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복잡함의 경제학, 기업이 혼란을 이용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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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요금 구조로 소비자 혼란 유도, 경쟁 기능 약화 영국, 불투명한 가격 관행 바로잡는 규제 개편 추진 기준가격 공개와 명확한 조건 제시로 시장 신뢰 회복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영국 규제당국은 2025년 4월까지 기업들이 결제 과정에서 미리 알리지 않은 부가요금을 부과해 소비자에게 연간 약 22억파운드(약 3조8,000억원)의 피해를 입혔다고 추산했다. 이는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가격 비교를 어렵게 만들어 이익을 얻는 시장 구조의 일부다. 이런 방식이 바로 ‘곤혹독점(confusopoly) 가격전략’이다.
곤혹독점은 하나의 가격을 여러 항목으로 쪼개거나, 계약 중간에 요금을 바꾸거나, 품질과 수량을 섞은 묶음 상품을 통해 소비자가 실제 비용을 쉽게 파악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겉으로는 선택지가 다양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평균 가격을 높인다.
과거 영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드러난 불투명한 가격 구조는 오늘날 온라인 결제 환경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상품이 많아질수록 가격은 투명해지지 않고, 오히려 판매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했다. 영국은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 계약 중도 인상과 결제 단계의 숨은 요금을 금지했지만, 복잡한 가격 구조는 여전히 시장 전반에 남아 있다.

곤혹독점의 작동 방식
이 전략은 소비자가 ‘비교하고 있다’라고 믿는 기준과 실제 비용 사이의 차이를 이용한다. 과거 스마트폰 요금제는 단말기 보조금, 데이터 용량, 통화·문자 제한, 초과요금, 위약금이 얽혀 있어 전체 비용을 계산하기 어려웠다. 통신사들은 이런 구조를 활용해 겉보기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더 비싼 요금제를 다수 내놓았다.
소비자들은 불리한 요금을 구별하지 못했고, 그 결과 시장의 가격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런던정경대의 분석에 따르면 2010~2012년 영국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요금제가 늘고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평균 가격이 오히려 상승했다. 요금제가 다양해질수록 가격이 낮아질 것이라는 통념이 깨진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오늘날 온라인 결제 환경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수많은 선택지와 작은 글씨, 결제 직전 단계에서 추가되는 요금이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고, 비교 대신 빠른 결정을 유도한다. 실험 연구들 역시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가격 구조가 복잡할수록 소비자는 더 자주 실수하고, 기업은 그만큼 높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다. 디지털 결제 환경은 이러한 전략의 효과를 한층 강화했다. 복잡성은 다양성의 결과가 아니라, 경쟁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수단이다.
곤혹독점에 맞선 영국의 제도 개편
영국은 최근 2년 동안 곤혹독점 전략을 억제하기 위해 규제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2025년 1월부터 휴대전화, 인터넷, 유료 TV 사업자는 신규 계약에 물가 연동(CPI 연동)이나 비율 기반 인상 조항을 넣을 수 없게 됐다. 앞으로의 인상분은 반드시 파운드와 펜스 단위로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는 고물가 시기 ‘CPI+3.9%’ 식 자동 인상 조항이 중도 요금 폭등을 초래한 데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어 2025년 4월 시행된 디지털 시장, 경쟁 및 소비자법(DMCC)은 온라인 결제 단계에서 총액을 미리 표시하지 않고 마지막에 수수료를 추가하는 ‘분할 요금 표시 관행’을 금지했다. 또 허위 후기나 소비자를 오도하는 판매 행위에 대한 제재도 강화됐다. 두 제도는 각각 통신 계약과 전자상거래 단계에서 나타난 불투명한 요금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규제만으로 복잡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기업은 여전히 소비자의 혼란을 설계할 유인을 갖고 있다.

