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3년간 25조 쏟는 정부, 자립 생태계 빠진 ‘균형발전’ 허상 그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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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자금공급 확대 방안 발표
기업 이전·투자 유인책은 전무
“자립형 생태계 없인 ‘반짝 성장’뿐”

정부가 수도권 쏠림 완화를 위해 향후 3년간 25조원 이상을 추가로 지방에 투입하기로 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주요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지방 자금 공급 규모를 연 120조원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산업계와 시장 전문가들은 “자금 지원만으로는 지방의 구조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놨다. 기업 이전과 인재 순환, 투자 생태계 구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정책효과는 일시적 경기 부양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집중 완화 및 균형발전 목표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전날 부산 남구 부산은행 본점에서 열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방우대 금융 간담회’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수도권 집중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진단하며 “금융도 자금의 수도권 쏠림에 일조한 건 아닌지 냉정히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그는 지방 자금 공급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산업은행, 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4대 정책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지방금융 공급 확대 목표제’를 신설한다. 올해 약 40% 수준인 이들 기관의 지방 공급액 비중을 2028년까지 45%로 끌어올려 연간 지방 자금 공급 규모를 기존 97조원에서 120조원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책금융협의회를 중심으로 각 기관의 목표 달성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정책금융기관들은 지방 이전 기업이나 지역 주력 산업을 대상으로 금리 우대 및 한도 특례를 적용한 전용 대출·보증 상품을 확대하기로 했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는 보증료 일부를 지원하고, 지역 경기 침체로 경영난을 겪는 기업에는 상환유예와 추가 자금 공급을 병행한다. 아울러 ‘지역기업 스케일업펀드’, ‘지역기업펀드’, ‘지역활성화투자펀드’ 등 15조원 규모의 지방전용 펀드 3종 패키지를 신설해 기업 성장 단계별로 맞춤형 투자를 추진한다.
민간 금융권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광주은행-토스뱅크, 전북은행-카카오뱅크, 부산은행-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과 지방은행 간 공동대출 모델을 확대해 지역 자금 공급망을 넓히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협업 대상에 경남은행과 토스뱅크를 추가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며, 대출 범위도 기존 개인신용대출에서 부동산담보·개인사업자 대출로 확장된다. 지방 중소기업 대상 대출의 예대율 규제도 완화되고, 지역 재투자 평가에 따른 인센티브 체계가 강화될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 말미 이 위원장은 “지역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 문제”라며 “정책금융기관이 중심이 되어 자금이 지방으로 흘러가고, 지방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조치가 수도권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지방 경제의 자생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인프라·인력 격차 해소 없으면 효과 제한
산업계에선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을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기업 이전과 투자 유인책이 전무하다는 점에는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자금이 아무리 풀려도 정작 그 돈이 머무를 만한 생태계가 없으면 ‘지방 살리기’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지역 불균형은 이미 구조화된 수준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전체 벤처기업의 40%가 비수도권에 위치하지만, 이들이 받은 실제 투자 비중은 20%에 불과했다.
정책 자금의 편중 현상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 출자금 9조9,000억원을 포함해 총 34조3,000억원을 운용한 모태펀드의 경우, 이 가운데 지방 계정으로 집행된 금액은 1조1,000억원으로 전체의 3.2%에 불과했다. 명목상 ‘지방 계정’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 배분 효과가 거의 없는 셈이다. 업계에서 “지방 펀드라는 간판만 걸어놓은 수준”이란 평가와 함께 “수도권 중심의 네트워크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자금의 순환 경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비판론이 주를 이루는 이유다.
이러한 불균형은 지방 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끊어놓는 원인으로도 작동한다. 수도권 기업들은 투자자 네트워크와 인재풀, 연구개발(R&D) 협력 생태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지만, 지방 기업은 초기 창업 단계부터 투자 연계가 끊긴다.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민간 자금 접근성이 떨어지고, 정부 정책금융의 보완 역할이 절실하지만 실제 지원은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된 탓이다. 지방 기업으로선 성장의 한계를 체감하며 수도권으로 본사를 이전하거나, 외부 자본 유치에 실패해 시장에서 도태되는 악순환에 갇힐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비수도권 전용 ‘지역모펀드’를 조성하고, 강원·경북·부산·충남 등 네 곳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해 자금 집행을 추진한다는 구상이지만, 업계는 단순히 지방에 펀드를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지방 기업의 기업설명회(IR)가 매번 ‘원정 경기’로 그치지 않으려면 정부가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직접 지방에 만들어야 한다”며 “진정한 균형 발전은 돈이 아니라 시장의 구조를 지방에 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지방정부 주도 산업 생태계 구축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방 살리기 정책이 일시적 자금 지원에 머물지 않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이 따르는 구조에서 벗어나, 지방이 스스로 발전 전략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율성이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전광섭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은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선 지방이 앞장서고 중앙이 지원하는 구조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지방정부가 자율성과 책임성을 기반으로 지역 생태계를 조성할 때 비로소 균형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인재·R&D 생태계 구축 없이는 이번 정부 정책이 ‘반짝 성장’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행정·재정 권한과 투자 인프라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지방에 대한 자금 투입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란 판단에서다. 각 시·도가 자체적으로 인재 양성, 생활 인프라, 산업 유치, 연구개발 전략을 설계할 수 있어야만 지방의 중장기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결과적으로 지속 가능한 지방 성장의 핵심은 ‘중앙 주도형 분산정책’이 아닌 ‘지방 자립형 생태계 조성’으로 수렴된다. 이를 위해선 시·도별 지방시대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역 산업·교육·생활 인프라를 종합적으로 설계하고, 중앙정부는 이를 제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단순히 자금을 배분하는 접근을 넘어, 지방이 스스로 성장의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구조적 혁신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정부의 향후 행보에도 많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