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매입 카드 다시 꺼낸 中 인민은행, 통화정책 재조정 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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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회복 신호보다 경기 둔화 우려 확산 20년 만의 매입 실패, 이번엔 다를까 금리 등 정책 포트폴리오 전환 움직임

중국 인민은행이 공개시장을 통한 국채 매입 재개를 선언하며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강화했다. 지난해 말 20년 만의 국채 매입이 환율 불안과 금리 왜곡으로 실패한 전례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금리 인하 등 추가적 조치를 병행하며 보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에 나설 전망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인민은행의 행보를 단순한 유동성 공급을 넘어 디플레이션 완화를 위한 ‘정책 포트폴리오 전환’으로 평가한다.
디플레이션 압력 완화 위한 ‘유동성 방파제’
28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인민은행을 포함한 중국 내 주요 금융 당국 수장들은 전날 베이징에서 열린 ‘2025 금융가 포럼’ 연례회의에서 가상화폐, 주식, 외환, 디지털 위안화 운용, 가계 신용 회복 등 광범위한 금융 현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판궁성 인민은행장은 “현재 채권시장이 전반적으로 양호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한 뒤, 인민은행이 공개시장을 통한 국채 매입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판 행장은 “지원적 통화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 적절히 완화한 통화정책을 실시하겠다”면서 “여러 통화정책 수단을 종합적으로 활용해 단기, 중기, 장기적인 유동성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민은행이 국채 매입 재개 방침을 공식화한 배경에는 채권시장 자체의 단기 변동성보다 더 넓은 거시 환경이 깔려 있다. 최근 중국 채권시장에서는 10년물 국채 금리는 6월 말 이후 약 25bp(1bp=0.01%p) 상승하고 30년물 금리는 2.1%대까지 치솟는 등 장기물 금리가 빠르게 움직였다.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의 장기 조달 비용을 높이고, 그 조달 비용 상승은 재정 지출 압박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민은행의 국채 매입 선언은 금리를 일정 범위에 묶어 두고 정부의 지출 여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이는 다시 디플레이션 압력과도 맞물린다. 최근 중국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민간투자 둔화, 소비 위축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수요가 냉각된 상태다. 인민은행은 통화정책을 적절히 완화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유동성을 주기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단기 자금 공급만으로 금융시장 심리를 진정시키는 수준을 넘어 정부 재정 집행과 금융기관의 신용 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금 흐름을 붙들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결과적으로 인민은행의 이번 국채 매입 선언은 시장 안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수요 부진이 심화되는 국면에서 경제 전반의 하강 속도를 늦추려는 수단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물가·소비 진작 실패, 채권 금리만 급등
중국은 비교적 최근인 지난해 말에도 국채 매입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인민은행의 결정은 2000년대 초 이후 20여 년 만에 재개되는 ‘역사적 조치’로 주목받았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의하면 지난해 10월 열린 중앙금융공작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통화정책 도구상자를 풍부하게 하고, 공개시장 운영을 통해 국채 거래를 점차 늘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인민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은 중국에서 극히 드물었고, 그동안은 지급준비율(RRR) 인하나 재대출과 같은 간접 수단이 통화정책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자 통화·재정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용해 경제활동을 끌어올리겠다는 판단 아래 중앙은행이 직접 나설 필요성 또한 커졌다.
그러나 실행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인민은행은 시 주석의 지시 이후 수개월간 국채 매입을 추진했지만, 유동성이 시장 전반으로 확산되기는커녕 채권 가격만 급등시켰다. 국채 금리가 떨어지고(채권 가격 상승) 위안화 가치는 약세로 돌아서면서 자본 유출 우려 또한 커졌다. 결국 올해 1월 인민은행은 “시장 초과수요가 발생했다”며 공개시장을 통한 국채 매입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국이 국채 금리 급락과 위안화 절하 압력 강화에 불편함을 드러낸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매입 중단은 정책 효과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다양한 논의를 불러왔다. 국채 매입이 경기 부양으로 이어지기는커녕 자산시장 왜곡과 외환 리스크만 키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민은행이 재정의 부족분을 보전하는 ‘재정의 화폐화’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국제 투자자들의 신뢰도 흔들렸다. 시장에서는 “인민은행의 개입이 미국식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로 비춰질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졌고, 중국 지도부 내부적으로도 “과도한 유동성 공급은 오히려 자산 버블을 낳을 수 있다”는 신중론이 부상했다. 당시 쉬안창넝 인민은행 부행장은 “재대출과 신용할당을 조합한 기존 방식이 (유동성 공급에) 더 효과적”이라는 발언으로 중앙은행 내부에서도 국채 매입을 둘러싼 온도차가 존재했음을 보여줬다.

기준금리 인하 병행 가능성
이 같은 이유로 인민은행은 지난해 말 20년 만의 국채 매입 당시에도 표면적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주창하는 동시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채 매입의 재개와 함께 기준금리(LPR) 조정 가능성이 다시 거론되는 분위기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인민은행이 4분기 중 0.10%p의 금리 인하와 0.50%p의 RRR 인하를 병행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4%대 초반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국이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기 위한 복합적 정책 대응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다. SCMP 역시 “정치국 회의 전후로 완화정책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며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를 전했다.
이 같은 전망의 배경에는 장기화한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이 자리한다. 상반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5.3%를 기록했지만, 이는 기저효과에 따른 일시적 반등에 불과했다. 하반기 들어 제조업과 부동산 투자가 다시 둔화하자, 경기 하강 압력은 더 확대됐다. S&P글로벌은 중국의 올해 성장률을 4.6%로 낮춰 잡으며 “디플레이션과 부채 누증이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지방정부 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 중단이 민간 신용 경색으로 번지면서 통화정책만으로는 실물 경기 부양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인민은행이 국채 매입을 통해 장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동시에 금리 인하로 단기 자금 비용을 낮추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의 ‘총수요 절벽’을 완화하기 위해 유동성의 통로를 확장하려는 의도에서다.
정책 조합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시장의 평이 엇갈린다. 국채 매입과 금리 인하가 동시에 작동하면 단기적으로는 자금 순환이 개선될 수 있지만, 위안화 약세와 외국인 자금 유출이라는 부작용이 재현될 가능성도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책은 단기 경기 부양보다 금융 시스템 신뢰 회복이 핵심 목표”라며 “통화·재정 병행의 실험적 조합이 향후 몇 달간 시장의 신뢰도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인민은행의 국채 매입이 자산시장 안정과 내수 회복으로 이어질지, 혹은 또다시 금리 하락과 환율 불안의 악순환으로 이어질지는 중국 통화당국이 가장 민감하게 지켜볼 대목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