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 Home
  • PE분석
  • 17개 전략산업에 베팅한 '기초과학 강국' 일본, 기술 패권 탈환 시동

17개 전략산업에 베팅한 '기초과학 강국' 일본, 기술 패권 탈환 시동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수정

국가 주도 성장전략 부활, 산업 공급 구조 재편
AI·반도체 등 전략산업 중심의 투자체계 구축
기초연구-산업투자 결합 통한 기술 경쟁력 우위 목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24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소신 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 일본 내각 홍보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국가 주도 성장 전략’의 부활을 선언했다. 인공지능(AI)·조선·반도체 등 17개 전략분야를 설정해 대규모 중점 투자함으로써 성장 둔화의 고리를 끊겠다는 포부로, 버블 붕괴 이후 장기 침체를 버티며 민간 주도 경제에 의존해 온 일본이 정부 주도의 산업 재편을 통해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기초과학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반을 다졌다는 점에서, 지난 수년간 중국이 보여준 '기술 굴기' 이상의 결과를 낼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 분야 담당 각료 지정

4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정부는 이날 설치하는 ‘일본성장전략본부’를 통해 조선 및 방위 산업 등 17개 전략 분야를 설정하고 중점 투자를 표명할 전망이다. 이번 발표는 무분별한 지출이 되지 않도록 전략적 재정 투입을 통해 자국 내 산업의 공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의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분야별로 각각 담당 각료를 지정하고 2026년 여름 새로운 성장 전략을 마련할 예정이다.

일본성장전략본부는 ‘강한 경제’, '책임 있는 적극적 재정'을 내건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 정책 컨트롤타워가 될 예정으로, 총리가 공동 본부장에 취임하고 부본부장은 키하라 세이지 관방 장관과 조나이 미치노리 성장전략상이 맡는다. 본부는 첫 회의에서 총리가 공급 구조 강화를 통해 사업 수익과 소득을 늘려 “세율을 올리지 않아도 세수를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제시할 전망이다. 또 국력과 직결된 분야의 공급망 강화인 ‘위기 관리 투자’, 일본의 첨단 기술에 대한 '성장 투자'를 기둥으로 삼을 방침이다.

17개 전략 분야에는 AI·반도체와 디지털·사이버 보안에 더해, 지난달 28일 미일 정상회담에서 중점 합의 사안이 된 조선, 그리고 '꿈의 에너지'라 불리는 핵융합(퓨전 에너지), 무인기를 포함한 첨단 기술 도입이 진행 중인 방위 산업 등이 지정됐다. 일본 정부는 전략 분야별로 지정하는 담당 각료에게는 단일 연도가 아닌 복수 연도의 예산조치를 상정한 검토를 요구하며, 투자 내용과 목표액, 시기를 정한 '관민 투자 로드맵'의 수립을 지시할 방침이다. 또 방위 산업을 염두에 두고 정부 조달에 의한 수요 확대도 언급할 전망이다. 이후 분야별로 투자 촉진책이나 규제 완화 등의 구체화를 도모하고, 경제 성장률에 대한 기여도도 산출하도록 명령하며 스타트업이나 인재 육성 등 분야를 아우르는 대응책 등도 새로운 성장 전략에 담는다는 계획이다.

아시아 AI 허브로 급성장 목표, 반도체 재건에도 속도

다카이치 정부가 내세운 일본 성장 전략은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성장 기조와 동일하다. 지난 2021년 기시다 내각이 내세운 '새로운 자본주의'는 이시바 시게루 전 정권을 거쳐 다카이치 내각에서도 형태만 달라진 채 계승됐다. 이번 다카이치 정부의 성장전략본부에 본부장으로 임명된 기시다 전 총리는 최근 자민당에 △임금 인상 △관민 투자 △자산운용입국 등 3대 기둥의 유지를 요구했고, 이에 다카이치 총리는 해당 요구를 소신표명 연설과 각료 지시서에 담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본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분야는 AI 산업이다. 앞서 이시바 내각은 AI 법 제정 이후 '인공지능전략본부'를 출범시켰으며 이를 바탕으로 'AI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해당 계획의 중심에는 '클라우드 인프라'가 있다. AI는 막대한 데이터를 저장·처리해야 하는 기술 특성상 안정적이고, 확장 가능한 클라우드 환경 없이는 구현이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국산 클라우드 생태계'를 강화하고, AI 관련 연구와 산업 응용을 뒷받침할 국가 차원의 플랫폼을 정비하고 있다.

