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중국 위반” 中 반발 속 반일 여론 겹치며 중·일 갈등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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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의 접촉, 외교적 도발로 규정 APEC 도중 ‘웃음기 없는 정상외교’ 대중문화 매개로 반일·혐일 여론 고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 대만 대표단과 접촉한 일을 두고 중국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중국 외교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한 행위”라며 강하게 항의했고, 일본은 비공식 회동인 만큼 확대 해석은 말아 달라는 입장으로 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일 양국의 정상 회담이 각자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30분 만에 종료된 가운데, 정치적 신뢰 회복 또한 요원해지는 상황이다.
외무성 채널 통해 일본 측에 항의
3일 외교계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일본 지도자가 APEC 회의 기간 중국 대만 당국 인사와 회동을 고집하고, 소셜미디어(SNS)에 공개적으로 홍보한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중일 4대 정치문건 정신, 국제 관계의 기본 준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어 “(다카이치 총리의 행보는) ‘대만 독립’ 세력에 심각하게 잘못된 신호를 발신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일본을 향해 엄정한 항의와 교섭을 했다”고 전했다.
이번 논평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경주 APEC 회의 기간 대만 대표단과 회동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 나왔다.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대표로 참석한 린신이 총통부 선임고문과 약 25분간 면담을 진행하고, 이를 자신의 엑스(X) 계정에 공개했다.그는 린 고문과 웃으며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일본과 대만의 협력 관계가 더욱 깊어지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중국은 이 장면을 일종의 ‘외교적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은 과거 대만을 식민 통치한 역사적 죄책을 지고 있다”며 “언행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수의 관영 매체 역시 이를 ‘APEC 외교 결례’로 규정하면서 “일본이 미국이나 대만과의 관계를 내세우면서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는 해석을 내놨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도 “일본이 중국 앞에서 보란 듯이 대만과 친분을 과시했다”는 비난 여론이 빠르게 확산됐다.
이에 일본 정부는 불필요한 외교적 충돌을 피하려는 모습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린 고문과의 만남은 비공식 회동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고, 일본 외무성 역시 “양측이 APEC 의제와 관련된 실무 대화를 나눈 수준”이라며, 중국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럼에도 중국 언론은 일본의 해명을 ‘면피용 발언’으로 치부하며 여론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이번 사안이 단순한 외교 해프닝을 넘어 중·일 간 대만 인식을 둘러싼 근본적 갈등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외교적 대화 채널 복원 사실상 제자리
이러한 긴장감을 반영하듯 다카이치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회담은 시종일관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두 정상은 지난달 31일 경주 코오롱호텔에서 30여 분간 마주 앉았지만, 각자 준비한 입장을 주고받으며 원론적인 수준의 협력을 약속하는 데 그쳤다. 양 측 모두 대만 문제와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반도체 수출 통제 등 주요 현안을 두고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면서다. 회담이 끝날 때까지 분위기는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고, 회담 후 공동발표문조차 배포되지 않았다.
중국은 이번 회담을 자국 대표단 숙소에서 진행하며 주도권을 쥐려 했다. 시 주석의 숙소였던 코오롱호텔을 회담 장소로 정한 것도 의전 상 ‘초청자 우위’를 강조하기 위한 계산이었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러한 불리함을 감수한 채 현장에 들어섰고, 취재진의 질문에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요 인사의 동선을 가리기 위한 차단막을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언론 접근을 허용했다. 이와 같은 세부 장면들은 양측이 서로를 철저히 의식하면서도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으려는 외교전의 긴장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모두발언에서 시 주석은 “중·일 관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소통을 유지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지만, 곧이어 “역사와 대만 등 원칙 문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고 피해국에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 또한 덧붙였다. 과거 다카이치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발언은 의도된 견제로 풀이됐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는 “전략적 호혜 관계를 포괄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도 중국의 인권 문제와 센카쿠 분쟁, 희토류 통제 등 민감한 의제를 직접 거론하며 응수했다.
이처럼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대화보다 각자의 ‘입장 확인’에 집중했다. 일본은 중국 내 자국민 안전 문제와 수출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중국은 일본이 미국과 연대해 자국을 포위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하는 식이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이번 회담을 일본과 중국 두 정상이 처음 만났다는 형식적 의미만 남은 자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양국이 전략적 협력을 논의하기보다는 자국 정치와 여론을 의식한 ‘관리형 외교’의 전형이라는 분석이다.
재중 일본인 대상 폭력 범죄 잇따라
그간 일본의 침략 역사를 둘러싼 중국의 혐오 정서는 다양한 경로로 표출돼 왔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지난달 개봉한 영화 ‘731’을 꼽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자행한 생체실험을 소재로 한 해당 작품은 자오린산 감독이 12년에 걸친 자료 조사 끝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오 감독은 “우리 영화가 역사적 증거가 되고, 극장은 정의의 법정이 되길 바란다”고 밝히며 반일 정서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와 함께 개봉일을 중국이 국치일로 기념하는 만주사변 발발일(9월 18일)로 정해 소위 ‘애국 소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 결과 영화는 개봉 첫 주 내내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 도시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환구시보와 차이나데일리 등 관영매체는 ‘731’을 “전쟁과 정의의 보편적 성찰을 불러일으킨 작품”이라고 집중 조명하며 “개봉 하루 만에 박스오피스 수익 3억 위안(약 4,200만 달러·600억원)을 넘기며 ‘어벤져스:엔드게임’을 제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난징사진관(南京照相馆)’, ‘둥지다오(東極島)’, ‘산허웨이정(山河爲證)’ 등 항일전쟁 관련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며 중국 내 반일 정서를 대중문화 중심으로 재확산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애국 마케팅이 단순한 흥행을 넘어 일본인에 대한 적대 감정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실제 장쑤성 쑤저우에서는 한 일본인 여성이 아이와 함께 이동하던 중 돌팔매질을 당한 바 있으며, 광둥성 선전에서는 등굣길에 나선 일본인 초등학생이 흉기 공격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일본인 학교들은 재학생들에게 외출 자제와 비상 귀가 지침을 내렸고, 주중 일본대사관은 교민들에게 안전 유의 공지를 발송했다. 단기간에 여러 지역에서 유사 사건이 잇따르면서 일본 언론들은 앞다퉈 “중국 내 혐일 정서가 반일을 넘어 폭력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에 외교가에서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표출된 반일 감정이 외교적 냉각기를 심화시켰다는 진단을 내놨다. 일본으로선 자국민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중국과의 ‘우호 메시지’를 꺼내기 어려운 처지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외교계 관계자는 “일본과 중국이 경제·무역 교류는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겠지만, 정치적 신뢰는 이미 단절된 상태”라고 진단하며 “겉으로는 교류를 지속하면서도 실제로는 상호 불신이 심화한 ‘비공식 단교 상태’나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