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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치이고 중동에 쫓기고” 칼날 위에 선 ‘석유화학’, 탈출구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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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onths 3 wee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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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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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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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수출효자였던 석유화학
글로벌 공급과잉 등에 내리막길
'물음표' 붙는 수직 계열화

한국 제조업의 대들보인 석유화학 산업이 고사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중국이 석유화학 설비를 증설하고, 자국 내에서 싼값에 제품을 자급하기 시작하면서다. 우리 경쟁력의 근간이던 저원가 시대는 끝났고, 중국발 과잉 공급은 멈출 기미가 없다. 수년 전부터 시작된 '중국발(發) 경보음'을 무시한 대가다. 과거에도 유가가 치솟으면 석화 산업의 수익성이 떨어져 주기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이번에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중국의 굴기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별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 차원에서 주요 석유화학기업 간 빅딜을 주선하는 등 산업 살리기에 나서고 있지만, 사업을 재편한다고 해도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부문을 합칠 꼴이라 근본적 회생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침체 늪’ 빠진 여수산단

11일 석유화학업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여수 소재 중견·중소기업 재직자와 개인 사업자 등은 최근 여수 석화 산업 불황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고 있다. 여천 NCC와 롯데케미칼 등 대기업이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사이 석유화학과 밀접한 협력 업체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여수시여수산단공동발전협의회에 따르면 여수산단의 수출 실적은 지난해 44조2,980억원으로 2023년(44조7,182억원)보다 4,161억원가량 감소했다.

지역에서 안정적인 직장으로 평가받던 중견 규모 석화 업체도 흔들리고 있다. 여수에 직원 130여 명을 둔 섬남석유화학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1조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해 순이익은 2022년(약 298억원)에 비해 무려 90% 감소했다. 금호석유화학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도 2023년에는 매출 2조2,024억원, 순이익 2,314억원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매출 1조6,653억원, 순이익 87억원에 그쳤다. 석화 회사 폴리미래 역시 최근 3년 동안 48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여수산단의 현주소를 가장 여실히 드러내는 곳은 여천NCC다. 한때 대기업들의 캐시카우로 역할하던 여천NCC는 2022년부터 내리 적자의 늪에 빠졌다. 공동 대주주인 한화그룹과 DL그룹이 지난 3월 각각 1,000억원씩 유상증자 방식으로 지원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지난달에는 3,100억원 상당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부도 위기까지 갔다. 결국 한화와 DL이 1,500억원씩 자금대여를 결정하면서 한숨 돌렸지만, 오히려 부채비율을 높여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석화 기업들도 정도만 다를 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여러 공장이 가동을 멈추는 ‘셧다운 도미노’가 진행 중이다.

호황 안주하다 중국에 밀려 공멸

석화 산업을 위기로 내몬 핵심 원인은 중국발 공급과잉이다. 석화 산업은 업종 전체로 보면 지난해 480억 달러(약 66조6000억원)의 수출을 달성할 정도로 반도체, 자동차, 일반 기계에 이은 한국의 주력 산업이지만, 중국의 저가 공세로 하루아침에 사정이 급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던 기초 소재를 국산화하기 위해 공격적인 설비 증설에 나섰다. 대규모 NCC 증설을 통해 에틸렌 등 기초화학 제품 자급률은 100% 가까이 늘어났다. 지난 10여 년간 중국이 증설한 규모만 한국의 연간 에틸렌 생산 능력(1,270만t)의 두 배를 넘는다. 거대한 중국 시장이 사라져 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 범용 소재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여기엔 업계의 안이한 경영 전략도 한몫했다. 그간 석화업계는 중국 특수에 취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고식적인 기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에틸렌 등 범용화학 제품들은 가격이 싸고, 마진율이 높지 않고, 기술력 격차도 크지 않아 언젠가는 중국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지만,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도 게을리했다. 결국 중국에 자리를 내준 에틸렌 가격은 최근 1년 새 톤당 500달러 이상 떨어질 정도로 하락세가 가파르다. 저유가에 과잉공급이 겹쳐 수출단가도 1년 새 13%나 떨어졌고 수출액 역시 30억 달러대로 10%나 하락했다. 중국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한국 석화업계로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악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동 산유국마저 탈(脫)석유 전략에 드라이브를 걸고 다운스트림 산업 고도화에 나서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는 자국뿐 아니라 한국, 중국에 7개 정유, 석화 공장을 건설 중이며, 에틸렌 생산능력은 중국과 중동을 중심으로 2026~2028년에 4,000만 톤이 늘어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아람코의 자회사인 에쓰오일이 9조원이 투입되는 ‘샤힌 프로젝트(SHAHEEN Project)’를 내년 완공하면, 울산에서 연간 에틸렌 180만 톤이 생산될 예정이다. 기존 기업들은 과잉 생산으로 2022년 이후 에틸렌 신규 증설을 중단했는데, 원가 경쟁력이 뛰어난 정유업체가 석화에까지 뛰어든 것이다.

석화 산업에 대한 위기의식은 지난 2020년대 초부터 확대됐다. 그러나 국제유가와 글로벌 수요에 따라 경기가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면서 업계는 물론 정부도 산업 재편 시기를 놓쳤다. 장치산업인 석화는 고용 유발 효과가 조선·철강·자동차에 비해 낮다는 점도 정부가 구조조정에 느슨했던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석화 산업을 절체절명의 위기로 내몰았다. 한국화학산업협회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을 통해 진행한 컨설팅 용역 결과를 보면 국내 석화 기업의 영업손익과 재무 상황을 고려했을 때 구조조정 없이 현재의 불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3년 뒤에는 국내 석화 기업의 절반 정도만 생존할 것으로 추산된다.

NCC 통합으로 시작된 석유화학 대수술, 경쟁력 회복 요원

이에 정부는 지난달 석화 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후속 대책을 내놓으며 석화 살리기에 나섰다. 다만 정부 입장은 명확하다. ‘무임승차’는 없다는 것이다. 기업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 없이는 정부 지원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석화 산업이 직면한 문제는 명약관화했는데, 국내 석화업계가 그동안 문제를 외면해 왔다”며 “중국 등 글로벌 공급 과잉이 예고됐음에도 국내 석화 업계는 과거 호황에 취해 오히려 설비를 증설했고, 고부가 전환까지 실기하며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작심 비판했다. 그는 “위기 극복 해답은 과잉설비 감축과 근본적 경쟁력 제고”라며 “버티면 된다, 소나기만 피하자는 안이한 인식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절대 극복할 수 없으며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임할 것”을 강조했다.

구조조정 방안으로 거론되는 카드는 정유사와 석화 기업 간 수직적 통합이다. 석화 기업이 원유를 다루는 정유사와 손잡으면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수월하다는 판단이다. 또한 설비 합리화를 통해 NCC 생산능력을 조절할 수 있다. 대산산단에서 롯데케미칼과 HD현대가 NCC 설비를 통합 운영하는 방안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롯데케미칼이 대산단지에 보유한 설비를 HD현대케미칼에 넘기고, HD현대오일뱅크가 현금 혹은 현물을 추가 출자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문제는 대기업 위주로 수십년간 구축된 석화업계의 자율적 통폐합과 인수합병(M&A)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여천NCC 대주주가 신규 투자를 놓고 싸운 것과 같이 그룹사 시너지와 이해 등이 맞물려 상징적인 몇 건의 통폐합 선언은 있을 수 있지만 온전히 자율적인 구조 개편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석화 산업의 골든타임이 이미 지났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기업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추진하더라도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상실한 상황에서는 근본적 처방이 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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