이 구상의 배경에는 일본 디지털청이 추진하는 '거버먼트 클라우드(Gov-Cloud)' 정책이 자리한다. 현재 일본은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클라우드 등 글로벌 사업자와 함께 NEC, NTT, 후지쯔, 사쿠라인터넷 등 국내 기업이 참여하는 '멀티벤더형 공공 클라우드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여기에 AI 기본계획을 결합해 국가 차원의 연산 자원과 데이터셋, AI 모델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AI를 위한 클라우드'를 국가 인프라로 삼겠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AI와 관련한 연구개발(R&D)과 활용 촉진은 물론, 안전과 윤리 확보를 위한 규칙 마련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총무성, 경제산업성, 신에너지산업종합개발기구(NEDO) 등 관련 기관도 AI 기술 기반 인프라 구축과 혁신 지원에 집중하는 등 AI 산업 발전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이에 힘입어 일본 기업들도 자체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일본 최대 통신사인 NTT는 대규모언어모델(LLM) 쯔즈미를 선보였고, 후지쯔, NEC 등 대기업들도 독자적인 AI 기술을 개발 중이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AI 산업에 최소 10조 엔을 투자하는 계획을 마련한 상태로, 개발 기업에 법인세 감면과 데이터센터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반도체 재건에도 승부수를 내걸었다. 앞서 내각부와 경제산업성의 주도로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이 수립되고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이 제정된 이후, 일본은 정부 정책자금과 공공 투자기관을 활용한 대형 투자와 기업인수 및 재편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일본의 존재감을 회복하고, 특정 국가에 편중된 공급 구조를 다변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대표적 사례가 라피더스다. 라피더스는 토요타자동차, NTT, 소니그룹 등 일본 대기업 8개사가 출자하고 일본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는 반도체 제조사로, 2027년부터 첨단 2nm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R&D사업 보조금 1조7,000억 엔을 지원받았다. 민간과 정부의 지원을 토대로 라피더스는 공장부지 건설에 착수한 이후 올해 극자외선(EUV) 반도체 노광장치 반입 등 주요 생산설비 도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올해 7월부터는 웨이퍼 성능을 확인할 수 있는 파일럿 제품 생산을 추진 중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도 라피더스에 대한 지원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일본 정부는 'AI·반도체 산업기반 강화 프레임'을 발표하고 △AI와 반도체 분야에 30년까지 총 10조 엔 이상의 공적자금 지원 추진 △향후 10년 간 50조 엔의 민-관 투자 도모를 공표했다. 이후 올해 4월 일본 참의원에서도 독립행정법인 정보처리추진기구(IPA)를 통한 반도체 제조기업 대상의 자금 출자와 함께 현물 출자, 융자 채무보증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했다.

노벨상 휩쓴 일본 기초과학의 힘

일본이 다시 국가 주도의 기술 개발 모델을 가동할 수 있는 근본 배경에는 견고한 기초과학 자본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에는 '인류가 만든 상 가운데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는 노벨상의 역대 수상자만 31명(한국은 2명)으로, 이 가운데 27명이 과학 분야 수상자다. 일본이 기초과학에서 얼마나 탄탄한 기반을 갖췄는지 웅변하는 대목이다.

일본이 과학기술을 기둥으로 삼은 건 패전 이후부터다. 과학기술청을 출범한 것이 1956년, 기초과학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1995년에는 과학기술 진흥을 국가 책임으로 규정한 '과학기술기본법'을 제정했고, 이듬해부터는 5년 단위 계획을 시행했다. 첫 5년에 17조 엔(약 158조원), 이후 5년마다 20조 엔(약 186조원) 이상 투입했다. 이 같은 투자는 성과로 이어졌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은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작년까지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등 자연과학 분야 수상자 25명 중 20명이 2000년 이후 노벨상을 받았다. 과학기술 초강대국인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기초과학 우위에 대한 해답을 새로운 문물을 빠르게 흡수하는 역사적 전통에서 찾는다. 가고시마의 센간엔 정원은 그 상징적 출발점이다. 사쓰마 번의 11대 번주였던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이곳에서 근대적 실험을 시도했다. 그는 일본 최초로 반사로를 세우고 고품질 쇠를 뽑아 증기선과 대포를 만들었다. 동아시아가 칼과 조총에 머무르던 시대에 대포와 증기선은 전쟁 패러다임을 바꾼 첨단무기였다. 나리아키라는 개명 군주로 추앙받았고, 시마즈 가문은 메디치 가문에 비견될 만큼 존경을 받았다.

나가사키 데지마 지역도 중요한 단서다. 네덜란드는 218년 동안 일본과 독점적 교역을 하며 서양 학문을 전파했다. 이를 통해 형성된 난학(蘭學)은 서양 의학·천문학·화학·지리학 등 기초과학의 문을 열었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은 ‘외부의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받아들였다. 메이지 정부가 파견한 이와쿠라 사절단은 바로 이런 호기심과 학습 열정을 제도화한 사례다. 100여 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은 1년 10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 12개국을 돌며 의회 제도, 교육, 철도, 통신, 은행 시스템을 직접 조사했다. 공업화의 길이 닦인 것도 이때다. 이처럼 일본 근대국가의 설계도는 해외 현장에서 얻은 체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초과학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심수관을 비롯한 조선 도공들은 대부분 그곳에 정착했다. 조선에서 천대받던 자신들이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대우를 받으며 기술자로 존중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수백 년을 이어온 중소기업이 많은 것도 이런 장인정신과 무관치 않다.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다나카 고이치 역시 대기업 연구소 소속이 아닌 중소기업 시마즈제작소의 평범한 엔지니어였다. 그는 작은 회사지만 엔지니어로서 인정받고 세계적인 성과를 냈다. 시마즈제작소가 뿌리를 두고 있는 곳이 바로 시마즈 가문의 실험장이었던 센간엔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시간의 축적과 학문의 존중이 기술혁신으로 이어진 셈이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7 months
Real name
이제인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