주: 연도(X축), 인상 비율(Y축)/소비자 물가상승률(연한 빨강), 통신사 가산 인상률(중간 빨강), 실제 소비자 요금 인상 총합(진한 빨강)
디지털 설계의 함정
소비자가 불리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온라인 설계 방식은 이제 세계적 문제로 지적된다. OECD의 2024~2025년 보고서는 대표적 사례로 ▲결제 막판에 숨겨진 요금 추가, ▲자동으로 선택된 옵션 유지, ▲‘지금 결제해야 유리하다’라는 조급 유도 문구, ▲복잡한 해지 절차 등을 꼽았다. 이런 설계는 소비자의 판단을 흐리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수익을 높인다.
영국 소비자단체들은 DMCC 시행 전까지 이러한 방식으로 발생한 소비자 부담이 수십억 파운드에 달했다고 추산했다. 이에 영국의 반독점 규제기관인 경쟁시장청(CMA)은 모든 고정 요금을 표시 가격에 포함하고, 변동 요금은 결제 초기에 명확히 고지하도록 새 지침을 마련했다. 이는 분명한 진전이지만, 동시에 문제의 깊이를 보여준다. 가격 구조의 복잡성이 이미 시장 전반에 뿌리내려 단순한 자율 조정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보험과 고용으로 번지는 곤혹독점
곤혹독점의 전략은 통신이나 온라인 거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보험상품은 복잡한 약관과 추가 금융비용, 갱신 시점의 가격 왜곡을 통해 실제 비용을 숨겨왔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2025년 소매 보험 제도 개편을 통해 이런 구조를 분석하고, 갱신 요금과 신규 요금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했다.
또한 2024년 발표된 상품 가치 평가에서는 자동차 구매 시 차량 가격 차액을 보전해주는 부가보험 등 일부 상품이 실질적으로 낮은 소비자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은 정보량이 방대하고, 소비자는 이를 연례 업무로 처리하기 때문에 복잡성에 특히 취약하다. 세부 조항이 많은 약관과 선택형 부가상품을 기본값처럼 제시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구조는 노동시장에서도 반복된다. 일부 기업은 임금, 근무 시간, 보너스, 경업금지 조항 등 핵심 조건을 여러 문서나 내부 규정에 나눠 제시한다. 근로자는 전체 보상 체계를 명확히 이해하기 어렵고, 교섭력도 떨어진다. 복리후생이나 계약 조건이 입사 안내 자료 곳곳에 흩어져 있을 때, 직원은 자신이 받는 실제 대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복잡한 조건은 고용주에게 여지를 주지만 근로자에게는 불리한 조항을 숨기는 수단이 된다.
스마트폰 요금제가 남긴 교훈
2010~2012년 영국 통신사들은 상품 구성은 그대로 둔 채 요금제 수를 늘리고, 실제로는 더 불리한 조건의 요금제를 시장에 내놨다. 당시 스마트폰 이용이 급증하고 3G 데이터 요금이 주요 비용으로 떠오르면서, 통신 규제기관 오프컴(Ofcom)은 요금제 변화와 결합 요금제 확산, 복합 서비스 증가를 보고했다. 매장에서는 장기 계약과 단말기 보조금이 결합된 상품이 기본 선택으로 제시됐다.
런던정경대 연구진은 이 시기 데이터를 분석해 요금제가 복잡해질수록 평균 가격이 높게 유지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가격이 내려간다는 기존의 시장 논리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 경험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통신 요금 대신 온라인 결제, 보험, 구독 서비스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 복잡성을 이용한 구조는 같다. 결국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소비자가 가격 구조를 스스로 읽어내는 ‘가격 이해력(price literacy)’이다.

주: 시점(X축), 지수- 가격지수, 차별화지수, 혼란지수(Y축)
투명성을 제도화하는 다음 단계
요금의 중도 인상과 숨은 수수료 금지는 출발점이다. 다음 과제는 투명성을 제도 속에 정착시키는 일이다. 규제당국은 통신, 보험, 에너지, 교통 등 정기 요금형 상품에 표준화된 가격 비교표를 의무화해야 한다. 여러 요금이 얽힌 상품이라면 계약기간 전체를 기준으로 계산한 ‘총 유효 월별가격’을 함께 표시해야 한다. 기업들은 이미 내부적으로 이런 계산을 하고 있다. 이를 법으로 외부 공개까지 일관되게 적용하면 경쟁은 소비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뤄진다.
영국 경쟁시장청(CMA)의 2025년 ‘총액 표시’ 지침은 그 출발점이다. 그러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실시간 점검과 위반 시 제재가 병행돼야 한다. 특히 곤혹독점 전략은 화면 속 코드 안에서 작동한다. 결제 단계에서 수수료가 언제 추가되는지, 기본값이 어떻게 설정돼 있는지, 해지 버튼이 얼마나 숨겨져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감독기관은 이용자 흐름 데이터를 확보해 이런 과정을 추적해야 한다. 결제 과정에서 불투명한 요소가 발견되면, 실제 이용자 패널을 통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문제점을 공개하며, 사업자에게 즉시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제도가 실질적인 투명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격 조정 과정에 인공지능이 개입할 때도 감시가 필요하다. 같은 상품이라도 이용자의 검색 기록이나 구매 이력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시스템은 정보에 밝은 사람보다 비교 경험이 적은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채용 공고와 근로계약서에는 기본급, 보너스, 근무 형태에 따른 비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총보상표를 포함해야 한다. 성과 기준이나 보상 정책이 바뀔 때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처럼 변경 내역을 기록하고 알리는 절차가 필요하다. 조건이 지나치게 복잡하다면 직원은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투명성은 호의가 아니라 인재를 지키는 전략이다.
설계된 혼란의 끝에서
혼란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시장 설계다. 영국의 2025년 개혁은 법이 실제 변화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법만으로 명료함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제도의 다음 단계다. 기업이 여러 요금을 하나의 비교값으로 단순화해 공개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투명성이 만들어진다.
스마트폰 시장이 남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불명확한 가격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빠르게 비용을 높인다. 오늘날의 결제 화면은 과거보다 빠르고, 개인화돼 있으며, 그만큼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결국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단순하다. 하나의 기준 가격과 명확한 조건, 투명한 변경 기록이 공통 규범으로 자리 잡을 때, 혼란은 힘을 잃고 시장의 경쟁력은 신뢰와 효율로 돌아올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onfusopoly Pricing Is a Feature, Not a Bug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