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석유 부국의 몰락”, 베네수엘라 ‘초인플레’ 현실화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남미 부국에서 10년 만에 최빈국으로
마두로 '점진적 퇴진안' 미국 반대에 무산
무력 충돌 임계점, 사태 확산 우려 커져

베네수엘라 경제가 최근 10년 사이 완전한 붕괴 단계에 접어들었다. 석유 의존 구조와 정권 부패, 미국 제재가 맞물리며 국가 재정은 파탄 났고, 그 결과 올해 물가상승률은 최대 600%에 이를 전망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외환 확보를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추진 중이지만, 휴지 조각이 된 현지 화폐 가치와 치솟는 인플레이션은 좀처럼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은 일제히 베네수엘라의 역성장을 점치며 ‘자원의 저주’가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석유 의존 구조와 부패로 국가 기능 마비

27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 세계 경제학자 중 상당수는 올해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이 약 12배 이상 폭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내년 성장률이 마이너스 3%대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베네수엘라 경제학자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교수는 “경제를 무너뜨려도 정권이 바뀌지 않는 나라가 베네수엘라”라며 “경제가 가난해질수록 정부는 오히려 더 강해진다”고 지적했다. 해당 발언은 정권 유지를 위한 포퓰리즘이 베네수엘라 경제 기반을 완전히 붕괴시켰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연간 물가상승률이 600%를 넘어설 것이란 관측이 이 같은 비판에 무게를 싣는다. IMF가 집계한 베네수엘라의 지난 10년간 누적 인플레이션은 6만%를 상회하며, 이 과정에서 통화 가치는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석유 수출로 유지되던 외환 공급이 제재와 부패로 차단되면서 통화정책이 작동하지 않자, 화폐 ‘볼리바르’가 하루에도 수차례 가치가 달라지는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아울러 2012년 1만2,700달러(약 1,800만원)에 달했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020년 1,600달러(약 230만원)까지 88%가량 주저앉았다. 

이 같은 경제 기반의 붕괴는 국민 생활을 파괴했다. 2018년 기준 물가상승률이 6만5,000%를 기록하며 베네수엘라 국민 평균 체중이 2년 사이 19㎏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같은 기간 가구 월평균 소득은 250달러(약 36만원)로 기본 식료품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 못했으며, 공공요금 인상과 전력난, 의료품 부족 등이 이어지면서 전체 인구의 30%에 달하는 770만여 명이 국외로 탈출했다. 이 때문에 콜롬비아와의 국경지대에서는 가족 단위 이주 행렬을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아동이나 청소년이 생계를 위해 거리에서 구걸하거나 성매매에 내몰리는 사례까지 보고되는 실정이다.

베네수엘라의 몰락은 석유 의존 경제가 어떻게 자원 저주(resource curse)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위시한 현 정부는 국영 석유 기업 PDVSA의 수익을 무차별적 복지정책 재원으로 전용하면서도 산업 다각화나 인프라 투자는 방치했다. 그 결과 석유 생산 설비는 마비되고, 수출량 또한 2013년 대비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한때 남미의 대표적 부국으로 불리던 베네수엘라가 오늘날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식량난, 난민 사태의 상징으로 남게 된 배경이다.

미국 “민주·인권 회복 없는 합의 불가”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미국도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의 장기 독재 정권을 ‘마약 카르텔 정권’으로 규정하며 외교·경제·군사 전방위 압박을 강화했다. AP통신 보도에 의하면 마두로 정권은 이러한 압박을 완화하기 위해 미국 측에 ‘점진적 퇴진안’을 제시했으나, 백악관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베네수엘라가 제시한 퇴진안에는 마두로 대통령이 3년 내 권력을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에게 이양하고, 이후 정치적 면책을 보장받는 조건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정권 보장 없는 완전한 권력 이양”만을 협상의 전제로 고수하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베네수엘라의 제안은 사실상 시간 벌기용에 가깝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 안팎의 군부 엘리트층과 PDVSA 관계자들이 정권 붕괴 시 입게 될 제재 위험을 피하기 위해 퇴진 시점을 늦추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마두로 대통령이 실질적 권력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다는 판단 아래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과 국영 석유기업 거래를 전면 차단하는 2차 제재를 발동했다. 이에 따라 PDVSA의 해외 송금망과 달러 결제 계좌가 동시에 봉쇄되면서 마두로 정권의 외화 유입이 급감했고, 외환보유액은 한 달 새 20% 이상 감소했다.

이 같은 흐름은 베네수엘라의 국제적 고립을 가속화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퇴진설을 가짜 뉴스라고 일축하며 “미국이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이미 국내외 자금줄이 막힌 정권의 통치 기반은 급속히 약화하는 형국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인권탄압 및 부패 혐의로 마두로 정부 관계자 수십 명의 자산을 동결했고, 미국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량의 70%를 차지하던 주요 수입선에도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이처럼 정치적 출구 협상이 무산된 상황에서 마두로 정권은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양상을 보이며 오히려 경제난과 사회 불안의 악순환을 심화시키는 상황이다. 

군사 긴장 고조, ‘지상 작전’ 가능성도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적 압박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이며 실질적 개입을 예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3일 미 텍사스 다이스 공군기지에서 B-1 랜서 전략폭격기 2대가 출격해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해 상공을 비행했다. 폭탄 탑재량이 최대 34톤(t)에 달하는 초음속 폭격기의 출격은 명백한 무력 시위이자, 언제든 지상 작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여러 이유로 베네수엘라에 만족하지 않는다”며 작전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미 해군은 지난 8월에도 카리브해 인근에서 베네수엘라 해상 운송선을 잇따라 격침했고, 9월에는 B-52 폭격기와 F-35B 전투기를 동원한 합동 훈련을 실시했다. 미 국방부는 이를 “공격 시연(exercise of assault)”이라 명시했다. 더 이상의 선전포고는 무의미하며, 곧 이어질 지상 작전에서 마약 밀입국자는 현장 사살한다는 경고 또한 이어졌다. 미국 내에서는 이러한 작전의 법적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상황에서 견제 가능성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마두로 정권은 미국에 맞서 전시 체제를 가동하며 ‘결사 항전’을 선언했다. 지난 8월 민병대 450만 명을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린 그는 이달 22일 “러시아산 휴대용 대공 미사일 ‘이글라(IGLA)-S’ 5,000발을 전국 방공 거점에 배치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내부 통제도 강화했다.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의 보도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군부에 “국민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실시간 신고할 수 있는 휴대전화 앱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겉으로 ‘민중 정보망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정권의 위기를 감시 사회로 억누르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