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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비경제활동인구는 11만 명 이상 줄어 대졸은 팬데믹 시기를 추월하며 역대 최대 韓 '저성장' 국면 진입, 향후 전망도 어두워

대학 졸업 후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올해 상반기 기준 400만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의 비중이 높아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구직활동을 포기한 고학력자 청년층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노무직이나 임시직 등 질 낮은 일자리 중심의 고용 구조가 지속되면서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를 기대하는 대졸자들이 구직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구직 포기하기 전에는 단순노무직·임시직으로 일해
21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졸 이상(전문대 포함) 학력을 가진 비경제활동인구는 월평균 405만8,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만2,000명 증가했다. 1999년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로 상반기 기준 가장 큰 규모다. 비경제활동인구는 15세 이상 인구 중 일을 할 능력이 없거나 일할 수 있음에도 일을 할 뜻이 없어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조건에 맞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나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쉰다'고 답한 경우도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된다.
반면 전체 비경제활동인구는 지난해 상반기 1,627만9,000명에서 올해 상반기 1,616만6,000명으로 11만3,000명 감소했다. 전체 비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대졸 이상은 증가하면서 상반기 대졸자 비중은 25.1%로 늘어났다. 일도 하지 않고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사람 네 명 중 한 명이 대졸 이상 학력 소지자인 셈이다. 특히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20대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었다.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상반기 대졸 이상 청년층(15~29세) 비경제활동인구는 월평균 59만1,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00명 증가했다.
특히 대졸 비경제활동인구의 상당수는 최근 1년 이내 일을 하거나 구직활동을 한 단기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됐다. 이들은 구직시장을 떠나기 전 도소매·사업시설 관리 등 업종에서 일했고, 직업군·종사상지위 기준으로는 사무직·단순노무직·임시직 비중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전문가나 기술이 있는 고학력자는 일자리를 잃어도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지지 않고 구직 시장에 남아 실업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질이 나쁜 일자리에 있던 고학력자일수록 구직을 포기하거나 재교육 등을 위해 구직 활동을 접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성장률 전망 0.8%, 내년에도 1%대에 그칠 듯
청년층의 취업 포기 사례가 늘고 있는 가운데, 하반기에도 경기 침체와 성장률 둔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노동시장에 대한 전망 역시 어두운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29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8%로 낮춰 잡았다. 지난 2월 전망치보다 0.7%포인트 낮은 수치로, 건설경기 침체와 민간소비 회복 지연, 미국 관세 정책의 영향을 반영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한은은 무역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돼 대미 관세율이 상당 폭 인하되더라도 올해 경제성장률은 0.9%에 그치며 1%를 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재명 정부가 편성한 31조87,914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반영하더라도 건설경기 침체의 영향이 워낙 커, 올해 성장률은 0%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 관세 정책의 여파로 수출 부진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내년 성장률 역시 기존 1.8%에서 1.6%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한국의 성장률이 2년 연속 2%에 못 미치는 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54년 이후 한 번도 없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할 필요는 내년에도 계속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상당수 해외 전망 기관들은 한은보다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으로 국내외 주요 전망 기관 41곳 중 절반이 넘는 21곳(51%)이 올해 한국 성장률을 0%대로 예상했다. 이는 한 달 전과 비교해 12곳이 늘어난 수치다. 해외 투자은행(IB) 36곳 중 11곳은 올해 한국 경제가 한은의 전망치(0.8%)보다 낮은 0.3~0.7%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프랑스 3대 은행 중 하나인 소시에테제네랄(SG)은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에서 0.3%로 대폭 낮추며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1954년 통계 집계 이래 한국 경제가 1% 미만으로 성장한 때는 1956년(0.6%), 1980년(-1.6%), 1998년(-5.1%), 2009년(0.8%), 2020년(-0.7%) 등 다섯 번뿐이다. 각각 6·25 전쟁, 2차 오일쇼크,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대형 위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와 같은 대내외 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각 기관이 너도나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대로 끌어내리며 위기 수준의 ‘경기 침체’를 경고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한국 경제가 저성장 터널에 들어섰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건비·노조·규제 삼중고에 해외 나가는 기업 늘어
이처럼 한국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탈이 늘어나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높은 인건비, 경직된 노사관계, 복잡한 규제 등 이른바 '삼중고'를 겪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미국의 관세 압박과 주요국 정부의 파격적인 투자 유인 정책이 맞물리면서 해외 생산기지 다변화와 공급망 재편을 통해 탈출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김상훈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해외로 이전한 국내 기업은 2,816개에 달한 반면,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22개에 불과했다.
해외 진출을 유도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높은 인건비다. 예컨대 2024년 4분기 기준 한국 제조업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515만원으로 인도네시아(악 27만원)와 비교하면 20배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노사관계의 경직성도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한국경제학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노조 가입자 수가 많고 노사 갈등이 심한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해외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혁신 기업의 경우 연구개발(R&D) 인력 운용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해외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문제는 국내 기업의 해외 이전이 국내 산업 공동화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1~2020년 국내 500대 기업 중 매출 규모 상위기업 61.1%가 해외투자를 확대했고 이 기간 국내 제조업 일자리가 49만 개 이상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업종별로는 조선, 반도체 등 일부 분야에서는 국내 투자가 이어지며 고용이 증가했지만, 섬유·의류·봉제 등 전통 제조업 분야와 건설업 등은 내수 위축과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의 영향으로 일자리 감소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