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돌아가는 M&A 시장, 가격 괴리에 줄줄이 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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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M&A 거래건수 급감, 조단위 딜도 실종 매도자는 더 받으려 버티는데 원매자는 난색 HPSP·CJ 바이오 등 빅딜 무산 행렬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이 좀처럼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거래가 예상됐던 대형 매물마저 큰 틀에서 합의를 이룬 후에도 쉽사리 끝을 맺지 못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국내 M&A 시장을 ‘가격을 맞추지 못해 멈춘 시장’으로 평가한다. 국내 경기 둔화와 미국·중국발 거시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임에도 매도자들이 호황기 밸류에이션을 기대해 딜 성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매도·매수자 간 눈높이 괴리 심화
2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탄소섬유 전문기업 HS효성첨단소재는 상반기부터 타이어 스틸코드 사업부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 예비입찰, 6월 본입찰을 거쳤는데 우선협상대상자는 7월 말에야 선정됐다. 당초 JKL파트너스나 스틱인베스먼트가 유력하다는 예측이 있었지만 베인캐피탈이 낙점됐다. 원매자들의 가격 조건이 성에 차지 않아 장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우협 선정 후 석 달이 가까워 오도록 본계약 체결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생각하는 금액차가 수백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에 절충점을 찾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점쳐진다.
폐기물 처리 기업 코엔텍 매각도 더디게 진행 중이다. 6월 말 예비입찰을 진행했는데, 본입찰은 9월 초에 이뤄졌다. 본입찰엔 IMM프라이빗에쿼티, 어펄마캐피탈, 거캐피탈 등이 참여했다. 본입찰 직후 우협이 선정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몸값을 두고 이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매자들은 서로 엇비슷한 가격을 제시했는데 매도자 E&F PE·아이에스동서 컨소시엄이 만족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이에스동서가 아쉬운 상황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가격 괴리로 인해 무산된 딜도 여럿이다. 지난 5월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는 반도체 장비 기업 HPSP의 매각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보유 중인 HPSP 지분 40%를 2조원 이상에 매각할 것을 기대했으나 가격 조건에 부합하는 최종 인수 후보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초 예비입찰 단계에서는 복수의 예비입찰자를 확보했지만, 대부분의 원매자가 써낸 가격이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CJ제일제당이 추진한 5조원 규모의 바이오사업부 역시 예비입찰에 들어온 원매자들과 가격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끝내 철회됐다. 유력 원매자로 꼽혔던 MBK파트너스나 중국계 원매자들 모두 CJ제일제당이 원하는 수준의 몸값을 맞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CJ제일제당의 브라질 농축대두단백 생산 기업인 CJ셀렉타 매각도 최근 무산된 바 있다. 지난 2023년 매각 계약 체결 당시 매각가는 4,800억원이었으나 딜이 완료되지는 못했다.

유동성 위기 시달리는 대기업, M&A보다 사업부 매각 집중
최근 들어서는 눈길을 끌 만한 조 단위 거래도 사실상 실종 상태다. 특히 2020~2022년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10조원), 신세계그룹의 이베이코리아(G마켓) 인수(3조4,400억원), DN그룹의 DN솔루션즈(옛 두산공작기계) 인수(2조4,000억원)와 같은 과감한 베팅은 찾아보기 힘들다. K-뷰티 기업 구다이글로벌이 재무적투자자(FI) 컴퍼니케이파트너스와 함께 서린컴퍼니를 6,000억원에 인수한 건 정도가 대형 딜로 꼽힌다.
삼일PwC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M&A 거래건수는 737건으로 전년 대비 10% 줄었고, 거래금액은 209억 달러(약 30조원)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같은 기간 글로벌 M&A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거래건수는 6% 감소했지만, 50억 달러(약 7조원) 이상 초대형 거래가 늘면서 거래금액이 16%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도 한국만 유독 부진한 흐름이다. 국내 M&A 시장은 선방했던 작년과 비교해도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국내 M&A 거래금액은 전년 대비 30% 급증한 바 있다.
여기엔 몸값 괴리에 더해 대기업이 인수자가 아닌 매도자가 된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발 공세와 미국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업황 악화로 자금 마련이 절실해진 대기업 그룹사는 기업을 인수하려고 하기보다는 계열사·사업부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일례로 SK그룹은 지난해 SK스페셜티(2조7,000억원), SK렌터카(8,200억원), SK피유코어(4,024억원), SK엔펄스 CMP패드 부문(3,410억원) 등을 매각했고, 현재도 SK실트론(3조~4조원), SK에코플랜트 환경 자회사 2곳(2조원), SK아이이테크놀로지(1조원) 등을 추가로 매각하려 하고 있다.
새주인 찾는 대형 매물도 매각 난항 전망
저조한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 시장에서는 현재 나와 있는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 클래시스, KDB생명, 효성화학 사업부 등 조단위 매물들도 연내 매각에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특히 대형 매물일수록 해외 전략적 투자자(SI)나 글로벌 사모펀드(PEF)의 참여를 노리지만, 올해 들어 외국계 자금 유입도 예년보다 크게 줄었다는 평가다.
국내 PEF들의 참여도 예전 같지 않다. 우선 펀딩을 마친 PEF들은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는 충분하지만, 투자와 회수(엑시트)의 선순환이 막힌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공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쌓았으나 엑시트 환경이 악화하면서 기존 자산을 팔지 못한 채 새 투자만 이어가는 포트폴리오 누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3차 자본시장법·상법 개정안이 연내 처리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M&A를 통해 그간 대주주만 이득을 봤던 ‘경영권 프리미엄’을 일반 주주들도 함께 누릴 수 있게 하자는 것인데, 이는 가뜩이나 위축된 M&A 시장을 더 얼어붙게 할 수 있다. 프리미엄이 줄어드는 대주주는 매각할 이유가 줄고, 인수자는 돈을 더 써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사 매물을 사고팔아야 하는 PEF의 고민이 크다. 경영권 지분에 더해 소수 주주 지분까지 공개매수하게 되면 전체 인수 총액이 불어나게 돼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지는 탓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국내 M&A 시장 한파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 PEF 관계자는 “매물은 넘쳐나지만, 매도자와 매수자 간 밸류 이견 문제는 여전한 데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조 단위 딜보다는 비핵심 사업부 매각, 구조조정 성격의 거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거래 여건이 안정되지 못하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긴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임팩트가 부족한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PEF 관계자도 “이제는 단순히 자산의 질이나 사업성보다, 얼마나 현실적인 밸류에이션을 제시하느냐가 딜 성사의 핵심 요건이 됐다”며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대형 거래는 상당 부분 조정과 재협상, 유찰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