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택시부터 배터리까지, 중국 하드테크 자금 홍콩에 집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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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 자금 조달로 기술 경쟁력 확충 의도
기술·제조 스타트업 중심 자금 유입 구조
상장 러시 뒤 드리운 규제 그림자

중국 자율주행·전장·배터리 기업들이 앞다퉈 홍콩 증시에 상장을 추진하면서 홍콩이 중국 기술주의 사실상 ‘해외 본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닝더스다이(CATL), 항서제약 등 본토 대기업부터 포니닷에이아이(Pony.ai)와 위라이드(WeRide) 등 자율주행 스타트업들까지 홍콩 IPO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이 본토 자본시장 특유의 폐쇄성을 극복하려는 시도 속 홍콩이 해외 자본 유입의 핵심 우회 통로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실증 장려 정책이 기술 상용화 앞당겨
28일(현지시각) 닛케이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최근 중국에서는 로보택시 기업 포니닷에이아이와 위라이드, 지능형 자동차 부품사 닝보조이슨일렉트로닉(Ningbo Joyson Electronic)이 일제히 홍콩 증시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세 곳 모두 오는 11월 6일 거래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예상 조달 금액은 18억 달러(약 2조5,000억원)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는 화웨이와 협력 중인 세레스그룹이 27일 발표한 17억 달러(약 2조3,800억원) 규모의 홍콩 IPO 계획을 잇는 대형 공모 사례로, 중국 자율주행 및 전장 부문 전반의 자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기업 가운데 포니닷에이아이와 위라이드는 홍콩과 미국 나스닥 이중 상장을 통해 기술 신뢰성과 자본 유입 두 마리 토끼를 노린다는 구상이다. 포니닷에이아이는 신주 4,200만 주를 주당 최대 180홍콩달러(약 26달러·3만2,000원)에 발행해 최대 9억6,800만 달러(약 1조3,000억원)를, 위라이드는 8천8,000만 주를 주당 최대 35홍콩달러(약 4.5달러·6,400원)에 발행해 3억8,000만 달러(약 5,400억원)를 각각 조달할 예정이다. 포니닷에이아이는 조달 자금의 절반을 레벨4(고도 자율주행) 상용화 프로젝트에, 나머지를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이러한 중국 자율주행 기업들의 상장 러시가 기술 우위 확보 경쟁의 연장선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정부 주도의 인프라와 도시별 규제 샌드박스 제도 덕분에 미국·유럽 등 주요국보다 현장 데이터가 빠르게 축적되고, 이 같은 특징이 IPO 시장에서 기술 신뢰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에서는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선전 등 1선 도시 대다수가 레벨4 실증 운행을 공식 허가했고, 로보택시의 도심 주행 누적 거리는 1억km를 넘어선 상태다. 이처럼 실도로 주행과 데이터 검증이 병행되면서 중국 내 자율주행 기술의 상업화 속도 또한 매우 빠르게 전개됐다는 게 업계 전반의 시각이다.
기업들도 IPO를 통한 글로벌화 야심을 숨기지 않는 모양새다. 이는 상장을 위한 주관사 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포니닷에이아이는 골드만삭스·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이체방크·화타이인터내셔널을 공동 주관사로 선임했고, 위라이드는 CICC·모건스탠리·JP모건을 내세웠다. 이 같이 서구계와 중국계 투자은행(IB)이 동시에 참여하는 구조는 향후 자율주행 기술의 국제 협력 및 해외 사업 확장 기반을 닦으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읽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 중국의 기술 기업 IPO가 인터넷이나 콘텐츠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실물 기술 기반의 ‘하드테크’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IPO 1위 오른 홍콩거래소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대다수 기업이 본토가 아닌 홍콩을 주요 자금 조달 창구로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홍콩을 중국은 홍콩을 ‘역외(오프쇼어) 금융 허브’로 관리하면서, 이를 통해 외부 자본이 들어와 자국 기업으로 흘러가도록 통로를 열어두고 있다. 본토 상장(A주)과 달리 홍콩은 외국 기관투자자 자금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안보 및 회계 투명성 심사 등을 이유로 미국에 진출하기 어려운 기업들도 큰 제약 없이 상장을 추진할 수 있다.
