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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라밸은 사치” 다카이치가 꺼낸 ‘근면 일본’ 복귀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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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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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재건 논리 전후 세대 중심 공감대
뿌리 깊은 “노동은 미덕” 사회적 인식
경제 재건·국방력 강화→국가 단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심임 총리가 “워라밸은 환상”이라는 발언과 함께 노동 규제 완화, 방위비 증액 등을 잇따라 추진하면서 ‘강한 일본’ 기조를 본격화하고 있다. 노동윤리와 안보의식을 결합한 국가주의 노선이 정치 슬로건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일본 내 보수층은 이를 경제 재건의 상징으로 환영하고 나섰다. 사회당 등 야권에선 국민 부담 증가와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일부 제기되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근면과 안보를 동일선상에 놓는 국가 동원형 리더십을 강화하며 ‘근로를 통한 부강’을 표방하던 시대의 그림자를 되살리려는 모양새다. 

일본 내부 찬반 여론 분분

2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21일 내려진 총리 지시서에는 “심신의 건강 유지와 종업원의 선택을 전제로 다양한 일하는 방식을 뒷받침하는 규칙 정비를 추진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직후 ‘기업개혁 1호’ 과제로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지시하면서 일본 내부에서는 2019년 시행된 ‘시간 외(잔업) 상한제’가 손질 단계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달 초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직후에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말은 잊어야 한다”며 “모두 말처럼 일해야 한다”는 발언을 내놓아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일본이 2015년 덴쓰 광고사 신입사원 과로사 사건 이후 장시간 노동을 제한하는 제도 개혁에 공을 들여 왔기 때문이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일하는 방식 개혁법’은 시간 외 노동을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제한했고, 특별한 사정이 있어도 월 100시간, 연 720시간을 넘지 못하게 규정했다. 아울러 이를 위반할 경우, 형사처벌 또한 가능한 강력한 제재였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이러한 체계가 지나치게 경직돼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 내부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린다. 먼저 노동계는 정부가 수년간 추진해 온 근로환경 개선 노력을 무너뜨릴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과로사 변호단 전국연락회의’의 간사인 가와토 히로시는 “정신력으로 버티던 시대를 부활시키려는 듯한 발언”이라며 총리의 ‘정신주의 회귀’를 꼬집었다. 반면 경영계는 심각한 인력난을 이유로 특정 직군의 재량근로제 확대, 업종별 잔업 상한 차등 적용 등 유연한 제도 운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할 사람이 없다는 현실적 이유가 제도 완화의 명문으로 제시된 셈이다. 

실제 일본의 고령화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압도적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의하면 올해 상반기 기준 종업원 21명 이상 기업 중 70세까지 근무 가능한 기업 비율은 31.9%에 달했다. 또 65~69세 취업률은 50.8%, 70~74세는 33.5%, 75세 이상도 11%를 차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오래, 더 많이 일하자”는 다카이치 총리의 메시지는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가진다. 전후 고도 성장기를 경험한 세대에게 노동은 생존의 수단이자 국가 재건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을 “전후 세대의 근로 윤리와 Z세대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단면”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일본은 왜 다르게 움직일까

일본 사회에서 노동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공동체를 지탱하는 일종의 도덕적 가치로 여겨진다. 전후 세대가 체화한 근면 문화와 기업 중심 사회 구조가 굳건히 유지되면서 일하는 행위가 개인의 자립을 넘어 일종의 ‘국가 기여’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는 다카이치 총리의 워라밸 환상론에 일정 부분 힘을 싣는다. 일본 정부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면서도 전체 고용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고, 기업과 근로자 모두는 ‘조금 덜 벌더라도 다 같이 일하자’는 암묵적 합의에 이르렀다. 이는 곧 워라밸보다 사회 전체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일본식 근로 문화로 이어졌다. 

고용 구조 변화와 관련한 통계는 이 같은 사회적 인식을 수치로 증명한다.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일본 인구는 90만 명 줄었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300만 개, 비정규직 일자리는 200만 개가 늘었다. 반대로 자영업자는 100만 명가량 감소했다. 같은 기간 일본의 실업률은 2%대 중반을 유지했고, 유효구인배율은 1.20을 넘나들었다. 기업들이 장시간 노동 대신 인력을 더 뽑아 업무 강도를 분산하는 전략을 택한 결과다. 과거 “잇쇼켄메이(一生懸命)”란 구호 아래 전개되던 ‘목숨 걸고 일하라’ 문화가 ‘함께 나눠 일한다’는 형태로 변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도 임금보다 고용을 택했다. 1997년 일본 평균 연봉이 정점을 찍은 이후 청년 세대의 초임은 부모 세대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2020년대 이후 30대 이하 청년 실업률은 5% 미만으로 안정됐고, 사회 불안감 또한 크게 줄었다. 여기에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도 늘면서 40대 초반 여성 고용률은 지난해 기준 80.5%를 기록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토양 위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일하고 또 일하라”는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선 ‘일본식 노동관’의 현실적 반영으로 읽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다카이치 사나에 인스타그램

노동과 안보를 한 축으로 묶은 국가주의

다카이치 총리는 이러한 구상을 발판 삼아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 같은 기조는 노동 규제 완화와 근로시간 확대 논의에 이어 안보 영역에서도 전면적 체질 개선을 밀어붙이면서 점점 선명해지는 양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최근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로 올리는 시점을 2년 앞당기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겠단 청사진을 제시했다. 워라밸을 버려야 한다는 발언이 근로 의식 재편을 겨냥했다면, 방위비 증액은 국민 전체의 의무감과 단결심을 결속시키려는 정치적 메시지로 읽힌다.

강한 일본 기조는 정치 구조 재편과도 연결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집권 자민당의 연정 상대를 온건 중도 성향의 공명당에서 보수 색채가 강한 일본유신회로 교체하며 내각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두 당의 합의문에는 △안보 3문서의 조기 개정 △방산 장비 수출 규제 완화 △외국인 규제 강화 등 내용이 포함되며 경제적 자립과 군사력 증강을 병행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방위 전략을 국가 성장 정책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시도로, 국민의 노동 윤리와 애국심을 안보 담론으로 연결하려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일각에선 다카이치 총리의 강경 행보가 사회적 피로도를 높일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당 등 일본 좌파 정당은 “노동 규제 완화와 방위비 증액이 동시에 추진되면 결국 국민의 일상과 재정 부담이 함께 늘어날 것”이라며 “정치자금 스캔들로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자민당이 ‘강한 일본을 만든다’는 상징적 구호에 기대려는 모양새”라고 일갈했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노동과 안보를 한 축으로 묶는 국가주의 노선을 굽히지 않으면서 이 같은 기조를 입법과 예산 정책 전반으로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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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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