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정상회담' 민생·경제는 진전, 한한령 해제는 제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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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FTA 2단계 진전 속도 내기로 실버경제·혁신창업·수출검역 등 민생 분야 한한령 완화 문제는 원론적 입장 확인만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지난 주말 첫 정상회담을 열고 한중 관계 복원을 모색했다. 관계 복원의 핵심 고리는 경제 협력 확대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에 속도를 내고 공급망 안정화에 협력하기로 했다. 다만 한한령 해제 등은 테이블 위에도 오르지 못하며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이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를 넘어 체제 결속과 자국 산업 육성을 노리는 중국의 '유치산업보호론'에 기반한 것으로 분석된다.
FTA 서비스·투자협상 속도
3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은 1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해각서(MOU) 6건과 계약서 1건의 교환식을 진행했다. 양국은 우선 ‘보이스피싱·온라인 사기 범죄 대응 공조 MOU’를 맺었다. 이는 양국 경찰이 초국가 스캠(사기) 범죄에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기반이 될 전망이다. 최근 캄보디아 등에서 온라인 스캠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한국인이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범죄 활동에 중국계 조직이 관여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데, 중국 역시 해당 문제를 심각하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은 또 ‘서비스 무역 교류·협력 강화 MOU’를 체결했다. 한중 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실질적인 진전을 통한 경제 협력의 제도적 기반 마련을 뒷받침하기 위함이다. 양국은 2015년 FTA 체결을 통해 상품 교역 분야를 개방한 뒤, 2017년부터 서비스·투자·문화·금융서비스 등까지 확대하는 FTA 2단계를 논의하고 있다.
양국은 이어 ‘실버경제 분야 MOU’, ‘혁신창업 파트너십 프로그램 공동추진 협력 MOU’와 단감 등 생과일 수출 시 따라야 하는 검역 요건에 합의한 ‘한국산 감 생과실의 중국 수출 식물검역 요건 MOU’도 교환했다. 대통령실은 “양국 국민의 민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중은 호혜적 협력 추진을 위한 장기적 방향을 설정하는 ‘한중 경제협력 공동계획(2026~2030) MOU’에도 합의했다.
아울러 양국 중앙은행 간에 5년 만기 70조원(약 4,000억 위안) 규모의 ‘원·위안 통화스와프 계약서’도 교환했다. 양국은 2009년 처음으로 1,800억 위안(약 36조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고,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때 3,600억 위안(약 72조원)으로 확대했다. 2020년에 5년 만기 4,000억 위안에 합의했고, 이번에 이를 연장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양국 금융·외환시장의 안정과 교역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한령 해제는 진전 없어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민생·경제 분야에서는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양국 간 활발한 문화·경제 교류를 발목 잡는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 조치) 해제 결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지난달 여당을 중심으로 중국 정부가 한한fud을 해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국은 2016년 주한 미군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며 중국 내 한국 드라마 방영, 한국 가수의 상업 공연 등을 사실상 불허해 왔다.
한중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10월, 한국이 사드 참여,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3불(不) 입장을 표명하고, 양국 정부 명의로 “모든 분야의 교류 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후 한국 단체여행 상품 판매 등은 재개됐지만 여전히 중국 내 한국 가수 대형 콘서트, 한국 영화와 드라마 방송 등은 제한돼 있다. 올해도 중국에서 한국 가수 콘서트가 추진됐다가 막판에 취소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일 이 대통령, 시 주석,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장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북경에서 대규모 공연을 하자는 제안에 호응해 시 주석이 왕이 외교부장을 불러 지시하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한한령 해제를 넘어 본격적인 K-문화의 중국 진출의 문이 열리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커졌지만, 정상회담에서 중국 측은 한한령 해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치산업보호론’에 기반한 전략적 봉쇄
외교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한령을 해제하지 않는 이유를 자국 산업 전략에서 찾는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량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 콘텐츠의 진입을 억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더해 ‘중국적 정체성’과 ‘사회주의적 특색’을 내세운 산업 육성 정책도 한한령 해제를 가로막는 요소다. 중국에선 지난 2012년부터 시진핑-리커창 체제가 표방한 문화 산업 정책이 작동하고 있었다. 중국의 문화적 정체성과 사회주의 특색에 관해 문화 산업을 육성하는 기조를 정립한 것이 골자다. 중국에 있어 문화 산업은 수출이 아니라 내수용이었다. 중국 정부는 체제 결속과 확립을 위해 중국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콘텐츠 육성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콘텐츠는 그 반대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K팝은 개인의 자유와 꿈, 행복을 노래하는데 이 같은 공연에 중국 젊은이들이 운집하는 게 중국당국에는 심기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권의 아티스트도 마찬가지다. 문화 규제 당국인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은 물론, 각 지방정부에서 언제든 공연 취소나 불허를 통보해도 대응할 방법이 없다. "우수 콘텐츠는 허가를 하겠다"는 중국 당국의 발표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2017년 사드 사태 이전에도 중국은 한국 콘텐츠를 점진적으로 규제해 왔다"며 "설령 사드가 철거돼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문화 산업 정책의 기조가 작동하고 있으므로 항상 상황이 돌발적이고 유동적"이라며 "중국은 콘텐츠 기업이나 팬의 입장과 당국의 입장이 매우 다르다. 민간은 언제라도 한국 콘텐츠를 들여오려 하겠지만, 중국 당국의 의사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