각종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회계법인 KPMG의 집계에서 올 상반기 전 세계 IPO 조달 규모는 전년 대비 약 9% 늘어난 609억 달러(약 87조원)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홍콩거래소가 139억 달러(약 19조9,000억원)를 흡수하며 글로벌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나스닥은 92억 달러(약 13조1,000억원), 뉴욕증권거래소는 78억 달러(약 11조1,000억원)에 그쳤다. 홍콩이 단순히 ‘중국계 상장도 받는 거래소’를 넘어 글로벌 최대 신규 자금이 모이는 1순위 상장지로 올라섰다는 의미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건 단연 중국 기업들이다. 상위 세 개 딜만 봐도 모두 중국 본토 기업이다. 지난 5월 상장한 CATL은 홍콩 상장으로만 410억 홍콩달러(약 52억7,000만 달러·7조5,000억원)를 조달하며 글로벌 IPO 단일 딜 1위 기록을 세웠고, 항서제약은 114억 홍콩달러(약 14억7,000만 달러·2조1,000억원), 하이티엔은 101억 홍콩달러(약 13억 달러·1조9,000억원)를 각각 끌어왔다. 배터리, 바이오테크, 식품·소비 등 실물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 기업은 단순 소프트웨어 기업의 추상적인 스토리텔링이 아닌 생산능력과 공급망, 제조 원가 경쟁력을 앞세워 투자자들에게 어필했다.
이 같은 구조가 가능해진 데는 당국의 정책 설계가 주효했다. 홍콩거래소는 지난 2023년 상장 규정 ‘18C’ 챕터를 신설해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한 테크 기업도 상장할 수 있는 특례를 만들었다. 또 올해 5월에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전자장치 등 기술 기업을 위한 전용 라인을 따로 열고 비공개(pre-IPO) 신청까지 허용했다. 중국 본토에서는 민감하게 볼 수 있는 AI·반도체·자율주행 기술 기업들이 홍콩에서는 상대적으로 규제를 덜 받는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준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홍콩거래소 상장 대기 기업은 220개 수준으로 쌓여 있으며, 글로벌 회계·컨설팅 법인 언스트앤영(EY)은 홍콩의 올해 IPO 조달 규모가 2,000억 홍콩달러(약 257억 달러·36조원)를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 ‘속도 조절’ 신호
다만 이러한 장밋빛 전망이 그대로 현실화될지는 미지수다. 중국 당국이 과열 신호를 우려하며 홍콩행 IPO 속도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은 그간 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를 통해 본토 기업의 홍콩 및 기타 역외 시장 상장에 대해 사실상 ‘사전 승인권’을 행사해 왔는데, 최근 이 흐름이 급격히 둔화됐다. CSRC 자료에 의하면 지난 7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홍콩에서 추진된 신규 공모 가운데 본토의 공식 승인을 받은 것은 단 3건에 그쳤다. 이는 올해 상반기 총 70개 기업이 해외 상장을 허가받았던 것과 뚜렷하게 달라진 풍경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CSRC의 태도 변화를 두고 일종의 ‘품질 관리’ 의도라는 해석을 내놨다. 프랑스 IB 나틱시스의 게리 응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올라오는 상장 후보들 상당수가 지배구조상 특정 주주에게 소유권이 과도하게 집중된 구조를 보인다”면서 “그만큼 투기적 매매·차익거래 여지 또한 커졌다”고 짚었다. 당국으로선 실물 사업 역량이나 지속가능 수익 모델보다 ‘상장 그 자체’가 투자상품처럼 소비되는 흐름을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응 이코노미스트의 표현대로라면 작금의 분위기는 상장의 ‘양보다 질’을 우선하는 움직임에 가깝다.
미국 IB 제프리스 역시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CSRC가 다시 본토 A주 시장 쪽 IPO 심사와 자금 조달 속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홍콩을 통해 해외 자본을 빨아들이는 창구를 완전히 닫을 생각은 없지만, 그 창구의 개방 폭과 타이밍은 직접 조절하고 있단 설명이다. 이는 곧 략 산업에 대한 통제 유지, 본토 자본시장 활성화, 투기성 IPO 차단 등 중국 정부의 정책 우선 순위에 따라 앞으로도 적극 관여하겠단 신호로 읽힌다. 이 같은 한계는 홍콩발 상장 러시가 일회성 이벤트가 될지, 아니면 장기적 흐름으로 이어질지를 가르는 가장 직접적인 리스크로 지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