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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5조원규모 스타게이트 일환 데이터센터 부지로 활용 전망 프로젝트 착수 지연 돌파구 모색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이 미국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대만 폭스콘의 전기차 공장을 전격 인수했다. 소프트뱅크가 지난 1월 오픈AI, 오라클과 함께 발표한 미국 내 대규모 인공지능(AI)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Stargate)'에 속도를 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오하이오 공장 3.8만 달러에 매입
1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폭스콘이 지난 3억7,500만 달러(약 5,220억원)에 매각한 오하이오 공장 인수자가 소프트뱅크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번 거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핵심 거점 확보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올해 1월 21일 백악관에서 공식 발표됐다. 당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후 4년간 최대 5,000억 달러(약 695조원)를 투입해 미국 전역에 AI 기반 시설을 건설하겠다”고 천명했다.
이후 소프트뱅크가 폭스콘을 이 프로젝트에 합류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폭스콘의 합류로 AI 지원 장비 투자의 중심이 되겠다는 손 회장의 구상에 힘이 실릴 것"이라고 짚었다. 소프트뱅크는 과거에 인간형 로봇 '페퍼(Pepper)'의 생산을 폭스콘에 위탁한 바 있고, 최근에는 양사가 각각 7억3,500만 달러(약 1조원)씩을 투입해 데이터센터 제조를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는 등 협력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거래 대상이 된 전기차 공장 부지는 앞으로 데이터센터 부지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도 이를 뒷받침한다. WSJ는 소프트뱅크가 추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자금 조달·부지 선정 등에서 차질을 빚으면서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면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의 올해 목표가 연내에 소규모 데이터센터 1곳을 건설하는 수준으로 축소됐다며 첫 데이터센터가 오하이오주에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폭스콘, 아이폰 위탁 업체서 AI 파운드리로
애플의 아이폰을 비롯해 고객의 주문을 받아 위탁생산을 해 오던 폭스콘은 최근 들어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대만 TSMC가 고객 주문에 따라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을 개척하며 이 분야에서 세계 1위가 된 것처럼, 폭스콘은 AI 로봇과 데이터센터, 서버, AI 공장 등 AI 관련 제품과 인프라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AI 파운드리 산업을 본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폭스콘이 꿈꾸는 AI 시대 제조업은 아이폰·로봇·전기차 등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공장 설계부터 운영 및 제조 과정 전반을 AI로 자동화하는 것이다. 지난 5월 아시아 최대 테크 전시회 ‘컴퓨텍스 2025’에서 류양웨이 폭스콘 회장은 “과거에는 실제 공장을 짓고 난 후 시운전을 거쳐야 했지만, 이제는 가상 공간에서 공정을 미리 설계하고 AI로 시뮬레이션해 수천 번 실험을 해본 뒤 최적의 조건으로 공장을 구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공장 운영 단계에서도 AI가 로봇 등과 함께 80% 이상 업무를 처리하고, 고난도 20% 정도의 일만 인간이 집중해 처리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당시 류 회장은 ‘3+3 전략’도 공개했다. 전기차, 디지털 헬스케어, 로봇공학 등 3대 산업과 AI, 반도체, 차세대 통신 기술 등 3대 핵심 기술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TSMC가 반도체 분야 압도적 1위 파운드리라면, 폭스콘은 AI 제조 분야의 최고 파운드리가 되겠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대만 정부 주도 '슈퍼컴퓨터' 프로젝트에도 참여
폭스콘이 현재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사업 분야는 AI 서버다. 2017년 처음 이 사업에 뛰어든 지 8년 만에 주력 사업인 아이폰 위탁 제조 매출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했다고 폭스콘 측은 밝혔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이 폭스콘 서버의 주요 고객으로, 폭스콘은 제조용 로봇, 전기차 분야에도 진출하며 자율 주행 등 첨단 기술을 결합해 AI 분야 제조 역량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폭스콘은 부품 제조·조립 노하우를 살려 엔비디아-TSMC 동맹이 주도하는 AI 반도체 생태계에도 참여하고 있다. 최근엔 폭스콘, 엔비디아, TSMC 그리고 대만 정부가 협력한 대규모 AI 슈퍼컴퓨터 구축 계획을 공식화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대만 수도인 타이베이 북부에 '엔비디아 콘스털레이션'(별자리)이라는 이름으로 신사옥을 짓고 AI 반도체 설계와 로보틱스·양자 컴퓨팅 같은 핵심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소도 설치할 예정이다.
그동안 대만은 TSMC와 폭스콘, 세계 1위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제조사 미디어텍 등 글로벌 ICT 산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 왔다. 이런 가운데 AI 반도체 기술 주도권을 바탕으로 글로벌 AI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엔비디아가 AI 생태계 허브로 대만을 선택하면서 AI 패권 전쟁에서 대만이 경쟁국과 비교해 우위를 점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전문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대만이 TSMC를 중심으로 구축된 시스템반도체 산업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데 새롭게 등장하는 AI 분야에서도 대만의 위상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