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제한 논의, ‘노동권 보호’ 넘어 자동화 전환 방아쇠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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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편의·노동 규제 사이 줄다리기
정부·정치권도 제도 개선 방향 논의
드론 등 비인간 배송 확대 가능성

전국택배노조가 심야 배송 금지를 포함한 새벽배송 전면 중단안을 제시하며 사회적 논란에 불을 붙였다. 정부와 국회 또한 택배노동자의 과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인 가운데, 유통업계에선 소비자 편익과 혁신 산업의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놨다. 나아가 일각에선 노동시간 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질 경우, 인력 공백을 메우려는 자동화가 더욱 가속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온다.
새벽배송 모델이 가져온 유통 혁신
29일 정부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조는 지난 22일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 회의를 열고 쿠팡과 컬리 등 국내 전자상거래(e커머스) 업체가 주문 다음 날 새벽까지 상품을 가져다주는 새벽배송 서비스를 전면 금지하자는 내용의 택배 기사 과로 개선 방안을 내놨다. 오전 0시부터 오전 5시까지 심야 배송 자체를 금지하고, 오전 5시 출근 조와 오후 3시 출근 조로 근무조를 이원화해 주간 시간대에 한해서만 배송하도록 강제하자는 구체안도 함께 제시했다. 택배노조 측은 이를 “과로사 예방을 위한 필수 안전조치”라고 규정하며 사실상 새벽배송 서비스 모델 자체를 노동시간 규제 차원에서 중단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러한 요구는 전국배송망을 24시간 단위로 회전시키는 현재의 ‘라스트마일’ 구조를 전면 재설계하라는 의도로 읽힌다. 현행 새벽배송은 주문 마감 후 밤 사이 선별·피킹·패킹·밀크런(허브→거점)까지 모두 끝낸 뒤, 자정 이후부터 이른 새벽 사이 최종 배송까지 완료하는 방식이다. 택배노조는 이 과정이 주 7일 근무, 심야 연속 노동, 반복 배송(하루 2~3차례 추가 투입)으로 이어지고, 모든 부담이 기사 개개인에게 전가된다고 꼬집었다. 주 60시간 상한과 분류 작업의 외주화(기사 강제 전가 금지) 등을 담은 1·2차 사회적 합의 이후에도 야간·심야 배송 영역에서는 여전히 사망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통업계와 소비자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택배노조가 택배 근로자들의 과로 방지를 명분으로 사실상 특정 사업 모델을 금지하는 수준에 가깝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전국 단위 콜드체인 물류센터와 자동 분류 설비, 라스트마일 전용 인력 등 새벽배송 전용 인프라에 많게는 조 단위 자금을 집행해 온 e커머스 업체들은 심야 배송 금지가 사업 중단과 비슷한 수준의 조치라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특히 컬리의 경우, 신선 농수산물의 약 40%를 산지 직거래 방식으로 들여와 새벽에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구조인데, 이 흐름이 끊기면 산지 농가·도매 협력사·소상공인까지 매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시장의 반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새벽배송은 단순히 ‘심야에 도착하는 택배’를 넘어 국내 e커머스 경쟁 구도를 바꾼 핵심 서비스로 취급돼 왔다. 쿠팡이 2014년 ‘로켓배송(익일·새벽 배송)’ 모델을 도입하면서 온라인 쇼핑의 기준이 3~4일 내 도착에서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으로 재설정됐고, 컬리(샛별배송) 같은 전문 플레이어가 합류하면서 신선식품과 유아용품, 화장품, 가전까지 품목 범위 자체가 넓어졌다. 교보증권에 의하면 국내 새벽배송 시장은 2018년 5,000억원 규모에서 2023년 11조9,000억원대로 커졌고, 올해는 15조원 안팎을 기록할 전망이다.
국회로 번진 야간노동 논의
국회에서도 지난 7월 같은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전국택배노동조합,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진보당 쿠팡과로사대책위, 국회노동포럼 등이 공동 주최하고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등 정부 실무 관계자들도 배석한 당시 토론회는 ‘택배 무한속도경쟁,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새벽배송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이냐가 산업정책 의제로 국회 테이블에 올라온 셈이다.
토론회에선 속도 경쟁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김광창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쿠팡이 만든 새벽배송 경쟁이 업계 전반으로 번졌고, 그 과정에서 택배노동자의 휴식권·건강권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이 급증하던 시기에 택배노동자 과로사 26건이 사회적 공분을 불러왔다”면서 “이후 표준계약서 도입을 비롯한 많은 제도가 만들어졌는데, 아직 정리하지 못한 주 7일 배송과 심야 배송이 다시 과로와 사망을 낳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제도 공백으로 규정했다. 김성혁 민주노동연구원장은 “생활물류산업은 디지털 소비와 결합하며 규모와 속도가 폭발적으로 커졌는데, 여전히 제도는 과거의 ‘운송업’ 프레임에 묶여 있다”고 짚었다. 물류 기사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 적정 노동시간과 배송시간의 법적 기준 부재, 주 7일·심야 구조로 외주화·위탁화가 반복되는 고용형태 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업계에 만연한 과로와 산업재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관련 사안을 더 이상 민간 자율 영역에 둘 수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박종일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기준과장은 “생활물류법에 따라 건강권 보호 방안을 지속 추진 중이며, 필요한 경우 법정까지 포함해 제도 개선 논의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2차 사회적 합의가 분류 전담 인력 도입과 주 최대 노동시간 규정 등 현장의 일부 관행을 고쳤다면, 이번 3차 합의 논의는 아예 속도 자체를 규제 가능한 대상으로 가져오려 한다는 점에서 작지 않은 파급력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자동화 향하는 물류 산업
일각에서는 새벽배송의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냉정한 시각도 제기된다. 과거 최저임금 인상기마다 음식점·카페·편의점 등 소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키오스크와 무인 계산대 도입이 급증했던 전례를 되짚어 보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노동 규제는 자칫 노동 소외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택배 및 유통 산업에서 심야 배송 전면 금지나 주 7일 배송 제한이 시행될 경우,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규모 자동화 투자와 로봇·드론 기반 배송 확대가 가속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 또한 같은 맥락이다.
아마존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아마존은 이달 28일(현지시각)부터 최대 3만 명의 본사 인력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인사·클라우드 컴퓨팅·광고 등 주요 부서에 걸친 구조조정으로, 팬데믹 기간 과잉 채용된 인력을 줄이는 동시에 AI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비용 절감 조치로 풀이된다. 이 외에도 아마존은 이미 미국 전역의 물류센터에서 AI 기반 물류 로봇 ‘프로테우스(Proteus)’와 자동 피킹 시스템을 투입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단순 반복 업의 상당수를 기계로 대체하고 있다.
이처럼 ‘고용 없는 성장’은 산업계 전반에서 포착된다. 올해 초 월마트는 매출 증가와 상관없이 향후 3년간 직원 수를 현행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했으며, 골드만삭스는 “AI 도입으로 효율성이 향상되는 직무는 추가 채용 없이 축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술 도입이 촉진하는 기업의 정원 축소”로 규정하며 택배·물류 부문에서도 노동자의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자동화 전환이 머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산업 현장은 이미 기술 전환의 임계점에 다다른 상태며, 향후 새벽배송 중단 논의는 노동정책을 넘어 기술정책의 문제로 확장될 것이란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