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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가자지구 장악·강제 이주' 발언에 중동 긴장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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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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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 "美가 가자지구 장악·소유할 것"
220만 팔레스타인 주민은 인근 국가가 수용해야
이란엔 '원유 수출 제로' 등 최대한의 경제 제재
지난 4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진행된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백악관 유튜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를 미국이 직접 장악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황폐해진 가자지구에서 220만 명이 넘는 주민을 주변국으로 이주시키고, 미국이 직접 해당 지역을 지중해 휴양지처럼 재건하겠다는 구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중동 국가들은 즉각 반발했다. 가자지구 주민의 강제 이주는 국제법 위반 소지가 크며 사실상 노골적인 이스라엘 편들기라는 비판이 거세다. 현지 언론들도 일방적이고 과격한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구상이 오히려 더 큰 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미국이 가자지구 복원하고 경제발전 이룰 것"

4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이 가자지구를 장악(take over)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가자지구를 소유(own)하려 한다"며 "그곳에 남아있는 위험한 불발탄과 무기들을 제거하고, 파괴된 건물을 철거한 뒤 지역 주민에게 일자리와 주거를 무한정 공급하는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장기 소유를 통해 중동 전역에 안정을 가져오겠다"며 미군의 주둔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가자지구 주민들을 인근 중동 국가들이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 25일과 26일에는 각각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집트와 요르단이 가자지구 주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이를 강하게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트럼프는 포기하지 않고 4일 기자회견에서 "결국 두 나라를 포함한 다른 국가들도 동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가자지구를 재건하기보다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랜 세월 가자지구에서는 죽음과 파괴가 반복됐다"며 "예전과 같은 세력이 가자지구의 재건을 책임지는 것은 또 다른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폭력과 위협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지역을 찾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며 "적절한 땅을 찾거나 그곳에 충분한 자금을 투입해 정말 멋진 주거지를 건설할 수 있다면 훨씬 나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동 국가·하마스 강하게 반발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그간 미국 정부가 유지해 온 '다자간 협력'과 '역내 안정' 기조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양대 지역인 서안·가자지구를 점령했다. UN(국제연합) 등 국제사회와 미국의 전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창설해 이스라엘과 평화 공존토록 한다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 왔다. 이러한 기조하에 이스라엘과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을 중재해 온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가자지구 주민의 강제 이주에 반대하며 국제사회의 공조를 강조해 왔다.

15개월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으로 가자지구에서는 민간인과 하마스 대원을 포함해 4만6,000여 명이 사망하고 11만 명이 부상을 입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군을 가자지구에 장기 주둔시켜 하마스를 축출한 뒤 가자지구를 직접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주변 아랍 국가는 물론 바이든 전 대통령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측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미국이 중동 질서 재편에 강력하게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급진적인 정책 변화에 대해 이집트와 요르단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아랍연맹 등 중동 주요 국가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국제사회가 특정 집단을 정책적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범죄로 간주하는 만큼 사실상 소수 집단을 말살하는 '인종 청소'라는 비판이다. 가자지구를 '중동의 리비에라'로 조성해 이권을 챙기겠다는 구상 역시 논란을 낳고 있다. 리비에라는 지중해 일대의 대표적 휴양지로, 전쟁 지역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이권을 챙길 경우 국제법상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휴전 협상을 진행 중인 하마스 측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마스 정치국의 사미 아부 주흐리 위원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역내 혼란과 긴장을 조성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며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러한 계획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주민들의 자치권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꼬집으며 "지정학적 판도라의 상자를 사실상 다시 열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팔레스타인 주민과 아랍 국가들의 맹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미국을 중동 지역 분쟁에 더 깊이 끌어들일 방안"이라고 짚었다. 

親이스라엘 행보로 가자지구 '종전' 유도 의도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대로 가자지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미국이 해당 지역의 재개발과 하마스 추방에 개입할 경우 향후 점유가 유력한 집단은 이스라엘이다. 가자지구 재정착은 이스라엘 우파의 줄기찬 요구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나친 친(親)이스라엘 행보는 네타냐후 총리의 운신 폭을 넓혀주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지난달 19일부터 교전을 멈추고 휴전과 인질·수감자 교환 협상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가 2단계(이스라엘군 철수), 3단계(영구 휴전)로 나아가려면 네타냐후 총리가 자국 연정 내 극우 파트너를 달래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이스라엘 행보는 이스라엘의 역내 최대 라이벌인 이란에 대한 압박으로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추진한 이란과의 핵 합의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일방 파기하고 고강도 제재를 복원한 바 있다. 이후 집권 2기에서는 취임과 함께 대이란 압박 수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최대한의 경제 제재를 부과하고 기존 제재 위반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했다.

아울러 미 재무부와 국무부에는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자료를 보면, 이란의 원유 수출액은 2018년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500억 달러(약 72조2,7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각서 서명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원유 수출 차단을 원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며 "이는 이란의 핵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란과 협상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며 이란과의 협상 여지는 남겨놨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궁극적인 목표가 '종전'에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로 그는 집권 1기 시절부터 자신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는 사실을 직접 공개하며 수상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오바마 전 대통령이 취임 1년도 되지 않은 200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과 비교해 자신의 업적이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취임사에서는 '평화 중재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숨기지 않았다. 이를 두고 미국 CBS는 동맹보다 자국 안보를 우선시하겠다는 고립주의 성향 외에 노벨평화상을 바라는 선망이 깔려 있다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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