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방산업체 될 수도” 일자리 5만 개 증발한 독일 車산업, 군수 산업으로 돌파구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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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車업체에 밀리며 위기 본격화 탈원전·전쟁에 따른 높은 에너지 비용도 부담 반면 유럽 재무장에 방산업계는 특수

독일 경제의 핵심 축인 자동차 산업에서 지난 1년 동안 5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업체들의 약진에 따른 중국 시장 점유율 하락과 폭등한 전기료 부담 등 복합적인 악재가 겹친 탓이다. 이에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방산 진출로 돌파구를 찾는 모습이다.
매출 감소에 일자리 축소
27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글로벌 회계·컨설팅 업체 언스트앤영(EY)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독일 제조업에서 줄어든 일자리가 11만4,000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5만1,500개, 거의 절반은 자동차업계가 떠안은 것으로 집계됐다. 자동차업계 전체 종사자의 약 7%에 해당하는 규모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자동차 산업에서 총 11만2,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EY는 “다른 어떤 산업 부문도 이처럼 큰 고용 감소를 기록한 적이 없다”고 짚었다. 수익성 악화, 생산능력 과잉, 해외 시장 침체가 맞물리면서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다.
우선 수익성 악화를 살펴보면 독일 자동차업계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6% 감소했다. 이는 독일 산업 전체 감소폭(-2.1%)보다는 작지만, 자동차 산업 특유의 ‘견고한 고용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업계를 대표하는 폭스바겐마저 올해 2분기 이익 급감을 보고하며 연간 실적 가이던스 하향 조정했다.

중국 약진·전기료 폭등이 위기 가속
독일 자동차업계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다. 독일 완성차 기업들은 오랫동안 중국과의 치열한 가격·혁신 경쟁 속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격 경쟁력은 물론, 혁신성 측면에서도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빠르게 앞서나가며 시장 점유율을 잠식 중이다. 그간 폭스바겐, 메르세데스 벤츠, BMW 같은 독일 자동차 기업들은 중국 덕을 톡톡히 봤다. 폭스바겐의 2022년 기준 전체 판매량 중 40%를 중국이 차지할 정도로, 약 10년 전(폭스바겐 31%, 벤츠 18%, BMW 14%)과 비교하면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BYD 같은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전기차를 앞세워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는 물론 중국 시장에서의 독일차 지위도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중국에서 많이 팔린 전기차 모델 톱 10에 독일차는 아예 없을 정도다. 독일 자동차업계를 위기에 빠뜨린 BYD는 고작 설립된 지 20년밖에 안 된 신생 업체다. 배터리 전문업체인 모기업(BYD)에 힘입어 전기차에 올인한 결과, 2023년 중국의 터줏대감이던 폭스바겐 판매량을 추월했다. BYD뿐 아니라 니오(NIO), 샤오펑(Xpeng) 같은 중국 업체도 독일차에 위협적 존재가 됐다.
여기에 에너지 비용 폭등도 자동차업계 부진을 가속했다. 독일 정부가 지난 23년간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온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 공급이 막혀 전력 생산 능력을 대거 상실한 것이 에너지 요금 폭등의 핵심 원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0년 ㎿h당 173.4달러에서 2024년 220.1달러로 30% 인상됐다.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60% 이상 높은 수준이다.
“폭스바겐이 방산 업체 될 수도”
돌파구가 절실해진 독일 자동차업계는 자동차 산업 전반에서 방산 진출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먼저 폭스바겐은 독일의 방위산업체 라인메탈과의 공조 가능성을 열여두고 있다. 아민 파페르가 라인메탈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폭스바겐 오스나부르크 공장이 방산 장비 생산에 적합하다"고 언급하며 자동차 생산 시설의 군수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폭스바겐도 해당 공장 활용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다임러트럭은 이미 군용차 시장에 발을 들였다. 메르세데스-벤츠 스페셜트럭 부문을 통해 군용 상용차를 개발 및 생산하고 있고 최근에는 글로벌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품 라인을 확대하고 각 판매처에 대한 서비스 네트워크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은 북미와 인도 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한편 친환경 군용차 생산을 위한 논의도 이어가고 있다.
포르쉐SE는 최근 "자동차 및 산업 기술 투자는 유지하고 방위 분야 참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포르쉐는 인공위성 기반의 감시 및 정찰 시스템, 사이버보안, 군수 물류 등과 관련한 스타트업에 최대 20억 유로(약 3조2,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며 투자 네트워크를 모으기 위한 디펜스데이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업계가 방산에 주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미래 모빌리티 투자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반면 수익은 높지 않지만 방위 산업은 그간 쌓아온 기술력을 토대로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주하는 산업 특성상 경기 변동에 덜 민감하고, 때마침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방비를 크게 늘리고 있다.
최근 실적 흐름도 이 같은 행보와 무관치 않다. 폭스바겐그룹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3% 감소했고 이익률도 줄었다. 다임러트럭도 2025년 2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6% 줄었고, 세전이익 전망치도 23%가량 낮춰 잡았다. 더욱이 관세에 대한 부담이 커지며 수익률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 전문가는 “미래 모빌리티 전환과 중국 부진, 관세 리스크 등이 수익성 악화를 불러온 상황에서 방산은 독일 자동차업계가 생존을 위해 택한 현실적 선택"이라며 "방위 산업 결합은 독일 제조업의 새로운 축이 될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