는 고가의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게임 계정, 라인이나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 아이디를 비롯해 스마트폰, PC 등도 디지털 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세다 아쓰시 일본 디지털수명종료협회 변호사는 "핵심은 디지털 유산에 대한 행위가 상속 재산의 처분, 즉 상속 재산의 상태와 성질을 변경하는 행위인가라는 점"이라고 전했다. 스마트폰이나 PC를 폐기해서 작동할 수 없게 만들거나 이미 가입한 서비스에서 탈퇴하는 행동을 유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익을 창출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고, 정산해야 할 수익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산 현황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섣부른 자산 인수는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와 SNS 등 제휴사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계정도 이와 동일하다. 다만 디지털 기기 자체의 정보 검토 행위에는 문제가 없다. 유산의 상태와 성질 변경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정보 보호를 침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 주의가 요구된다. 페이스북 등 일부 소셜미디어(SNS)의 경우 고인이 생전에 지정한 사람에 한해 '추모 계정 관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계정 기능 일부를 인계받고, 부고 소식 및 장례식 관련 정보를 게시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韓은 법제화 지지부진

우리나라의 경우 디지털 유산에 관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령이 없기 때문에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 자체 규정을 통해 디지털 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그간 디지털 유산의 법제화 시도는 꾸준히 있었다. 2010년에는 서비스 제공자가 상속인 요청에 따라 사망자 개인정보 제공 또는 파기, 이용자 사망 전 지정한 자 등이 미니홈피, 블로그 관리에 필요한 조치 요청 등의 관련 법안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2013년에는 디지털 유산을 상속인이 승계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이 역시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만 싸이월드의 경우 자체적으로 상속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약관을 변경한 상태다. 싸이월드는 2019년 서비스가 종료됐다가 3년 만에 일부 서비스를 재개하며 3,200만 회원들의 컨텐츠가 복구됐는데, 당시 싸이월드는 ‘회원의 사망 시 회원이 서비스 내 게시한 게시글의 저작권은 별도의 절차 없이 그 상속인에게 상속된다’고 약관을 개정해 디지털 상속권 보호서비스를 시행했다. 고인이 된 회원의 유족 등 상속인이 이용자의 사망 사실과 상속관계를 증명할 경우 공개설정된 사진과 영상 등 게시물의 저작권을 넘겨준다는 내용이다.

사진=카카오

네이버·카카오, 고인 계정 공개 불가

반면 네이버와 카카오는 프라이버시 정책에 따라 유족일지라도 계정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앞서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대표단은 지인에게 빈소 등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고인이 생전 사용하던 SNS, 이메일 등에 등록된 정보를 유족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지 정부에 요청했지만, 양사는 희생자들의 계정 정보와 비밀번호를 유가족에게 전달할 수 없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계정 비밀번호가 복호화(부호화된 데이터를 알기 쉬운 모양으로 되돌리는 것)할 수 없는 방식으로 암호화돼 회사 차원에서도 이를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계정 아이디와 비밀정보는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일신전속적’ 정보로 유족의 요청이라도 제공할 수 없다는 게 네이버의 설명이다. 카카오 또한 프라이버시 정책에 따라 대화 내역 등이 남아있는 고인의 계정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인의 사생활 정보나 그와 연결된 제3자의 프라이버시까지 침해될 가능성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해외 주요 플랫폼 기업은 디지털 유산 관리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메타는 페이스북 계정을 사망 후 기념 계정으로 전환하거나 삭제하도록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며 구글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를 통해 계정 관리 권한을 사전에 지정할 수 있게 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디지털 유산 기능을 도입해 아이폰 사용자가 가족이나 지인 5명에게 자신의 아이클라우드 데이터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서울여대 김명주 교수는 디지털 유산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확대가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유족을 포함한 소수 지정인들에게 미리 권한 부여를 예약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천안함, 이태원, 제주항공 등 참사 유족들만 그 필요성을 느낄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본인의 죽음 뒤에 자신의 계정과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며 “국내 플랫폼 기업들이 외국 기업들이 제공하는 휴면계정관리자 기능을 넣고, 약관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메일 및 SNS 계정 정보를 단순 개인정보로만 간주하지 말고 디지털 유산과 자산 관리의 관점에서 유족 등 지정인에게 미리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수탁자에게 비밀 유지와 개인정보 보호 의무를 부여하고, 플랫폼 기업이 이를 지원할 약관 수정 및 기술적 구현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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